축제의 현장에서 막걸리계의 '신예'들을 만나다.
'신예'라는 말은 보통 새로운 사람을 뜻하지만, 최근 한국술 시장에도 신예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신예가 아닌, 맛과 향 그리고 디자인과 감각까지 갖춘 막걸리계의 뉴페이스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어 탁주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신상 술들은 각기 다른 맛과 매력으로 주방장의 관심을 사로잡았어요. 특히 이번 우리술대축제에서는 신생 양조장들의 술뿐만 아니라 기존 양조장들의 새로 출시된 술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그러면 한국술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새내기 한국술들을 <월간 주방장 11월호>에서 소개합니다.
*신예 新銳 [명사] : 새롭고 기세나 힘이 뛰어남. 또는 그런 사람.
(*주방장의 2019 우리술대축제 vlog 읽고 오셨나요? : https://brunch.co.kr/@ju-bangjang/110)
지난 7월 월간주방장에서 D.O.K Brewery (독 브루어리)의 술 #걍즐겨 를 소개했는데, 4개월 만에 새로운 술을 마셔보게 됐어요. 새로움의 New와 복고의 Retro가 합쳐져 복고를 새롭게 즐긴다는 의미의 New-tro가 이 탁주의 이름입니다. 올드하게 느껴졌던 막걸리를 새롭게 즐겨본다는 뜻이 담겨있는 술 이름이 아닐까 싶은데요. #걍즐겨 에는 히비스커스가 첨가되어 여린 분홍빛깔이 매력이었다면, #뉴트로는 탁주에서 밀크티 맛이 난다는 신기함이 특징입니다. 라임, 레몬, 잉글리쉬 브랙퍼스트가 오묘한 노란빛이 이 도는 막걸리. 참신하고 간결한 디자인만큼이나 탁주 본연의 맛과 특징을 자랑하는 술일까요?
# 정보
양조장 D.O.K Brewery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8%
내용량 600mℓ
성분 찹쌀, 멥쌀, 조곡, 라임, 레몬, 잉글리쉬 브랙퍼스트, 설탕
# 코멘트
“정말 익숙한 새로움!"
처음엔 알싸한 알콜향과 레몬의 시큼함이 툭 치고 입안에 들어오더니, 금세 입안 가득 홍차 향이 퍼집니다. 맛이 단계별로, 점층적으로 느껴지는 매력적인 탁주입니다. 막걸리와 홍차의 조합은 정말 익숙한 새로움이 맞네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고전적인 두 음료가 만나 새로운 합을 만들어냈으니까요. 깔끔한 피니시는 미약한 탄산 감과 낮은 밀도감이 만들어내는데, 마시다 보면 아래 걸쭉하게 흘러내리는 홍차 가루 지개미를 발견할 수 있어요. 마치 바닐라빈 라떼를 마실 때 발견하는 빈처럼, 홍찻잎이 탁주 지개미에서 보이니 또 다른 재미를 자아냅니다. 분명 맛은 막걸린데, 홍차를 마시니 취하는 기분이랄까요? 과일이나 부재료맛이 난다고 자랑하지만 합성착향료만 들어가있는 탁주들보다는 훨씬 정직하면서 재밌는 매력을 가진 #뉴트로 였습니다.
# 어울리는 음식
“얼그레이 레몬 시폰 케이크"
뉴트로는 생각보다 달 것 같지만 홍차의 쌉싸름함과 탁주의 밀도감이 합쳐져 깔끔하게 끝납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홍차와 상큼한 레몬 제스트가 곁들여진 쉬폰 케이크로 단 맛을 더하면 마치 영국 왕실에서 막걸리 한 잔 하는 기분이 날 것 같아요.
도깨비술 부스를 축제에서 마주쳤을 때, 마치 연예인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각종 SNS와 술 리뷰어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과 애정을 받았던 도깨비술을 드디어 만났기 때문이죠. 단양에 위치한 도깨비양조장에서 나오는 도깨비술은 총 도수별로 3종으로 출시되어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습니다. 7도/9도/11도 세 종으로 각자의 취향에 맞춰 즐길 수 있는데요. 가볍게 마시기 좋은 7도는 음식과 페어링 해서 라이트 하게 즐기기 좋고, 11도는 술 자체만 마셔도 맛있고 좋을 듯합니다. 마치 귀여운 도깨비방망이 같은 이 탁주는 낮은 도수부터 높은 도수까지, 높아지는 알코올에 맞춰 뭉근하게 진해지는 맛을 느껴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 정보
양조장 도깨비 양조장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7%
내용량 750mℓ
성분 정제수, 쌀(국내산), 국, 효모
# 코멘트
“5월의 멜론 같은 술"
도깨비술 7도는 상쾌한 과실 향에 풍부한 밝은 맛이 특징입니다. 마치 5월의 멜론처럼 아직 덜 익었지만, 달기 직전의 그 풋풋하면서도 상큼한 맛과 향이랄까요. 한 잔 가득 채워 마시고 나니 아침에 일어났는데 정말 잘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더운 날 머리가 쨍할 정도로 시원하게 칠링 해서 마셔보고 싶네요. 약간의 기분 좋은 탄산감은 혀 끝을 살짝 쌀짝 톡톡 치고 가며, 7도임에도 불구하고 알콜감이 라이트 한 질감과 가벼움에서 묻어 나와 도깨비처럼 뚝딱 하고 취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몇 잔 마시고 나면 목 끝부분에 술향이 남아있어 숨을 쉴 때마다 기분 좋은 고소한 쌀 향기와 누룩향이 후취로 돌아옵니다. 더불어 물처럼 목 넘김이 좋기 때문에 다른 지개미나 걸쭉한 텁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기에 도깨비술 7도는 특히 음식과 같이 페어링 해서 즐기기 좋을 술입니다. 오랜 기대 끝에 마셨는데도 그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해주는 도깨비술 7도였습니다.
# 어울리는 음식
“햄 멜론"
도깨비술이 풋풋한 5월의 멜론 같다고 표현하고 나니, 적당히 달콤하지만 풋풋한 멜론과 짭짤한 프로슈토 햄을 감싼 햄 멜론이 떠올랐어요. 두 조합을 생각하니 벌써 입안에 침이 고이네요.
우리술축제에서 시음을 하면서 여러번 놀랐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운곡도가> 부스에서 토끼구름을 시음했을 때였습니다. 그저 그런 달고 귀여운 맛이겠지... 싶었는데 한 모금 마시자마자 '아, 이거 정말 괜찮은 술이구나!' 싶었어요. 울산에 위치한 운곡도가는 토끼구름 외에도 황감찰을 직접 만드는 마이크로 브루어리 양조장 펍입니다. 토끼구름은 부드럽고 순한 지역 햅쌀 수제 생막걸리라고 하는데, 이 탁주는 어떤 맛이기에 주방장의 두 눈을 토끼처럼 똥그랗게 만들었을까요?
# 정보
양조장 운곡도가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6.8%
내용량 750mℓ
성분 정제수, 쌀(울산 울주군), 올리고당 전분, 조효소제, 혼합제제(덱스트린, 건조효모, 유당)
# 코멘트
“하얀 구름 맛은 토끼구름 맛이었구나!"
지난 글 <하얀 구름은 쌀 맛일까?>에서 '담은 막걸리' 시음평을 하며 하얀 구름맛은 어떨지 궁금했었는데, 그 구름 맛이 어떤 맛인지 찾았습니다. 바로 울산의 운곡도가에서 나온 뽀얀 탁주 토끼구름 맛일겁니다. 파스텔톤의 분홍 라벨엔 하얀 토끼 한 마리가 구름 속에 살포시 들어가 있는데, 마치 이 막걸리 안에서 헤엄치는 것 같네요. 다른 탁주들보다 더 뽀얀 빛깔을 자랑하면서 실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밀크셰이크 같은 토끼구름. 보기보단 단 맛보다는 술 자체의 질감과 적당한 산미가 더 특징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축제 현장에서 시음했을 때는 정말로 부드럽고 산미도 강하지 않아 밸런스가 잘 잡혀있었는데, 구매해서 집에서 일주일 후에 마신 토끼구름은 식초처럼 산미가 정말 강해졌습니다. 운반이나 보관상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조만간 다시 구매해서 마셔봐야 할 것 같네요.
# 어울리는 음식
"배추전"
토끼구름 자체가 밀도감이 높고 텁텁한 맛이 약간 있으니 가벼운 안주가 어울릴 것 같아요. 배추에 슥슥 밀가루 옷 입혀서 기름에 바삭바삭하게 튀겨내듯 부친 배추전과 함께하면, 하얀 구름에서 노니는 토끼의 마음이 이해될 것 같습니다.
제게 신줏단지 모시듯 모셔놓았던 약주 한 병이 있다면, 그건 바로 복분자 약주인 '복단지'일 겁니다. 복분자주라고 하면, 여느 술집에나 있는 익숙한 그 복분자술을 떠올릴 텐데요. 또 다른 복분자술이 야심 차게 등장했다는 소식입니다. 복단지는 여주에 위치한 술아원 양조장에서 올해 출시된 신상 '약주'입니다. 자줏빛 복분자색 라벨에 크게 복 자가 써져있는 레트로 한 첫인상의 이 약주는 복분자의 또 다른 세계를 열어줄까요?
# 정보
양조장 술아원
식품유형 약주
알코올 14%
내용량 375mℓ
성분 쌀(경기미), 정제수, 복분자(국내산), 누룩
# 코멘트
“진짜 복분자 진액!"
익숙한 그 복분자주 마셔보신 분들은 대부분 굉장히 달다고 느끼셨을 거예요. 그런데 술아원 양조장의 복단지는 복분자술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신 맛이 먼저 침샘을 확 자극하고 이내 특유의 복분자 향과 단맛이 뒤따릅니다. 원래 산미가 있는 술은 처음에는 마시기 어려워도, 다음 잔부터는 고유의 향과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데 바로 침이 적당히 입에 고여서 제대로 맛볼 수 있기 때문이죠. 복단지는 진짜 복분자 진액을 마시는 것 같지만, 14도라는 도수가 있기 때문에 와인처럼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취기가 돕니다. 정말 복분자 자체의 맛을 오롯이 담아내면서 음식을 당기는 강한 산미와 향기까지. 복단지는 정말 신줏단지 모시듯 술장고에 하나씩 넣어놓고 중요한 날 잘 차린 음식과 함께 한 병 비우면 딱이겠어요.
# 어울리는 음식
“불고기 양념을 입힌 숯불 흑돼지 바오"
산미가 있는 술은 자연스레 고기를 당기게 만듭니다. 레드와인이 육류와 잘 맞는다고 하듯이 이 붉은 복분자 약주는 맛있게 양념한 고기와 씹는 맛이 있는 바오와 함께 곁들여야 해요.
주방장이 한강주조 양조장이나 나루생을 자주 소개하긴 했지만, 새로운 술이 출시되었으니 안 다룰 수 없죠. 신제품은 6도에서 약 2배로 도수가 높아지면서 병도 얄쌍해지고 하얀 라벨로 바뀌었습니다. 6도 나루가 배부르지만 가볍게 즐길 수 있었다면, 11.5도 나루는 컴팩트해진 만큼 어떤 매력을 가졌을지 궁금해졌어요. 도깨비술과 함께 꽤 기대하고 있었던 한강주조의 신상 막걸리, 11.5도 나루 생 막걸리를 마셔봅니다.
# 정보
양조장 나루 생 막걸리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11.5%
내용량 500mℓ
성분 정제수, 쌀(국내산), 국, 효모
# 코멘트
“여운이 남는 나루"
확실히 6도가 깔끔함과 바나나 향기 같은 과실 향이 자랑이었다면, 11.5도는 질감은 비교적 묵직하게 다가오면서, 입안에 남는 향기나 쌀맛은 여운 짙게 남습니다. 술은 도수가 높을수록 맛있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11.5도 나루는 6도를 제치고 제 마음에 안착했네요. 도수가 있으니 단맛도 덜 부담스럽게 느껴지면서 쌀의 감칠맛이 확 살아났습니다. 먼저 6도를 마시고 11.5도를 나중에 마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가볍게 음료처럼 6도를 즐기다가 11.5도로 올려서 진해진 맛의 재미를 찾는 것도 좋겠어요.
# 어울리는 음식
“굴전"
사실 나루 생 막걸리는 어떤 음식과 함께 페어링해도 다 어울리며 마리아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탁주입니다. 그렇기에 기왕이면 제철 안주라고, 통통하게 오른 생굴을 간단한 부침 옷만 묻혀서 따끈하게 즐기면 제철 마리아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매일 신상품이 출시되는 오늘 같은 시대에 한국술 시장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신생 양조장들이 주류업계뿐만 아니라 식음료 및 패션 업계까지 다양한 분야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양조장의 특징을 살린 야심작들 역시 다양한 주점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특히 대형 양조장이나 대기업 위주의 새로운 바람이 아니라, 작지만 강한 소규모 양조장들의 약진이 돋보인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천 원 이천 원 하는 막걸리 시장에서 뉴페이스들이 어떻게 살아남냐고 걱정하지만,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자신들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양조장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장원주(참 좋았던 한국술)는 도깨비술 7도, 차석주(뭔가 2% 아쉬웠던 술)는 토끼구름 입니다. 기대한 만큼 도깨비술은 목 넘김이나 쌀과 누룩의 맛과 향, 상쾌함을 더하는 약간의 탄산 감까지 더해서 아주 균형이 잘 잡혀있었고, 남녀노소 불구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탁주라고 생각합니다. 토끼구름은 우리술축제 현장에서 마신 그 맛을 잊지 못해 아쉬운 술로 선정했습니다. 울산 운곡도가를 방문하게 되면 꼭 양조장 현장에서 빚은 토끼구름을 마셔보고 싶어요.
벌써 다음 <월간 주방장>이면 올해의 마지막호가 되겠네요! 12월 월간 주방장에서는 (궁금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주방장이 뽑은 올해의 한국술 5종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주방장은 올 한 해를 술로 정리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죠? 그럼 몸과 마음이 술로 따닷해지는 연말이 되길 바라며 다음 달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