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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Jan 07. 2024

너로 충분하다는 말

어떻게 보면 우리의 괴로움은 대부분 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 때문인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딱히 ‘되고 싶은 나’ 같은 게 없었다. 특별한 꿈도 없었다. 그래서 무엇이 되고 싶다고 꿈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생각해 보면 진심으로 부러웠던 것도 아니다. 나는 주로 지금에 만족했다. 불만이나 괴로운 순간도 물론 있었지만 곧 잊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좋은 것에 집중했다. 어쩌면 그 부분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부터는 되고 싶은 게 분명해졌다. 나는 읽고 걷고 노래하고 쓰는 사람이고 싶었다. 오랫동안 내가 충만하게 살았다면 내 모습이 되고 싶은 나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나는 긴 시간 읽고 걷고 노래하고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 그건 아주 예민한 촉수로 사는 일이었다. 신나고 놀라운 일이 세상에 가득했다. 따뜻한 바람이 뺨을 스쳐서, 나뭇잎이 둥글게 둥글게 뒹굴어서, 달이 말할 수 없이 가늘어서 좋았다. 언젠가의 일기에는 지구가 갸우뚱 도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썼다. 거짓이 아니었다. 나로 충만할 수 있어서 부러울 게 별로 없었다. 지금 내가 충만하지 못한 건 되고 싶은 나와 내 모습이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 넷 중 무엇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그 일들이 가능했을 때는 부족해도 괜찮았다. 이미 나는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니 어느 면에서 부족해도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몇 년 사이 내 생활에서 일의 비중이 점점 커졌다. 연차가 쌓이고 일의 비중이 커지자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더 정확히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사이 아이의 사춘기도 있었다. 어느 날부터 아이에게 학교생활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능숙하고 의연하게 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도움을 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일을 잘하는 나나 능숙한 부모로서의 나, 무엇도 쉽지 않았다.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 간극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더 지쳤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읽고 걷고 노래하고 쓰는 일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자 마음이 빈곤해졌다. 그럴수록 자꾸 밖으로 눈을 돌렸다. 부러운 것들이 늘어갔고 부러운 것이 늘어갈수록 초라해졌다.

그래도 힘을 내는 수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힘을 내야 할지 막막했다. 언제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거지 가늠하다가 지레 질렸다. 쉽게 지치고, 지친 나를 자주 드러냈다. 마음과 상관없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할까, 괜찮은 척해야 하는 걸까, 오늘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럴 때 누군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해 왔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이미 충분해.


라고 말해 주는 상상을 했는데 그러자마자 눈물이 났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정말 눈물이 났다.

나는 실은 너로 충분하다는 말이 불편했다. 그 말이 의심스러웠다. 나는 부족한 게 많은데, 틀리고 게으르고 자주 잊고 실수해서 곤란을 겪는데 뭘 안다고 충분하다고 하는 걸까. 그 말이 너무 손쉬운 위로 같아서 싫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들을 때면 항상, 눈물이 났다.

내가 하찮아서 괴로울 때 누군가는 꼭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고 ‘지금도 충분해.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 주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들으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결국 그 말이 필요했던 걸까. 무엇을 잘해서, 틀리지 않아서, 남보다 나아서 충분한 게 아니라 그저 나로서 충분하다는 말이 사실은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다. 거기서부터, 나는 나로 충분하다는 확신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되는 거니까. 어떤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을 일으킨다.

'이미 충분해.'라는 말을 듣는 상상을 했을 뿐인데 눈물이 났고, 그 순간 모든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되게 멋있게 일도 잘하고 싶고, 듬직하고 현명한 부모이고 싶은데 실제로는 잘 안 됐던 거야. 그런데 어떡해. 그렇지 못한 게 지금의 나인걸. 나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창피해하지 않기로 했다. 누가 날 어떻게 보든, 실망을 하든 말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나는 나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이게 중요한 거야. 나를 부정하고는, 그런 괴로운 마음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 너로 충분하다는 말은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해 주었다. ‘되고 싶은 나’와 거리가 멀어도 이게 나야. 여기서부터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야.

애써서 포장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거기서부터 다시 잘하든 못하든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것이다.  

내일로 모레로, 어떻게든 앞으로.



-그래서, 다시 읽고 걷고 노래하고 쓰는 나를 회복하기 위해 연재를 시작합니다. 스스로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의심하지 마세요. 누구보다 낫거나 무엇을 잘해서 아껴 주는 것은 남들도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 못한 나를 껴안아 주는 건 누구보다 내가 할 일이에요. 안아 주세요, 여러분 자신을 힘껏. 저는 저를 힘껏 안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힘이 남는다면 저도 응원해 주세요. 살아내고 있는 여러분을 늘 응원할게요. 잘하든 못하든 계속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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