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수연 Jan 26. 2024

너는 누구니?

* 본 글은 아기 낳기를 권유하는 글이 아닙니다.

** 딩크족과 유자녀 부부의 삶을 모두 경험한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제왕절개의 단점 중 하나는 아기를 낳는 즉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아기가 내 아기인지 아니면 살짝 바뀌어 온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의료진을 신뢰하는 것과 별개로 대부분의 사건은 우연히 일어나므로 한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내 눈으로 즉시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연분만보다 불리하다. 그러므로 수술을 앞둔 임산부는 남편의 손을 잡고 단단히 부탁했다.


"꼭. 나오자마자 영상으로 남겨줘. 혹여 바뀌더라도 내가 찾을 수 있게......"


이윽고 엄마 뱃속에서 무사히 탈출한 아기가 간호사에게 안겨 등장했다고 한다. 남편은 임산부의 마지막 부탁을 실행하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두었다.  


지옥 같은 고통과 사투를 벌이다 드디어 정신이 돌아온 산모에게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기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아기는 너무나 너무나 그러니까 그냥... 고구마 같았다. 빨간 고구마. 못생긴 고구마.



너는 누구니?



흡사 구황작물



그날 밤, 신생아 면회시간. 

배를 짼 산모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는 동안 남편은 비장하게 카메라를 손에 쥐고 홀로 떠났다. 수분 후 깨끗이 씻어서 말린 아기의 사진을 담아 들고 돌아왔다.


"귀엽지?"


남편이 내민 사진 속에는 깨끗이 껍질을 벗겨 말린 감자가 있었다.


나는 구황작물을 낳은 걸까?


예상하지 못한 얼굴.

너무나 색다른 얼굴.


내 뱃속에서 나왔다면 적어도 날 조금이라도 닮아야 하는 거 아닌가? 눈 코 입 죄다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애가 바뀌었나.....


너는 누구니?



다음 날 오전 또다시 찾아온 신생아 면회시간, 산모는 힘을 내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상황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비장한 각오로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신생아 실 앞에 선 것이다.


간호사는 면회카드 속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어디선가 아기 침대 하나를 달달 끌고 왔다. 그 안에는 어제 사진에서 본 그 아기가 숨을 헐떡이며 잠을 자고 있었다. 입가에 분유자국이 선명하다.


어머 너 사진빨이 안 받는구나?

작아서 귀엽다만.... 그래도 말이지...



너는 누구니?



침대로 돌아와 누워 아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낳았지만 나와 전혀 닮지 않았다. 나의 동지인 남편은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나는 남편 미니미를 낳은 것이구나! 갑자기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우리 아기는 생뚱맞은 외모가 아니었다. 남편이 내 몸을 통해 자기 dna를 복제했다. 내가 낳은 아기가 맞나 보다 싶다.


분만 4일째 되는 날 드디어 아기를 안아볼 수 있는 날이 되었다. 간호사는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아기를 데리러 갔다. 나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내 손과 발은 주인을 잃은 종처럼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돌돌 말이 김밥처럼 하얀 속싸개에 감싸진 채로 내 품에 안긴 아기를 보며 그제야 실감을 했다.


아! 너구나!

나의 방광을 발로 뻥뻥 차던 그것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될 나의 아기

그게 너구나!




안녕하세요! 송수연입니다.

40대 출산 아기 탄생의 기쁨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아기를 키우기에 현실적으로 고민이 되시는 분,

아기를 낳은 무주택 40대의 삶이 궁금하신 분,

딩크부부지만 임신 출산에 미련이 있으신 분을 위해 쓰고 있어요.


구독자 여러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이전 01화 Prologue_아기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는 딩크족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