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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Feb 16. 2024

마흔이 넘어 아기를 낳은 여자가 느끼는 장점

* 주의: 이 글은 40 넘어 아기를 낳으라는 권유의 글이 아닙니다. 당신의 선택을 응원합니다.





마흔이 넘은 산모의 첫 번째이자 최대 장점은 여유이다. 이미 산전수전 다 겪었다 보니 웬만한 일에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늦둥이도 이런 늦둥이가 없다. 만일 스무 살에 아이를 낳았다면 그 녀석이 아이를 낳고도 남았을 나이니까 손자를 키우듯 인자한 표정으로 아기를 대하고 있다.   


사실 나는 원체 당황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신입 승무원 시절, 비행기 복도에 식판을 엎었을 때도 너무나 초연한 태도로 널브러진 음식물을 치우고 있자니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가 물었다. "수연 씨, 경력직이세요?" 대개의 신입들은 무척 당황하고 죄송해하며 안절부절못하는데 웬 신입이 실수를 해놓고 담담하게 주워 담고 있으니 한 소리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초보 엄마들은 자주 당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신생아를 키우는 일은 지금까지 했던 일들과 차원이 다르다. 한 인간의 평생이 나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등에서 땀이 삐질 흐른다. 아기가 밥을 잘 먹어도 걱정, 안 먹어도 걱정, 몸무게가 많이 나가도 걱정, 적게 나가도 걱정, 잠을 많이 자도 걱정, 적게 자도 걱정인 것이 초보 엄마의 걱정거리이다.


아직 아기의 형태가 아닌 태아 시절부터 그 비싼 보험을 드는 이유는 신생아 시절 응급실에 뛰어가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늙은 엄마는 응급실에 뛰어가지 않는다.


"홀홀~사람은 적당히 아프고 그래야지 큰다." 하면서 태연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40대 아빠에게도 아기는 울어도 귀염둥이



늙어 아기를 낳은 여자의 체력은 고꾸라진 바나나처럼 흐물텅 거리지만 그동안 쌓아두었던 커리어가 있어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아기를 낳은 지 70일 만에 복귀라면 복귀를 하게 생겼다. 만일 직장인이었던 20, 30대였다면 휴직 후에 퇴사도 고려했을 테다.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할까? 말까? 그러면 나중에는? 다시 입사할 수 있을까? 복직할까?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이러면서 오락가락했을 테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프리랜서로 전향해서 빡시게 일해 둔 탓에 여전히 주양육자의 역할을 가진 채로 사회생활도 겸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도 40대 출산의 장점이 아닐까?


80%의 산모가 출산 후 우울증에 시달린다. 편안히 먹고 자고 쉬지 못해서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일상의 급격한 변화로 자아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역할이 너무 커다래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간다고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는 일 하는 나, 쉬는 나, 엄마인 나, 모두가 다 나인데도 그전의 '나'가 너무 그리워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


40대는 그 모든 내가 나임을 알고 있는 늙다리이기 때문에 새로운 역할에서 오는 변화를 그럭저럭 잘 받아들이게 된다.



마지막 장점은 유흥의 욕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40이 되도록 아기를 낳지 않은 건 실컷 놀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무지막지하게 놀았다. 신혼여행을 4번씩 다녀왔고 그중 한 번은 40일을 갔다. (늙어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름휴가 2주는 기본이고 주말에 하루도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결혼하고 이 정도니 결혼 전에는... 말을 아끼겠다.


밖에 나가 놀고 싶다가도 과연 그게 아기 보는 것만큼 재밌을까 싶다. 중학생 아이를 키우는 지인은 아기 귀여운줄 모르고 키웠다는데 늙다리 엄마는 마치 손자 보듯 귀여울 뿐이다. 초등학생 딸래미를 키우는 지인은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랬다는데 늙다리 엄마는 시간이 흐르는게 벌써 아까워 죽겠다.


아기와 나,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기쁘다. 40살 넘도록 재밌다는건 다 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충만한 행복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싶다. 안해봤다면, 덜 놀았었다면 분명 나도 머물기보다 뛰쳐나가길 원했을테다.  


아직 젊어 팔팔할 때 아기를 낳아 갈등이 생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지인 부부는 이혼도 했다. 다만 놀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역할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서로를 비난하며 화살을 쏘아댔기 때문에 결국 파경을 맞았다. 사람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어린 나이에는 욕망이 타오르기 마련이니까.


40대라서, 그런 방식으로 불타오르는 시기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육아의 행복을 당장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기쁘고 다행이다.


 


안녕하세요!

폐경인줄 알고 산부인과 갔다가 임신 출산까지 하게 된 딩크족 40대의 아기 키우는 이야기,

매주 금요일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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