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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썽 Oct 20. 2023

벽골제 언덕 위에서

한때

한때 벽골제 남쪽이 저수지였다고도 하고, 바다였다고도 한다.

너무 오래된 옛날이야기이기도 하고, 둑길 위에 서서 보는 사방의 풍경이 너무 확신에 찬 논뿐이라 저수지든 바다든 설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뭍이 아니라 물이었다면 훨씬 아름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여름과 가을 사이

아마 추석즈음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벽골제로 산책을 갔던 15년도 더 된 사진을 발견했다.

한때였던 순간.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면 그 순간의 기분과 기온이 고스란히 저장된다.

그날은 아직 여름이 가시지 않아 햇볕이 따뜻했고, 들판엔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었다. 춥기도 하고 뜨겁기도 했던 날이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코스모스와 억새가 바람에 함께 흔들렸던 평화로운 오후가 그대로 재생된다. 그림에 코스모스를 그려 넣을 걸 그랬다.

삼십 대 청년이었던 바람머리  남편은 흰머리 지긋한 오십 대 아저씨가 되었고,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니던 꼬마들은 나만큼 자랐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 , 엊그제 기억처럼 선명한 청량한 가을날의 추억을 소환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날의 바람소리도 들리고, 두 꼬마들이 바람을 가르며 재잘거리던 소리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사진에는 추억이 저장되어 있고, 그림은 추억을 따뜻하게 담아주는 그릇 같다.

나의 삼십 대 한때이기도 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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