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나와는 다른 인격체이다.
나는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통근시간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나는, 적어도 10분 전에 출근하려면 아이를 9시 전에 등원시켜야 한다. 아이는 부족한 잠에 짜증이 난 상태로 일어나, 미적대기 일쑤다. 경기권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버스들은 배차간격이 길다. 하나를 놓치면 난 택시를 타야 하니 심하게 다그치게 된다. 그렇게 이번 주는 며칠을 둘 다 퉁퉁 부은 얼굴로 아이를 원에 들여보냈다.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잠투정이 심한 편이었지만, 두루 잘 먹어 그래도 순한 편이라고 생각하며 키웠던 아이였다. 워낙 기다리다 어렵게 얻은 아기라 육아에 대한 전 과정이 초반엔 그저 감사하기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저 내가 잠을 줄이고, 조금 더 바지런하게 움직여 이유식을 만드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마의 3-4살, 아직은 감정조절이 어렵고 말도 완벽하지 않아 자주 뒤집어지던 시절이 왔다. 내 가슴도 불타오르기를 여러 번이었으나, 그래도 비교적 육아서적에 있는 대로 따라 하면 아이는 스스로 울기를 멈추고 가만히 나에게 다가와 내 눈을 쳐다봐주었다. 그러면 그제야 나는 가르침이나 지침을 주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정말 이렇게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육아는 가는 길마다 고민이 다르고 지뢰밭이라더니. 5살부터 슬슬 자기 의지가 생기더니, 말도 너무 잘하게 된 것이다. 요것이 무슨 말을 하면 엄마 마음이 아픈지 너무 정확히 알더라. ‘나도 내 마음이 있어!’라며, 자기 의사를 그것도 제법 논리정연하게 말하는데 나는 할 말이 없어 어버버 한 적도 있었다. 이런! 나는 그렇게 또 다음 단계에 들어섰다.
고백하건대, 출산부터 지금까지 중에 언제가 가장 힘드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오늘’이라고 대답하겠다. 아이가 커가면 갈수록,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아이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이게 맞는지 모든 순간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립심이 강한 편에 속하는 우리 아이는 매 순간 나라는 사람을 시험에 들게 만든다.
나는 내가 계획적인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통제적인 사람’ 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아이가 내 손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내가 아이를 자꾸 움켜쥐려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국 궁극적으로는 독립이라는데! 아, 근데 나는 제대로 독립을 시키고 싶어서 가르치려는 건데. 이게 통제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 나는 요즘 혼란스럽다.
아이가 내 품에서 똑 떨어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어린이집’에 보냈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우는 아이 앞에서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는데, 아이를 안고 계시던 선생님의 ‘어머니가 그냥 가셔야 해요.’라는 말에 결국은 눈물이 가득 고인 채 그곳을 나와야 했다. 그리고는 그 앞에서 30분을 대기하다 아이가 찾는다는 말에 다시 들어가야 했는데, 아주 조금은 기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아이 보다 내가 더 심하게 분리불안을 겪었던 것이다.
물론, 아이가 나와는 전혀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때는 작년 ‘유치원 학습 발표회’였다.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을 힘들어하고 무척 소극적인 편인 나는, 조명이 내리쬐는 큰 무대에서 신나서 몸을 흔들어 재끼는(?) 내 아이가 낯설고 한편으로는 너무 놀라웠다.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도 ‘너무 잘 봤다’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인상적인 무대를 마친 딸아이에게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어떻게 그렇게 춤을 췄는지 물으니, 대답이 이렇게 나왔다.
사람들이 다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더 더 힘이 났어!
정말이지, 나와는 다른 에너지를 가진 내 아이.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고, 나와는 다른 미래를 가졌으면 하는 우리 아이에게 내가 또 뭘 해줘야 할지 고민을 멈출 수가 없다. 일단은 우리 앞에 놓인 ‘아침 전쟁’부터 끝을 내야겠지. 그렇게 우리는 침대맡에 앉아 아이가 직접 본인이 일어날 알람 소리를 고른다. 이렇게 또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엄마는 또 너와 함께 성장할 수 있겠지? 그렇다고 해주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