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좁아질수록 더 풍요로워지는 역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은 상당하다. 아이에게 내줘야하는 사랑으로 인해 자기가 인생을 살면서 쌓아올린 수많은 것들을 모두 쳐내야 할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회사를 휩쓸고 거리를 휩쓸고 카페를 휩쓸고 학교를 휩쓴 한 여성의 삶은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자연스럽게, 방 하나. 방 하나 안의 책상 하나의 공간 속으로 쪼그라든다.
단지 여성에 대한 이야기뿐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관한 이야기뿐도 아니다. 쪼그라든 공간 속에서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을 빼앗긴 듯한 절망감을 느끼기 쉽다. 이 세상이 나를 배신하고 나는 혼자 남았다는 고독감또한. 그러나 우리가 당연히 신라면보다 제주도에서 파는 해물라면을 더 좋아하지만. 집에 신라면 밖에 없다면 신라면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듯이. 희망또한 그 쪼그라든 공간 속에서의 강한 반동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는 있다.
여러 기회를 접하고 경험하는 것에 무한히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골에 있는 한적한 도서관에서 혼자 널널하게 사용하는 쾌적함에 감사하고. 손님으로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의자, 좋은 인테리어, 좋은 음악으로 무장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에 감사하고. 그러다가 또 마주치는 새로운 공간, 새로운 여행지, 여정의 마주침들에 감사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문득 가장 편안하고. 언제나 생산적이고. 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늘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어떤 공간에 그냥 머물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박탈감은 한 편으로는 반면에 존재하는 기회이자 희망이자 자유일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자가 책상 하나를 마주하는 것과. 모든 것을 다 해본 자가 책상 하나를 마주하며 느낀 그 박탈감이란. 어찌보면 외부를 통해 얻은 수 없는 자유를 마음에 한 껏 끌어안은 뒤, 그 자유를 나의 내면으로 돌이켜 기어코 삼켜버리려는 기회의 감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마치 부처님같지 않을까? 세상 모든 진귀한 것과 좋은 것을 어린 시절 다 겪고나서 내면 속 그 어느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최상의 행복을 성취한 부처는, 분명히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명료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은 그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부처는 발견했고. 그 가르침을 설한 것이 바로 불교일 것이다.
점점 좁아지는 나의 자리에 대하여. 더 좁아질 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역설은 정말로 귀한 지혜다. 더 풍요로워질 수록 더 좁은 것에서 또한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 역시다. 따라서 타인, 내게 미소를 주지 않는 타인, 나에게 미소짓지 않게 하는 타인으로부터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고 삶을 살아가면 살수록 의지하지 않는 것또한 큰 축복이다. 그리고 단지 그의 '생'을 축하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그저 평온함으로 지나칠 수 있다는 건 그 누구도 차지하기 힘든 기쁨일 것이다.
점점, 결국 좁아질 것을 대비하여 기꺼이 넓혀보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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