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그때를 시작으로 우리 셋은 항상 같이 다녔던 것 같다.
놀러 가던, 먹으러 가던, 너희가 다니던 연습실을 가던지 말이다.
단 한 번을 내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던 남자친구는 보고 싶다 말하며 나를 오가게 했었다.
애정의 크기가 달라서였을까, 애정을 서로 달리 표현했을 뿐일까.
보고 싶단 한마디에 홀려 먼 길을 참 많이도 오갔다.
연습실로 와.
도시락을 한가득 싸들고 그가 말한 곳으로 향했다.
3단 찬합의 무거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익숙한 길 위에는 가벼운 발걸음만이 자리했다.
둠칫거리는 음악 위에서 날래게 몸을 움직이는 너희를 보면,
나는 겪어보지 못했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냥,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지치지도 않았다. 지켜보기만 했어도 좋았으니까.
너희와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도 불러 모아, 다 같이 둘러앉아서 도시락을 먹던 시간들이 소중했다.
그 시간만큼은 내게 허락되었던 유일한 자유라 생각했었나 보다.
"잘 가. 연락할게."
"야...! 혼자서 멀리 왔는데 역까지 배웅은 좀 해주고 와."
"얘가 애냐? 뭐 얼마나 걸린다고 배웅을 해."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던 시간,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갔다.
붉고, 푸르고, 보랏빛 구름이 수놓을 때마다 나는 홀로 역을 향해 걸어갔다.
텅 텅 비어버린 찬합만이 다리를 톡, 건드리며 혼자가 아니다 위로해 주었다.
"바보 같다, 그치? 데려다 달라는 말 한마디를 못 하냐... 등신인가?"
서운한 마음이 한가득 했지만, 얼굴이라도 본 것이 어디냐며 마음속의 내 자신이 살며시 다독였다.
응. 바보야, 너.
대체 언제 왔는지, 등 뒤에서 거친 숨을 고르고 있는 네가 있었다.
놀라서 토끼 눈을 뜨고 있는 나에게 피식- 하고 멋쩍게 웃어 보이며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너였다.
어떻게 된 거냐는 내 질문은 뒤로 한 채, 옆에서 나란히 발을 맞춰 걸었다.
역에 도착할 때까지 말없이 그저, 그렇게 나란히 걸었다.
" 괜찮아?"
너의 그 한 마디가 현실을 마주하라는 쐐기 같았다.
대학 입시가 코 앞이라며, 자신이 연락하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연락을 줄여 달라던 남자친구와는 달리
정말 바빠서 그렇다며 문자로나마 미안하다 말하던 너였는데.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지만, 너도 나도 알고 있었을 테지.
첫 만남에서의 너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같아 보인다는 것을.
그래서 물었을 것이다.
너의 '괜찮아?'는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항상 바쁜 남자친구와 그런 그를 보며 외로운 나였다.
그 사이에서 너는 우리의 유일한 연결 다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다리의 양 끝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