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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h 대구에서 분당으로...

2024.5.12.일

by 우주에부는바람

삐요삐요삐요삐요… 사이렌 소리는 대구의 B병원에서 분당의 C병원으로 가는 네 시간 삼십 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맹렬하였다. 그 날의 사이렌 소리는 무한하였는데, 머릿 속에 떠올린 모든 단어가 곧바로 사이렌 소리가 되어서 내게로 되돌아왔다. 어떤 자음이든 어떤 모음이든 상관없이 내가 떠올리는 모든 의성어가 사이렌 소리로 변주되었다. 미오미오미오미오, 룰루룰루룰루룰루, 후아후아후아후아, 사루시루시루시루… 나는 한동안 사이렌 소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험하면서 고통과 지루함을 견뎌냈다.


사고 직후 대구의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 엑스레이 그리고 CT를 연거푸 찍었다. 찰과상이나 타박상이면 좋았겠지만 부상은 골절로 밝혀졌다. 정형외과 의사이기도 한 크루원에게 CT 사진을 보냈고, 그는 집에서 가까운 중급의 병원으로 가려던 나를 만류했다. 그에게서 의사를 소개 받아 분당의 C 병원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사고가 발생하고 세 시간 반 정도가 흐른 다음이었다. 대회에 참가하는 나를 응원하기 위해 내려왔던 아내가 구급차에 동승하였다. 아내는 차의 진행 방향과 직각인 의자에 앉았고, 한껏 담담하게 꾸며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0에서 10까지 중 7이나 8쯤에 해당하는 통증을 느끼고 있어 웃는 낯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고개를 외로 틀거나 눈을 감았다.


철인3종의 묘미는 이제 더이상은 못 하겠어, 하는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 있다. 바로 그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 빈틈을 찾고, 예를 들어 저기 급수대까지는 가서 그만둘지 말지 결정해야지 하면서, 좌절을 유예하고 희망을 조금씩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피니쉬 라인을 눈앞에 두게 된다. 이러한 좌절과 절망의 순간은 수영과 자전거와 달리가 어느 종목에서든 나타날 수 있고, 희망이 들어갈 수 있는 빈틈 또한 세 가지 종목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철인3종 대회를 완주한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 삶에서 맞닥뜨리게 될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 어떻게든 희망의 빈틈을 찾아낼 수 있게 만드는 반전의 힘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고 나는 생각한다. (스포츠를 업으로 삼지도 않는) 많은 이들이 철인3종 완주를 버킷리스트에 두는 것은 이러한 기대 때문일 수 있다.


여하튼 난 구급차 안에서, 사이렌의 공격 속에서 어떻게든 희망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자세를 바꾸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몰려 왔지만, 긴긴 시간 사선으로 앉아 있던 아내가 급기야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럴수록 어떻게든 부상 저 너머를 떠올려야 했다. 아마 한동안은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될 터인데 실컷 책을 읽어야겠다, 나아지긴 했지만 잠 들기 힘들어 했는데 수술을 하는 동안 실컷 잘 수 있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술 이후 보조 기구를 사용하게 될 터인데 목발 저글링이나 목발 달리기 등을 익히면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별의별 망상을 떠올리지 않으면 사고의 순간이 복기 되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구급차는 달리는 중이었고 사고의 순간으로부터 아직 여섯 시간 정도가 지났을 뿐이었다.


아무리 불량한 책이라도 내게 도움이 될 한 가지 장점쯤은 있기 마련이라고 믿는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책을 끝까지 읽는다. 나는 사고 이후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내게 도움이 될만한 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어떻게든 전화위복의 꾀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러다 문득 철인3종에 대한 책을 한 번 써보면 어떨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사고의 순간 혹은 그 날을 가운데에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철인3종을 버킷 리스트로 갖게 되는 순간, 수영과 달리기와 자전거라는 세 가지 운동을 접하고 발전시켜나가던 시간, 철인3종이라는 스포츠에 입문을 하고 대회에 출전하여 완주를 하기까지의 기억을 한 축에 놓는다. 그리고 부상 이후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고 재활을 하고 일상에 복귀를 하고 다시 하나씩 운동을 시작하고 그렇게 다시 철인3종 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현재와 미래를 또다른 축에 놓으면 어떤 결과물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수술 후 이런 내 생각을 달리기를 함께 하는 크루원에게 말하였고 크루원은 득달같이 온라인 서점에 ‘철인3종’이라는 키워드를 넣었는데, 현재 구매할 수 있는 책이 없다고 하였다. 이후 직접 검색을 해보았더니 일본 서적을 번역한 청소년용 만화가 한 권, 철인3종 입문을 돕는 정보서 한 권이 서치되었으나 둘 모두 품절이었다. 게다가 철인3종 입문서는 중고도서 가격이 삼만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검색되었다. 구매를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그냥 쓰기로 하였다. 이번 글쓰기로 삼만원은 번 셈이다.)


생각해보니 철인3종의 또다른 묘미는 철인3종은 하나의 종목이면서 동시에 세 가지 운동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한 종목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무게감이 압도적이지만 어느 한 종목에서 실패하더라도 또다른 종목이 남아 있다는 안도감 또한 만만치 않다. 나는 후자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당장은 철인3종에 속해 있는 수영, 사이클, 달리기를 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철인3종에 대해 실컷 생각하며 쓸 수 있는 시간을 잔뜩 가지게 될 것이다.


그사이 구급차는 분당의 병원에 도착하였고 들것에서 이동침대로 이동침대에서 이동침대로 하루종일 옮겨다닌 끝에 드디어 응급실 한 켠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친절한 전문의의 손길로 소변줄이 끼워졌고 또다시 엑스레이와 CT를 찍느라 부서진 고관절만큼이나 부러진 신음을 내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곧바로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에 대구에서부터 금식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의료 대란의 와중이었고 수술은 다음날로 미뤄졌고 오후 열 시가 넘어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길고 긴, 통증과 신음이 난무하였던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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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