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토.
퇴원을 하고 며칠 뒤에 소독을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아야 했다. 퇴원을 한 주말 동안 집안을 서성이며 목발을 짚는 연습을 하였지만 택시를 타고 내리는 동안 병원에서 지하층과 지상층을 오르내리는 동안 엄습하는 불안감이 컸다. 주치의 선생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수술이 예쁘게 되었다고 뿌듯해 하였는데, 나로서는 엑스레이 사진에 투영할 정도의 미적 감각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퇴원을 한 다음 주 주말에 아내를 데리고 자전거 클럽까지 운전을 했다. 사고를 당한 이후 이 주가 흐른 시점이었다. 다행인 것이 사고를 당한 것은 왼다리였고, 그 때문에 운전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주치의 선생님에게는 비밀이었는데 사실을 알았다면 크게 나무랄 것이었다. 운전의 가능 여부는 문제가 아니었고, 만의 하나 작은 접촉사고라도 나면 붙기 전인 뼈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어적으로 운전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고 이후 보름이 지나 수술 부위의 실밥을 뽑았다. 실밥을 뽑기 전에 진찰이 있었는데 앞으로 2주 뒤, 그러니까 사고 한 달 뒤쯤에는 다친 다리에 삼십 킬로그램 정도의 무게를 실어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사고 6주 뒤쯤에는 목발을 한 쪽만 짚을 수 있도록 해보자는 플랜도 함께 제시하였다. 나는 집에 와서 체중계에 목발을 짚은 채 한쪽 발을 살짝 올려 보려고 하였다. 삼십 킬로그램의 부하라는 것을 체감하기 위함이었는데 아직은 쉽지 않았다.
사고 이후 16일째가 되는 날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대구의 수성못에서 수영을 하고 슈트를 벗고 그 상태 그대로 사이클을 타다 사고를 당하였으니 그제야 수성못의 물때를 제대로 벗겨낼 수 있었던 셈이다. 샤워 후에는 드디어 회사에 출근을 하였다. 사무실 앞까지는 차로 이동하였으므로 별 무리가 없었지만 이층까지 올라가는 일이 난제였다. 목발 짚고 동영상 오르기에 대한 유튜브 컨텐츠를 여러 개 보았지만 실제로 계단을 오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두 개의 목발 중 하나를 직원에게 맡기고, 나는 한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반대쪽 손으로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 점심은 아내가 준비한 샌드위치로 떼웠고, 계단 오르기보다 1.5배쯤 어렵게 계단 내려가기의 과정을 거쳐 퇴근을 했다.
출근하고 며칠 뒤 노트북 슬롯에 삽입할 메모리 카드를 가지고 대학 동기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아내와 회사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다친 모습을 처음 보여주는 것이었다. 친구는 3~4년여 만에 만나는 것이었는데 혹여 놀랄까 미리 부상 사실을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만나자마자 갑자기 내 팔뚝이며 허벅지를 만지작거렸다.
“뭐야? 왜 그러는데?”
“그러니까 네가 철인3종 대회에 나갔다는 거야?”
“맞아, 그러다가 다쳤다니까. 근데 왜 이렇게 만지작거려?”
“그게 철인3종을 했다면 뭔가 굉장히 근육질이 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아 그만 만져. 철인3종을 하긴 했지만 충분히 근육이 있지도 않았고, 그마저도 지난 2주 사이에 완전히 사라졌어.”
“그렇구나, 쩝...”
친구를 돌려보내고 생각해보니 한동안 운동을 하는 친구만 만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운동을 하는 사이가 아닌 친구로는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카카오톡을 켜서 운동과 관련한 단톡방을 살펴보니 아래와 같았다.
먼저 아이언맨크루 단톡방이 있다. 2024년 6월 기준 88명이다. 그해에 크루에 가입을 하면 단톡방에 초대되며, 이후 각종 대회나 훈련 등에 대한 정보는 물론 운동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이다. 또한 철인3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또다른 운동과 관련한 번개 공지도 올라오는데 가장 최근의 공지는 북도사수불(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으로 이어지는) 종주 산행에 대한 것이다.
[북도사수불]
일시: 9/15 (일) 07:00 AM
집결: 불광역 9번출구 앞
종주거리: 약 45km
코스: 대호아파트 - 승가봉 - 대동문 - 소귀천계곡 - 원통사 - 도봉산 신선대(정상) - 사패산(정상) - 호암사 - 동막골 - 도정봉 - 수락산(정상) - 덕릉고개 - 불암산(정상) - 공릉산백세문
소요시간: 14시간
접근성이 좋고 상황에 따라 중탈이 용이한 종주 코스니까 함께 걸어 보아요^^~
참석자 (댓글)
1.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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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5.
위와 같은 공지글이 최초 번개를 친 사람이 1번으로 등록을 한 상태로 올라오면 일시와 코스 등을 고려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2번으로 등록을 하여 복사 붙이기를 한다. 이후 번개 당일이 되면 참가한 사람들이 운동 전후의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하나의 운동 번개가 완성되는 것이다.
아이언맨 크루는 단톡방과는 별개로 공지방을 함께 운영한다. 기존 단톡방의 경우 회원들이 활발하게 글을 올리는데 이때 중요한 공지가 뒤로 밀려 확인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공지방의 경우에는 운영진이 올리는 공지글 이외에는 별도의 글을 올리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아이언맨 크루 입문4기 단톡방은 따로 존재하고 15명이 등록되어 있다. 지난 해 철인3종에 입문을 함께 한 동기들만으로 이루어진 단톡방이다. 아이언맨 크루 단톡방보다는 좀더 사적인 대화가 오간다. 서로이 대회 참가나 훈련을 응원하기도 하고 함께 장거리 라이딩을 하거나 오픈 워터에 나갈 약속을 정하기도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축하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 술자리 스케줄의 조정과 확정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2024년에 모집된 <오픈케어 아이언맨크루 입문5기> 단톡방은 입문5기와 이들을 서포터하는 크루원이 모두 함께 하는 단톡방이고 39명이 등록되어 있다. (이렇게 함께 하는 방과 별도로 훈련부 방은 따로 운영되는데 그곳의 참가자는 25명이다) 이 단톡방은 입문5기가 철인3종에 입문하는 첫 번째 대회까지 운영되는데, 입문반이 입문을 하고 난 다음에는 입문5기는 남고, 나머지 선배 크루원들은 방에서 나가도록 되어 있다. 이 방은 입문5기의 진용이 갖추어지면 시작이 되는데, 이 방에서 철인3종의 모든 훈련 과정 그리고 대회 준비 과정이 진행된다. 방을 폭파하고 새롭게 방을 만들면 방에 축적된 정보들이 사라질 수 있어 입문5기들만 남아 방을 유지하도록 하는 전통을 유지한다.
아이언맨 크루에서는 이처럼 상시적인 방도 운영되지만 각종 대회에 따른 한시적인 단톡방도 운영이 된다. 충주대회와 익산대회의 단톡방이 대회 전에 만들어져 대회 후에 사라졌고, 현재는 구례대회를 위한 단톡방이 개설되어 있다. 이 방에서는 대회 참가를 위한 교통편과 숙식 그리고 대회와 관련한 공지 사항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충주대회와 익산대회의 경우 수온이 높아 수영 종목을 빼는 대신 ’런-사이클-런‘의 듀애슬론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이러한 변경 사실을 이 방에 가장 빨리 확인할 수 있다.
위의 방들이 철인3종과 관련된 방들이라면 이와는 별개로 달리기 위주의 방들은 따로 존재한다. 가입되어 있는 오픈케어 달리기 크루인 ’서코크‘ 단톡방은 6월 당시 65명의 인원이 참가하고 있었다. ’서코크‘는 석촌호수크루의 줄임말인데 명칭처럼 석촌호수에서 주말마다 달리는 모임이다. 다만 현재는 단톡방은 운영하지 않고, 매주 토요일 달리기 모임만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이를 대신하여 달리기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교환하는 ’운동정보공유방‘이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연세대학교 대운동장에서 함께 달리기를 하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연대연대‘, 부부가 함께 달리기를 하는 네 명이 조촐하게 등록되어 있는 ’새싹런‘이 있고, 아내의 사이클을 도와주는 이들과 함께 하는 ’코마나트모임방‘도 있다.
이 모든 방들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거의 100% 운동과 관련된 것이다. 방에 들어와 있는 서로의 직업은 몰라도 서로의 기록은 환하게 알고 있다. 방에서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은 각종 대회에서 함께 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함께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는 우정과는 또 다른 결의 감정을 공유하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종종 전우애라고 부르고는 한다.
ps. 글을 작성하는 오늘로부터 며칠 전인 지난 토요일 tvN 예능프로그램인 <무쇠소녀단>의 첫 번째 방송이 있었다. 여성 연예인 네 명이 철인3종에 도전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포로그램이다. 아내와 함께 시청하였는데 몇몇 지점에서 얼핏 아내가 눈물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