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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13 좀더좀더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1.5킬로미터

2023.3.26.일

by 우주에부는바람

오픈케어 아이언맨 크루(이하 아이언맨 크루) 신청을 한 이후 첫번째 관문은 바로 수영 테스트였다. 철인3종의 세 종목 중 수영은 스타트와 함께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하는 과제다. 또한 가장 위험한 종목이기도 하다. 보통은 슈트를 착용하기 때문에 부력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영 1.5 킬로미터를 오픈 워터(수영장이 아니라 강이나 바다와 같은 야외)에서 수행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이후에 진행될 사이클이나 런의 수행 능력과 상관 없이 철인3종 도전이 불가능하다. 아이언맨 크루에서 철인3종 입문반을 모으면서 수영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이 수영 테스트에 통과해야만 정식으로 아이언맨 크루 입문4기가 되는 것이었다.

수영 테스트가 있는 3월 26일 이전에 입문4기에 지원을 한 우리들은 이미 7월2일에 있을 '세종아시아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신청을 한 상태였다. (철인3종 대회는 대부분 최소한 3~4개월 이전에 신청을 받는다. 이때 신청을 하지 못하면 향후 추가 신청이 있을 때 신청을 해야 하고, 어떤 대회는 추가 신청이 없을 수도 있다. 철인3종 대회는 마라톤 대회보다는 낫다. 동아마라톤, JTBC마라톤, 춘천마라톤과 같은 메이저 마라톤 대회는 8~9개월 전에 대회 신청을 받고, 한 두 시간 안에 모든 신청이 끝난다.) 그러니 테스트를 통과하고 훈련을 통해 준비를 한 다음 대회 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대회 신청을 한 다음에 수영 테스트에 임해야 했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되돌아갈 다리를 끊고 전장에 나가는 군인의 마음이랄까. 참고로 철인3종 대회 참가 비용은 대부분 15만원을 넘는다.


수영 테스트는 2023년 3월 26일 서울 시내에 위치한 초등학교 수영장에서 진행되었다. 오십 여분 워밍업을 시행한 후 각 레인에 두 명씩 들어가서 테스트에 응해야 했다. 테스트는 자유형 500미터를 13분 안에 돌아야 하는 것인데, 25미터 레인을 열 번 왕복해야 하는 거리이니 한 바퀴를 1분 18초에 돌아야 하는 속도이다. 이 속도로 철인3종 1.5 킬로미터 수영 코스를 헤엄친다면 39분이 걸리는 셈이니 평균 50분인 컷 오프 안에 골인을 할 수 있는 속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수영장과 오픈 워터는 조건 자체가 워낙 달라서 수영장에서 1.5킬로미터를 39분에 마칠 수 있다고 하여도 오픈 워터에서의 기록은 훨씬 늦는다고 예측해야 한다. 대부분은 실내 수영장보다 오픈 워터에서 1.5킬로미터를 기준으로 4~5분 가량 더 느린 기록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나는 결혼을 한 다음 해인 2000년에 수영을 시작했다. 세기를 넘기기 전에 결혼을 하자는 합의에 따라 아내와 나는 1999년, 그러니가 세기말에 결혼하였다. 우리는 1991년에 연애를 시작했고 1997년과 1998년에는 드문드문 동거를 하였는데, 당시로서는 꽤나 급진적인 커플이었다. 결혼 또한 거창한 계획과 함께 치렀다기보다는 양가의 부모님을 향한 마지막 효도 쯤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탐탁치 않아 했고 결혼식이라는 거추장스러운 형식도 마뜩찮았다. 심지어 결혼을 얼마 앞두고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둘이 먹고 사는 데 두 사람이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낭비, 라는 내 말에 아내는 수긍했고 일단 나는 퇴사를 하고 아내는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렇게 자발적인 백수 생활이 해를 넘겨 계속되던 다음 해 봄, 나는 더이상 삶의 고삐를 느슨하게 만들었다가는 어디로 떠내려갈지 모르겠다, 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날도 나는 전날의 숙취로 늘어지는 몸을 간신히 의자에 앉혀 놓은 채 세이클럽이라는 채팅 서비스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같은 방에 있던 한 친구가 주절거리는 수영장 코치의 뒷담화를 듣다가 별다른 마음의 준비 없이 집을 나섰다. 신혼집이 있던 삼전동에서 종합운동장 수영장까지는 자전거로 이십 여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프론트에서 주3회 초급반 레슨에 수강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했고, 옆에 있는 매장에서 수영복과 수경과 수모를 샀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새벽 여섯시에 시작하는 수영 레슨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계절은 늦가을이었고 곧 삭풍이 부는 겨울로 이어졌다. 두터운 장갑을 끼고 추리닝을 두겹으로 껴입고 털모자를 쓰고 자전거 페달을 굴러 수영장에 도착하면 속눈썹에 짧은 고드름이 몇 개씩 생겼다. 그때부터 삼 년여를 종합운동장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았다. 이후에 몇 개월의 공백기를 가진 다음에는 올림픽 경기장 수영장으로 옮겨서 또 그곳에서 강습을 받았다. 그렇게 거의 이십 여 년의 시간 동안 공백기가 있기는 하였지만 수영의 끈을 아예 놓지는 않았다.


종합운동장 수영장과 올림픽 경기장 수영장은 모두 50미터 레인을 갖추고 있었고 당시에는 강습도 50미터 레인에서 이루어졌다. 구청 단위의 수영장이 대부분 25미터 레인인 것을 생각하면 50미터 레인에서 수영을 시작한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장거리 수영은 일종의 거리 늘리기 게임 같은 것인데, 25미터를 골인지점이라고 생각하며 헤엄을 치는 것과 50미터 지점의 터치를 짐작하며 헤엄을 치는 것은 마음 가짐에서 차이가 생긴다. 수영을 시작하고 육 개월이 되기 이전에 몇 백 미터를 갈 수 있게 되었는데, 어쨌든 50미터를 쉬지 않고 나아가면서 생긴 끈기(혹은 오기)가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자유 수영을 갈 때마다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꿈꾸며 서지 않고 헤엄치는 거리를 다만 몇 미터라도 늘렸다. 오늘 25미터를 수영하고 멈췄다면 다음 날에는 최소한 26미터까지는 나아간다는 정신으로 수영에 임했다.


처음 수영을 배우던 2000년 초에는 대략 1년을 조금 넘으면 그 수영장의 최고 레벨 클래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수영장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같은 수영장이더라도 그 당시의 강습 인원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초급반, 중급반, 상급반, 고급반을 거쳐 연수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연수반에 이르렀다고 해도 이미 고인물이라고 불리우는 선배들이 있다. 저기 가장 오른쪽(혹은 왼쪽) 레인을 사용하는 초급반을 보면서 으쓱하지만 동시에 같은 레인의 앞 순서에서 힘차게 나아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다시 그 어깨를 움츠리고 만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종합운동장 수영장의 연수반 시절은 그야말로 수영의 꼬꼬마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종합운동장의 수영장에서 올림픽 경기장 수영장으로 적을 옮긴 다음에는 (종합운동장 수영장의 연수반에 해당하는) 마스터반에서 수영을 했다. 이때가 좀더 본격적으로 수영을 한 시기인데 함께 마스터반에 등록되어 있는 운동 선배들이 즐비하였던 탓이다. 이곳의 마스터반은 당시에 세 개 레인을 썼는데, 같은 마스터반이라도 상중하의 세 레인으로 나눠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나는 마스터반의 가장 낮은 등급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가장 높은 등급까지 나아갔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최상급 레인의 중간 이상으로 내 자리를 끌어 올리지는 못했다.


이곳에서 수영을 하는 동안 미사리 조정 경기장에서 진행되는 3킬로미터 핀 대회 그리고 한강 횡단 수영 대회에 몇 차례 출전을 하였다. 3킬로미터 핀 대회는 오리발이라고 불리는 롱핀을 발에 끼우고 조정 경기장을 끄트머리까지 갔다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나이대로 나눠 출발을 하였는데 출발을 하자마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등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첫 대회의 추억이 그리하여 다음 대회 때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느리게 출발하는 것으로 몸싸움을 피했다. 한강을 횡단하는 수영 대회 또한 오리발을 끼는 것이 원칙이었다. 당시 맨발 수영 대회에서 몇 차례 익사 사고가 난 다음 대부분의 오픈 워터 수영 대회는 오리발을 끼고 진행하는 것으로 바뀐 상태였다.


하지만 이처럼 열과 성을 다하여 수영에 힘쓰던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수영 대회에 참가하는 에이지에서 중간 정도의 기록을 세우기는 하였지만 더 앞당길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잠실에서 서대문 쪽으로 이사를 한 다음에는 서대문 문예회관 실내 수영장과 서대문청소년센터 실내 수영장에서 간간이 수영을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아내가 수영을 배우고 싶어하여 일종의 개인 교습을 하는 것으로 수영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엄청난 몸치인 아내는 좀처럼 수영에 진척이 없는데, 현재까지도 오십 미터를 겨우겨우 자유형으로 해내는 정도이니 개인적으로 그리고 부부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안타깝다. 아내는 리듬감과 균형감에서 뒤떨어지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성실함에서 이를 모두 만회하는 스타일이다. 내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수영하기를 그만두지는 않는데 딱히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가하면 이런 아내는 내가 철인3종에 도전하기로 하는데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줬다. 그리고 나는 이날 입문반에 도전하는 동기들 중 중간에서 조금 모자란 하위권의 기록으로 수영 테스트를 통과했다. 이제 정식으로 아이언맨 크루 입문4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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