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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Oct 01. 2022

엄마, 효과가 있었어.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3월, 준이는 대안학교에 입학 후 오래전부터 다니던 아이처럼 편안하게 지냈다. 어린이집에서는 적응이 워낙 힘든 아이였기에 등교를 어려워할 거라 생각해왔는데 '오 이제 컸구나' 하고 안심했다. 아이는 환대와 존중이 몸에 익은 교사들을 빠르게 신뢰했고 학교에서 하는 놀이를 즐겼다. 가끔 올라오는 사진에서도 밝고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8월, 내가 복직하면서 준이는 여전히 방학인데 나는 출근을 하게 되었다. 나의 복직과 준이의 개학 사이에 2주간의 갭이 발생했다. 고민하다가 시댁에서 봐주신다 하여 준이는 안동으로 보내졌다.


준이는 물놀이도 할 수 있고, 다정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니 안동에서 잘 머물 수 있다고 기분 좋게 내려갔다.




2주는 꽤 긴 시간이었다. 둘째 민이는 형아 준이를 많이 보고 싶어 했다. 잘 놀지도 못하고 나를 매번 따라다니기 일쑤였다. 가끔씩 통화하면서 눈에 안 보이는 준이는 잘 살고 있겠지 했다.




2주 뒤 준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준이가 개학 후 등교하면서 아빠와 헤어지는 것을 많이 힘겨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이 준이가 많이 울어서 학교에 두고 오는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다. 하루는 전화가 왔다, 담임선생님께. 준이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울어서 목소리 듣고 싶은지 묻고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다. 울먹이는 아이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왔다.


"엄마, 빨리 와.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와."


나는 쌓인 일이 많았기에 최대한 빨리 간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바로 가지 못해서 슬펐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 보면 밝게 웃고 놀기도 하는데 순간 감정에 압도되는가도 싶었다만, 2주간 떨어져 있었는데 충분히 엄마 냄새를 맡게 할 시간이 부족했구나 생각했다.




그날 데리러 갔더니 신나게 잘 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엄마 학교 따라가고 싶다고 내일 아침에 헤어지는 걸 생각하니 싫다는 표현을 했다.




다음날도 남편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이 울어서 한참을 걸려 헤어졌다고 했다. 학교 안까지 들어가서 안아주고 책도 읽어주고 그런 뒤에야 조심스레 헤어졌다고.




얼마 뒤 일기장을 보고 놀랐다. 안동 집에서 준이가 혼자만 집에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어머님 아버님이 밭에 약을 뿌려야 하는 상황이라 준이를 데리고 갈 수 없어서 잠시 집에 있으라고 했단다. 아이에게 혹시라도 약이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되셨던 거 같다.


준이는 혼자 집에 있다가 약속한 30분이 지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지 않자, 할머니 전화기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약을 뿌리고 있던 두 분은 전화가 온 줄 몰라 받지 못하셨고 준이는 그때부터 울면서 이전에 배워둔 112에 전화를 했다. 집에 혼자 있어서 무섭다고, 데리러 와달라고.


경찰이 와서 집에 함께 있으면서 어른들께 연락이 닿았고 얼마 뒤 준이는 어머님 아버님과 상봉할 수 있었다.


준이는 그날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었다 했다. 왜 하지 않았는지 물어보니 엄마가 슬퍼할 거 같고, 밤이니까 어차피 엄마는 자기를 못 데리러 올 거 같아서 참았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은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놀랐을 준이 마음을 이제야 살피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슬픈 자책과 어른들께 아쉬움도 올라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있었으니 아이가 아빠와 떨어지는 걸 힘들어할 수 있겠다 이해되었다.


그날 밤 아이와 이야기했다.


나: 준아, 학교에 있을 때 엄마 아빠 많이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준: 응. 엄마 아빠랑 계속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침에 헤어지는 게 너무 슬퍼. 눈물이 나와. 슬픈 날은 먹기 싫은 거 먹어야 할 때랑, 풀기 싫은 문제가 있을 때 더 눈물이 나와.


나: 그러게~ 꼭 껴안고 계속 같이 있으면 좋겠다. 그치?


준: 어. 그런데 안 되잖아. 하고 싶은데 안 될 때 어떡해야 돼?


나는 고민하다가 비폭력대화의 욕구 명상을 떠올렸다.


나: 준아. 우리 뇌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을 못 한대. 레몬을 떠올려 봐. 침이 고이지 않아? 생각만 했는데 진짜 레몬을 먹은 거랑 똑같은 줄 아는 거야. 그거랑 똑같아. 엄마랑 아빠가 곁에 있다고 생각해. 엄마 아빠가 옆에서 '혁준아 사랑해'하고 웃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진짜 옆에 있는 거랑 똑같은 느낌이 들어. 한번 해볼래?


준: 어..... 알았어. 그래도 빨리 와야 돼.


나: 당연하지. 무조건 일 딱 끊고 갈 거야.


마음속이 시끄러웠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즉흥적 생각이 솟구쳤다. 아이를 잘 돌보려고 대안학교에 보내는데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다니 웃긴 상황이었다. 다음에는 내 직장인 학교에 데려가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아이는 부모가 돌보는 게 제일이라는 판단도 올라왔다. 이런 이야기밖에 못해주는 것도 미안했다.







다음날 준이를 데리러 갈 때까지 마음이 급하고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도착했더니 준이가 옆으로 와서 귀에 대고 살짝 속삭였다.



준: 엄마, 효과가 있었어.


나: 응? 오 축하해. 그런데 뭘까?


준: 어~ 엄마가 이야기한 거.


나: 아 생각해 봤어?


준: 응. 엄마랑 아빠가 나 머리 쓰다듬어주면서 나한테 웃고 있는 거 생각했더니 좋았어. 그리고 둘 다 나를 보고 '사랑해'하는 거.


나: 어머? 진짜? 이렇게? 이렇게 손으로 머리 쓰다듬고? 이렇게 꼭 안고 '사랑해' 했어?


준: 응.


나는 준이를 꼭 안았다.


내 말을 믿은 것도 고마웠고, 잊지 않고 그걸 해본 것도 고마웠다. 그리고 자기감정을 잘 다룬 것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머리 쓰다듬는다는 것은 내가 이야기한 적 없는데 우리 준이는 머리 쓰다듬어주는 것이 좋나 보다. 많이 쓰다듬어 줘야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다양한 일을 만난다. 내가 아이가 겪는 경험을 통제할 수는 없음을 늘 마주한다. 아이는 나처럼 자신만의 경험 속에서 나와는 다른 배움을 얻을 것이다. 언제나 아이의 경험을 조절하고 거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지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대신 그때마다 함께 있음을 늘 상기시켜주고 싶다. 경험에서 오는 감정을 엄마인 내가 충분히 안아주고, 그 감정을 소중히 다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기쁘고 보람차겠다. 그리고 어느 분이 말씀하신 대로 그 과정도 아이가 있어 겪을 수 있는 감사한 축복임을 잊지 않고 싶다.








준아.


고마워.


언제나 준이가 엄마에게는 1등이야.


그리고 다시 혼자 있게 될 일 없겠지만 그런 무서운 일이 생기면 엄마한테 전화해. 100시간이 걸려도, 한밤중이어도 엄마 준이에게 바로 달려갈 거야. 엄마는 원래 그래도 되는 거야. 너는 내 아들이니까 그 자체로 엄마는 항상 보고 싶고 항상 도와주고 싶거든.


엄마 마음도 언제나 준이 머리 쓰다듬어주고 싶고 준이 보면 웃음이 나오고 자꾸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엄마가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준이에게 사랑 보내고 있을게. 학교에 있을 때에도 엄마가 보내는 사랑이 준이를 향해 오고 있다는 거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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