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대화가 필요해
마음이 차분한 사람은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갖고 있으므로 행복한 상태이다. 필요 이상의 것을 원하는 순간 행복은 넘쳐서 흘러내린다. 이것이 바로 쾌락의 본질이다.
- 에피쿠로스 / 고대 철학자 -
오랜만에 새워보는 날밤이다. 어느 정도는 체력에 자신이 있던 터에 하루 정도 밤샘하며 작업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 사우나도 하고 약간의 잠을 잔 후에도 여전히 비몽사몽이다. 내 생각과 상관없이 내 몸이 무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나이 듦의 가장 큰 징후가 급격한 체력의 저하다. 하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25년을 넘게 꾸준히 헬스클럽에서 체력을 단련했기 때문이다. 헬스클럽에 안 나간지 1년이 넘었다. 매일 아침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은 어쩌면 최소한의 생존전략이었다. 전혀 새로운 일들이 긴박하게 쉴틈없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그 절실한 육체적 저항정신이 사라지니, 자연스레 근력이 빠지고 체력은 방전되었다.
몸이 약해지는 건 생물학적 현상이므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몸하고 더 친해져야 한다. 몸이 지치거나 병들면 마음에도 영향이 간다. 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면 그런 사실조차 모른 채 이유 없이 마음이 답답해지고, 심각한 경우 우울증까지 걸리게 된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란 말처럼 몸이 건강해야 올바른 사고와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데 이전처럼 움직이려다가 걸려 넘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역시 몸이 옛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늙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아도 자기의 몸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신의 몸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 교감하며 행동해야 한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몸을 채찍질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오만한 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몸과 제대로 대화한다면 마음대로 움직이다가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끔 만나는 사람 중에 직업 군인으로 용맹하기로 유명한 ‘해병대’ 출신의 교수님이 한 분 계신다.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는데, 최근 몇 개월 사이 큰 수술을 두 번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체력은 자신 있어 하시는 분이라,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자초지종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최근 배드민턴에 푹 빠져 열정적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떨어지는 ‘셔틀콕’을 급하게 따라가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 다리가 꼬이고 넘어지며 이마를 벤치에 그대로 찌는 바람에 머리 수술을 하였고, 늘 하는 등산 길에서 빗길에 넘어져 무릎을 심하게 다쳐 두 번째 수술을 하고 예전같지 않은 몸과 자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를 지키는 자는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가득 채우려 하지 않으니 깨진 뒤에도 새로 이룰 수 있다.
- 노자 / 도덕경 -
몸과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몸을 혹사하거나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니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리는 일도 줄어든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하는 소리에 기를 잘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대화만 할 것이 아니라 몸을 잘 보살펴야 한다. 지속적인 근력운동과 충분한 휴식은 물론 몸을 지탱하는 음식 섭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나이들어 과식은 절대 금해야하는 원칙이다. 소화를 담당하는 내장 기능의 저하에도 원인이 있지만, 몸을 지탱하고 에너지를 확보하는데 과식은 불필요하다. 잘못된 식습관은 자꾸 더 좋은 음식을 계속해서 원하게 된다. 좋은 음식만 먹다 보면 보통 음식으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또 호화로운 식사는 과소비로 이어져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끔은 자신을 위한 선물로 호화로운 식사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예외로 두는 편이 바람직하다. 생존에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면 소박한 식사가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몸은 부지런한 일꾼이다.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무심코 몸을 혹사하고는 한다. 자신이 명령해서 움직일 때는 물론이거니와 그렇지 않을 때까지 알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내장은 저절로 움직인다. 몸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우리는 몸을 통해 세상에 연결되어 있으며 세상에 존재한다. 우리가 몸을 가꾸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는 내 몸을 내 소유물로 생각하고 함부로 다루는 경우가 있었다. 무리하게 몸을 사용하기도 하고, 햇볕에 노출시키고, 습한 곳에 방치하여 발에 무좀이 생기게 하였으며, 과식으로 소화기 내장을 혹사시켰다. 모든 만물은 내용연수가 있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다. 장기, 무릎, 뼈, 근력 등 하나같이 왕성한 시절이 있으면 시들하여 쉬어가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자신과 몸 그리고 세상, 이 셋은 각각 독립되어 있으며 우리 자신은 몸을 통해서만 세상을 알 수 있고 세상에서 활약할 수 있다. 몸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한다면, 오늘처럼 무리하게 날밤 세우며 혹사시켜서는 안된다. 만약 피치못하게 몸을 사용했다면, 그만큼 휴식을 주고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여 정상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오늘은 피곤한 몸을 충분히 위로하고 쉬도록 해야 겠다. 그리고 내일은 도서관에 들려 하루종일 책을 읽으며 신선놀음으로 지친 몸을 위로해 줘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