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의 <입맞춤>
그 후에 파리에서 만난 로댕 미술관의 <입맞춤>은 우리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 대한 생각을 더욱 확실시 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보다도 더 내 마음을 끌었다. 로댕의 <지옥의 문>과 <생각하는 사람>은 직접 두 눈으로 봤다는 사실에 감동했다면, <입맞춤>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후 한국 소마미술관에서 다시 한 번 기쁘게 만났다.)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어서 로댕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다 간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의 <입맞춤>이라는 작품을 보니 하나는 알 것 같았다. 그는 매우 로맨티스트였을 것이라는 것. 사랑하는 연인이 부둥켜안고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을 포착하여 아름다운 곡선으로 조각품을 만들어 낸 그의 예술성에 경탄을 하게 된다. 아마 로댕도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갈구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나는 유럽여행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내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번번이 좌절되어 제대로 된 연애도 한 번 못해보고 서른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뭐가 문제일까를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 뭔가 오해가 있는 건 아닐까, 훼방꾼이 있는 건 아닐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하는 피해망상적인 결론을 내리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누가 잘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서로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나는 내 발에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으려고 낑낑대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기 때문이 크다.
나는 여행을 해도 휴양이 아닌 발품 팔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퇴근 후나 주말은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노트북을 켜는 것을 좋아한다. 때론 미식가처럼 맛있는 음식을 탐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예술작품이나 공연 관람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재미없고 따분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내 취향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비슷한, 또는 호기심이 생길만한 새로움일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파리 에펠탑 앞에서 만난 한국인과의 잠시잠깐의 대화,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난 한 외국인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은 정말 다양한 사람으로 가득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안테나를 올리면 나와 연결되는 사람이 분명 어디선가 신호를 보내오리라 믿는다.
이제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내향적이고 사색적인 나의 성격을 받아들이고, 조금은 재미없어도, 좀 따분해도, 고리타분해도 이런 나를 인정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로댕의 <입맞춤>처럼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 그 단 한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하며 말이다. 그 때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며 기다리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