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고

걸으면서 느끼는 행복

by 루비

처음 런던에 발을 디딘 날 입었던 꽉 끼는 반바지가 파리에 도착해서는 헐렁해졌다. 딱히 굶거나 고생을 많이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정말 많이 걸어 다닌 것이 단기간에 살이 빠진 이유였던 듯하다. 정말 런던에서도, 파리에서도 계속해서 걸었다. 이런 게 바로 배낭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사진 2017. 1. 29. 오후 2 18 44.jpg 런던 리젠트 파크 안 프림로즈 힐, 리젠트 파크는 런던에서 가장 큰 공원이다.


런던에서는 무엇보다 공원을 많이 걸었다. 리젠트 파크, 하이드파크, 그린파크, 세인트제임스파크 등. 이렇게 많은 공원이 서로 가까이 분포한다는 사실이 무척 놀랐다. 사람들의 표정은 불행을 찾아볼 수 없었고, 운동하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 잠시 쉬는 사람들의 미소로 나까지 절로 기분이 상쾌했다. 날씨도 한 몫 했다. 런던에 있었던 4박 5일은 너무 덥지도, 흐리지도 않은 적당히 맑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공원을 그리 많이 가보지 못했다. 집 근처에 공원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유일하게 자주 갔던 공원이 서울 동작구에 있는 사육신 공원이다. 노량진에서 임용시험 재수 공부를 하던 시절에 산책 겸 자주 들르곤 했었다. 한강이 보이는 점은 좋지만 매우 아담한 공원이었다. 그런데 런던에 있는 공원은 하나의 숲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말 크고 넓었다. 정말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런던에 있는 공원뿐만 아니라 파리 세느강변을 걸을 때도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옆으로는 유유히 세느강이 흐르고 강변을 따라 이어진 길을 쭉 걸어가니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에단호크와 줄리델피 주연의 비포 시리즈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중 <비포선셋>의 배경이 바로 파리다. 싸웠던 연인사이라고 해도 다시 감정이 샘솟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고 느꼈다. 마침 내가 걷고 있을 때는 한 커플이 보였는데 그 둘은 서로 키스를 하느라 내가 그 옆을 지나가는지는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사진 2017. 1. 29. 오후 10 13 14.png 파리 세느강변

만약 이렇게 걷고 또 걸었던 시간들을 혼자라는 자괴감에 빠졌다면, 나는 금세 우울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한국과 비교하며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곳이 없냐며 실망했다면 행복은커녕 불행한 감정들만 번졌을 것이다. 그런데 단시간에 살이 빠진 것만큼이나 내 마음의 부정적인 감정들도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모든 것이 감사했다. 이렇게 머나먼 외국에 여행 올 수 있었던 시간, 비용이 있다는 점, 혼자서도 씩씩하게 다닐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점, 아름다운 풍광을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감사했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프랑스든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도시들을 보유한 점이 흐뭇했다. 언제 또 다시 와보겠냐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정말 내 온 몸과 정신을 기울여 여행 그 자체를 즐겼다. 파리에서는 릭샤 사기도 당하고 소매치기도 당했는데, 그런 불행쯤은 금세 또 다른 행복으로 상쇄가 되었다. 그만큼 여행은 행복 그 자체였다.


혼자라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도 세상은 바삐 돌아가고 있다. 사실 혼자라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교도 좋지 않다. 비교는 불행의 근원이다. 중요한 건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삶이다. 내가 혼자일 때, 조그만 월세방에 살 때, 무일푼일 때조차 우리는 행복을 건져 올릴 수 있다. 나는 부잣집 딸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가진 게 많지도 않다. 그렇지만 서른이 넘기 전에 꼭 유럽여행을 가고 싶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큰 용기를 내고 떠나왔다. 모아놓은 돈도 얼마 없지만 유럽여행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두려움을 떨치고 시도해보았다. 그리고 다녀온 후인 지금은 이 모든 게 감사하다. 걷고 또 걸으면서 깨달은 진리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감사하며 사는 삶, 그것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또다시 오랜 기간 걷기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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