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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큐 Feb 16. 2024

라라랜드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특정 상황에, 특정한 의도로, 특정한 음성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 정해져 있다. 하지만 언어에는 역사성이라는 속성도 있어 시간이 흐르며 생성되기도 하며 변화되거나 소멸되기도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제이는 선구자다. 자신만의 언어를 새롭게 창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노래로. 이쯤 되면 천재라고 해야 하나?



          제이는 노래로 자신의 감정이나 의도를 표현하기를 즐긴다. 마치 영화 《라라랜드》를 보는 듯하다. 오래전 영화라 자세한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특유의 분위기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색채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하겠다. 어릴 적 동화 속 나라에 온 듯한 배경에서, 등장인물들이 뮤지컬을 하듯 노래로 대화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제이도 자기만의 세상에서 우리에게 노래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영화와 다른 점은, 제이의 나라에서 상대방은 노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제이가 노래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조차 기특했다. 그전에는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을 때는 거의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잡아끄는 등의 행동으로 표현했다. 그러니 본인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뻤겠는가?



          하루는 제이가 아내에게 가볍게 혼난 적이 있다. 워낙에 순한 성격인 데다 발달이 느리고 겁이 많은 제이의 특수한 상황도 있기에 제이는 거의 혼나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훈육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아내는 가끔 제이에게 다소 엄한 목소리로 말하곤 하였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제이는 누워 있었고 아내는 제이의 위에서 스핑크스 비슷한 자세로 제이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였다. 그런데 갑자기 제이가 '허수아비 아저씨'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아이 무서워, 아이 무서워... 성난 허수아비 아저씨"

          우리 부부는 감동했다. 제이가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다니. 그것도 자발적으로 표현하다니.



          물론 이렇게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맥락이 없이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하기 싫은 일을 하라고 했을 때는 '머핀맨'을 부른다. 부른다기보다는 가사를 말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싫다고 하는 것과 머핀맨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없다. 하지만 제이에게는 남들이 못 보는 무언가의 연결고리가 보였나 보다. 얼마 전까지, 그리고 요즘에도 가끔씩은 머핀맨을 외치니 말이다.



          몇 년 전 '싫어'라는 표현의 우수성을 깨닫고 나서는 머핀맨을 부르는 일이 줄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싫다고 했는데도 계속하라고 하면 - 싫어하는 약을 먹인다던가 하는 등 - 머핀맨을 외친다. 한 가지만 줄곧 하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노래를 다양한 상황에 자기만의 규칙에 따라 사용한다.



          제이에게는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 세상을 지켜주고 싶다. 물론 제이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나와 함께 어울리며 잘 사는 것이 최선이다. (가끔은 제이의 행복의 관점에서 이게 진짜 최선일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를 위해 몇 년째 제이와 우리 부부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제이가 끝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한다면, 자신만의 세상에서 머무르는 것을 고집한다면 나는 그 세상을 지켜주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무언가도 있어야 한다.



          나는 십 년이 넘은 디젤차를 타고 있다. 무리해서 바꾸려면 바꿀 수도 있겠지만, 차의 우선순위가 그렇게 높지 않고, 뽀대(?)가 안 난다는 것 외에 크게 불편한 점도 없어서 그냥 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오래된 차를 탈 수 있는 건 나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십 년 된 디젤차를 타도 나는 나다. 하지만 제이는 다르다. 제이는 어쩌면 사회적 약자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럴수록 보이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어쩌면 이 멍청한 세상은 모닝을 타고 나타난 제이는 모닝으로, 포르쉐를 타고 나타난 제이는 포르쉐로 대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제이에게는 좋은 차가 필요하다. 좋은 집이 필요하고 좋은 옷도 필요하다. 때론 약자에게는 물질적인 것들이 훌륭한 방패가 될 수 있다.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가림막이 될 수 있다. 제이만의 라라랜드를 지켜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또 마음이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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