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제이는 다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 살 터울의 조카가 망아지처럼 뛰어다닐 때도 - 신기하게도 그 친구의 성별은 여자다 -, 제이는 마치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처음 타는 사람처럼 조심조심 다녔다. 조카와 같이 있으면 다칠까 걱정되는 수준이었다. 이러니 다치려야 다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어린이집을 다녀와서 밥을 먹고 있는 제이가 좀 이상해 보였다. 제이는 오른팔을 거의 차렷 자세로 하고 있었다. 보통의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면 되겠지만 당시 제이는 표현을 거의 하지 못했다. 게다가 5살 - 바뀐 나이로 4살 -이 되었는데도 밥을 먹여줬기 때문에 - 거북이처럼 느린 제이의 발달과 마더 테레사와 같은 할머니의 사랑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어디가 아픈지를 판단하기도 어려웠다. 제이는 팔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깨 쪽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진료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조언을 구했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어깨를 들어보기도 하고 살살 움직여보기도 했지만 제이는 아픈 기색이 없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 정찬성 선수가 시합 중 어깨가 탈구돼서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만약 어깨가 빠졌다면 통증이 심해 아이가 이렇게 편안하게 있을 수가 없을 거 같았다. 게다가 밥도 잘 먹었다. 결국 나는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아내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제이가 자고 있어 더 이상 테스트해 보기도 어려웠다.
새벽에 갑자기 제이가 울기 시작했다. 평소에 거의 울지 않는 제이였기에 우리는 곧장 응급실로 향했다. 제이가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는 그 병원이었다. 당시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라 보호자 둘 중 한 명만 제이와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가 제이와 응급실에 들어갔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두 시간 남짓 지났을 무렵 아내가 제이를 안고 나왔다. 제이는 웃고 있었다. 무언가 미안한 것이 있는 듯한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안도감도 느껴졌다. 하지만 제이의 눈가에는 작은 붉은 반점이 수없이 올라와 있었다.
아내에게 들어보니 사실 진료는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고 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는 생각보다 응급실에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팔이 부러지거나 발목이 돌아가는 등 부상의 정도가 심한 친구들도 꽤 눈에 띄었다고 했다. 제이의 눈가에 있는 반점은 엑스레이를 안 찍겠다고 힘을 주며 버티다가 생겼다고 했다. 처음 보는 기계가 무서웠던 거 같다. 결국 엑스레이 촬영을 하지 못하고 의사를 만났는데 그땐 이미 제이의 팔꿈치가 맞추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아마 엑스레이를 거부하면서 힘을 주다 맞춰진 것 같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픈데 아프다고 못하는 이 아이는 앞으로 이토록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가스라이팅 기술까지 장착한 영악한 초딩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학교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을 하려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이 필요할 거 같은데 내가 몇 년 안에 그 정도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 후로도 비슷한 고민들을 한다. 친구들은 대부분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제이의 사진을 볼 때마다, 아직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염려를 들을 때마다, 배변 실수를 하고 창피했을 거 같은 제이의 마음을 상상할 때마다 나는 제이를 걱정한다. 우리에게는 별거 아닌 일상적인 것들이 제이에게는 커다란 과제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제를 풀어야 제이는 세상에 나갈 수 있다.
일 년쯤 지났을 때 제이의 팔꿈치가 또 빠졌다. 이번에는 언어치료 수업 시간이었다. 아직 수업이 끝날 시간이 아닌데 선생님이 당황한 얼굴로 뛰어나왔다. 제이가 이상하다고 했다. 들어가 보니 제이가 "아파. 아파. 아야 했어."라고 조그맣게 말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상황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단어를 모두 말하는 듯했다. 순간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이젠 아프다고 표현은 할 수 있구나! 신기하게도 제이는 이번에도 엑스레이 촬영을 하다가 팔꿈치가 맞춰졌다. 의사는 몸이 유연한 아이들은 관절이 빠질 수 있다고 했다.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다. 별일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 제이와 나 모두 머쓱한 표정으로 응급실에서 나왔다.
언젠가부터 제이의 팔꿈치는 빠지지 않는다. 아마 야들야들하던 제이의 뼈가 이젠 제법 단단해진 것 같다. 변한 건 제이의 신체만이 아니다. 제이는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 이젠 밥도 스스로 앉아서 먹고 배변 실수도 거의 하지 않는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먼저 다가가기도 한다. 물론 다가가는 방식은 무척 서툴다. 그래도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제이를 보면 희망이 생긴다. 제이가 하루빨리 눈앞의 과제들을 해치우고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