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큐 Mar 07. 2024

천국과 지옥을 오가다

느린 아이, 혹은 다른 아이와 함께 하는 부모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그렇다. 왜냐하면 어릴수록 느린 아이와 다른 아이의 경계가 흐릿하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 정신질환으로 한정한다면 -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구분한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마저 든다. 뇌의 아주 작은 일부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여기에 임의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너무 교만한 행동이 아닌가? 이렇듯 무지한 분야에 과연 전문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



          진료를 받고 일 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의사가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자폐는 아닙니다."  아내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 기쁘면 아무 생각이 난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사실 기대는 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의사가 제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의사라는 직업의 속성 상 어느 정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그럼에도 자폐가 아니라고 또렷이 말하다니. 그럼 이제 제이는 단순히 느린 아이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의사는 지능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했다. 조금 더 성장한 후 하는 것이 좋지만 이미 대기가 길기 때문에 - 무려 15개월이었다 - 오늘 날짜를 잡고 가라고 했다. 우리는 그날 종합검사라는 것을 예약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이제 마지막 관문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실 의사가 우리에게 희망고문을 하고 있을 무렵 나의 머릿속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했다. 몇 달 전 센터 놀이치료 선생님과의 대화가 시작이었다. 놀이치료 선생님은 믿을 만한 분이었다. 사설기관에 근무하시지만 진짜 교육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셨고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게다가 경험 많은 특수교사였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제이의 담임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제이와 관련된 것들을 상의하였다.



           하루는 놀이치료 선생님이 요즘 제이가 부쩍 좋아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제이는 이대로 가면 성인이 되어서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생활할 수 있을까요?" 난처한 얼굴을 한 선생님이 조심스레 말씀하였다. "아이들이 어떻게 변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이의 경우에는... 따라잡기 어려워 보입니다." 충격적이었다. 믿고 있던 놀이치료 선생님께 그런 말을 듣다니. 선생님께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매우 이성적이지 못한 생각이었다. 평소 나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의사가 제이는 자폐가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다. 나는 자랑스럽게 다음 수업시간에 놀이선생님께 소식을 알렸다. 마치 거봐라 하는 듯한 태도였다. 놀이치료 선생님은 무언가 꺼림칙한 태도를 보이며 말끝을 흐리셨다. 나는 그 후 일 년이 지나서야 그분이 왜 그런 태도를 보이셨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종합검사를 받기 전 마지막 진료에서였다. 6개월 만의 내원이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진료를 한 번 미룬 터였다. 솔직히 진료가 너무 잦다는 평소 생각에 좋은 소식으로 인해 마음이 느슨해진 영향도 있었다. 6개월 만에 만난 의사의 얼굴은 싸늘했다. 우리는 우선 혼부터 났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했다. 그리고 제이를 잠시 관찰하더니 아이의 성장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했다. 이젠 약물을 써야 한다고 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은 나에게는 생소했지만 아내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었다. 정신질환과 관련해서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 중 오랜 기간 그 약을 먹다가 내원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최근 내원한 한 환자는 고등학생이었는데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정신과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제이가 처방받은 것과 똑같은 약을 - 물론 용량은 다르다 - 받아 몇 년 동안 복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좀 좋아지는 듯싶더니 상황이 안 좋아져서 결국 학교를 휴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한의원을 찾은 것이다. 정신과 치료는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하지만 그 학생은 한약이 잘 맞았는지 비교적 효과가 빠르게 나타났다. 그리고 몇 개월 후 학교에 다시 가게 되었고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다. 예전보다 표정도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긴 듯하다. 처음에는 엄마 손에 끌려 한약을 안 먹겠다고 한 그 친구는 이제 아내를 멘토로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는 고민했다. 사실 아내는 나보다 그 의사가 걸어온 길을 더 존중했다. 오랜 기간의 연구와 수많은 임상경험을 믿는 듯했다. 하지만 그 약에 대해서 잘 알기에 쉽사리 약국으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며칠을 고민했다. 아내는 약을 먹여봐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그리고 용감했다. 담당의의 설명대로 약이 제이의 문제를 직접 치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제이의 기분을 좋게 해 - 의사의 표현으로는 제이를 용감해지게 해서 - 치료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높이자는 것이었다. 아내가 한약을 처방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제이에 대해서는 아내가 그 의사보다 훨씬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심이 들었다. 결국 그 의사의 선택지는 정신과 약을 처방하는 것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 의사는 그 약을 처방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닐까? 우리는 결국 그 약을 먹이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제이는 종합검사라는 것을 받았다. 첫 검사 때와 비슷했다. 제이는 방에 들어가서 검사를 받았고 나는 두툼한 조사지(?)를 받았다. 내용은 방대했다. 그런데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 조사지의 대상도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었다. 일부 질문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듯했다. 한 가지 검사로 영아부터 성인이 다 된 친구들까지 평가한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해 보였다. 제이는 결국 종합검사의 일부만을 받을 수 있었다 - 이런 일은 흔하다고 한다 -. 한두 단어로, 그것도 간헐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제이가 이토록 어려운 심리검사를 어떻게 받을 수 있었겠는가?



          검사를 받고 3주쯤 지나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났다. 결과는 예상대로 좋지 않았다. 의사가 말했다. "지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물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의사가 말했다.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의사는 지난번과 같은 약을 한 번 더 처방하였다. 그리고 그 후로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



          마지막 진료를 받고 3개월 후 제이는 그 병원 언어치료실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센터에서 언어치료까지 받고 있다. 하루는 센터 언어치료 선생님과 상의하다가 병원에서는 제이가 자폐가 아니라고 했다는 걸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속상하다고 말씀하셨다. 제이의 담당 의사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자폐가 아니라고 한다고 했다. 의사의 진단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는 어려워서인지 선생님은 말씀을 아끼셨지만, 나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건지 짐작이 갔다. 센터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 동안 관찰하고 교육 방향을 정한다. 그런데 의사가 그 방향이 아니라고 하면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아마 비슷한 일이 십수 년째 반복된 듯하다. 선생님은 평소답지 않게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저도 나름 박사예요."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제이가 자폐이든 자폐가 아니든, 지금 제이와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약자로 된 어려운 의학용어는 잘 모르겠지만 - 알고 싶지도 않다 - 어쨌든 제이를 자폐가 아니라고 진단한 의사도, 제이를 수년간 가르친 센터 선생님들도 모두 제이의 발달지체 원인을 상호작용의 어려움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폐라는 단어의 정의와 기준의 문제인데, 그건 전문가인 그들끼리 다툴 문제다. 제이 아빠인 나는 그딴 단어의 정의보다는 제이의 성장이 중요하다.



          생각이 한 걸음 더 나아가며 애초에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는 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에까지 이른다. 철학자 푸코가 말한 대로 사회는 대다수 주류에 맞는 기준을 설정하여 비주류를 비정상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억지로 다수의 방식에 맞추어가면서 사회로부터 배려와 돌봄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매년 수천만 원의 돈과 소중한 시간을 써가며 제이를 다수를 위한 잣대에 맞추기 위해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이 복잡해질 때면 나는 한 가지만 생각한다. 바로 제이의 현재이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제이가 행복한가이다. 그런 면에서 센터에서의 교육은 효과적일지 모른다. 그 덕에 제이는 - 아직 서툴지만 - 사람들과 함께 하는 법을 배워가며 접하는 새로운 것들에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제이와 센터로 향한다. 복잡한 문제들은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놓고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