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큐 Feb 14. 2024

병원에서 쫓겨나다

제이가 병원 언어치료실에서 쫓겨난 이유는 소아정신과 과장이 받은 항의 전화 한 통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과장이 그렇게 대단한 권력이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나도 나름 대기업 재무팀 과장이었는데 하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병원 과장의 위상은 달랐다. 병원을 거닐 때도 몇 명씩 뒤에 대동하고 다니는 위치였다. 자기 손으로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일도 없는 사람이었다.



          첫 진료 후 1년 반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제이는 병원이 운영하는 언어치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언어치료실 입학(?) 시스템은 특이했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의사가 오더를 넣고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첫 진료 당시 제이는 언어치료를 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악명 높은 대기를 듣고 의사에게 부탁해서 오더를 미리 넣어 놓았다. 그 후 일 년이 넘도록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 사이 제이는 성장하였고 언어치료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다니고 있는 센터에서 언어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병원 언어치료실 대기가 궁금해졌다. 수소문 끝에 언어치료실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해 보았다. 직원은 당황한 듯 보였다. 나는 무언가 직감했다. 제이가 누락되었던 것이다. 그분은 알아보고 연락을 다시 주겠다고 했다. 몇 시간 뒤 연락이 왔다. 몇 개월 전에 문자를 보냈는데 내가 확인을 못한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일일이 확인해 보았지만 그런 문자는 없었다. 그리고 1년이 넘게 대기했는데 전화도 아니고 문자 한 통 보내고 답이 없으면 넘어간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이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제이의 교육이었다. 해당 직원은 마침 며칠 뒤에 자리가 하나 나서 제이가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운이 좋다는 뉘앙스였다. 일 년 반을 기다린 자리가 전화 한 통에 생긴다고?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그냥 운 좋은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사실 고민이 되기는 했다. 센터 언어수업도 좋았고 이미 선생님과 제이의 라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병원 언어치료실 선생님은 1년씩 계약하기 때문에 수업을 받는 도중에 선생님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 시스템이 바뀌어 2년이 지나면 의사의 오더가 있더라도 더 이상 수업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언어치료를 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센터에 남을까도 했지만 '그렇게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에 우리는 결국 병원 언어치료실을 선택했다. 그래서 제이는 센터와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 센터에서는 놀이치료와 감각통합치료를 이어나갔다 -.  



          언어치료실은 센터와는 달랐다. 센터가 비영리기관의 느낌이 있었다면 - 센터도 영리기관이다 - 병원 언어치료실은 대놓고 돈을 추구하는 냄새를 풍겼다. 그럼에도 치료는 만족스러웠다. 선생님이 좋았다. 제이가 변화하는 모습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언어치료실 자체 프로그램이 있다기보다는 병원에서 큰 틀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선생님의 역량에 따라 수업의 질이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 대부분 특수교육기관이 그렇다고 한다 -. 한 마디로 운이 좋았던 것이다.



          언어치료실에 다닌 지 8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수업 후에 언어치료 선생님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병원의 정책이 바뀌어 제이가 1년이 지나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황당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분명 2년은 다닐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믿고 잘 다니던 센터 언어치료도 그만두었는데 이제 와서 아이의 치료 상황과 상관없이 갑자기 그만두라고 하다니. 하지만 선생님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저 대기가 길어 항의전화가 왔고 의사결정자인 소아정신과 과장이 그렇게 정했다는 것뿐이었다. 사실 선생님도 아쉬워하셨다. 제이가 한참 좋아지고 있는 데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시 센터 언어치료 대기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후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언어치료 선생님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내용은 이랬다. 병원 시스템이 바뀌어 - 참 자주도 바뀐다 - 이제부터는 소아정신과 진료예약을 변경하면 그 달로 언어치료가 종료된다는 것이었다. 서명을 하라고 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긴 진짜 아이를 돈으로만 보는 기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은 아이와 관련된 곳에서는 웬만하면 좋게 좋게 할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피해가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제이처럼 발달이 느린 친구들은 더욱 그렇다. 피해를 보더라도 그 사실을 부모에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 예전의 '스나이퍼' 시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상대방의 논리적 약점을 파고들었다. 물론 상대방은 눈앞에 있는 선생님 - 그분은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이 아니었다. 의사결정자들이었다.



          나는 이런 조직, 즉 규모가 크고 보수적이며 권위적인 조직의 생리를 잘 안다. 물론 나 같은 소시민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학병원의 털 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이 합당해서 조직에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생각되면, 조직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적당한 위치의 사람을 고른다. 그리고 가차 없이 그(들) 정리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병원에 해를 가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거지 같은 의사결정을 한 사람들에게는 흠집을 낼 수는 있다는 말이다. 이런 나의 접근은 통했던 것 같다. 제이는 진료를 미루고도 정해진 일 년을 채울 수 있었다.        



          우리나라 특수교육 시스템은 문제가 많다. 우선 대기가 길다. 진료도 기다려야 하고 교육도 기다려야 한다. 어린아이들의 치료일수록 시기가 결정적이라고 하면서도 말이다. 비용도 부담이 된다. 검사를 하면 기본이 몇 십만 원이다. 교육비는 더욱 비싸다. 센터는 그나마 저렴한 편인데도 30분에 5만 원이 넘어간다. 병원 언어치료실은 35분 수업 - 수업 후 상담 5분 제외 -에 9만 원 가까이 됐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국가지원이 있다. 하지만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되면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준은 생각보다 낮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제이는 교육이 필요하고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 나는 정해진 시스템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럴 때면 늘 마음이 조급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