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
난 인천공항이 있는 섬에 산다. 바다와 푸른 공원과 예쁜 카페 그리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있는 곳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병원 인프라인데, 인구 십삼만 명의 도시에 종합병원 하나 없다는 거다.
여긴 피부과> 정신과> 소아과 순으로 붐빈다. 아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다. 피부과나 정신과나 예약을 하지 않으면 두 시간 대기를 해야 할 수 있고, 소아과는 접수 마감되면 아예 진료조차 볼 수가 없다. 피부과는 수없이 많지만 피부질환 진료는 안 하는 곳이 많고, 정신과는 이 도시에 두 곳, 소아과는 세 곳이 있는데 이 도시에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유치원은 3 지망까지 써도 대기하기 일쑤이며, 초등학교는 계속 건설 중이고 중학교를 가려면 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이미 어엿한 도시인데도 어린 친구들이 많은 연유다.(아마 이곳 출산율은 '2'에 수렴하는 듯)
얼마 전 정신과를 찾았는데, 11시 50분에 예약을 했음에도 30분이 지나서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앞선 환자의 상담이 길어지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해서 전체적으로 진료순서가 지연된다. 그리고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사람들은 예민하다. 이곳은 학생도 많고 격무에 시달리는 공항근로자가 많아서인지 모두들 시간을 쪼개거나 연차를 이용해서 찾는 다.
우리는 12시 20분이 마지노선으로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바로 앞 순서의 여성이 범상치 않았다. 한복 드레스를 입은 외국인여성.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모습은 사실 내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보통 5분 내지 10분 안쪽으로 진료실을 나서는 환자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상담시간 20분을 소모하는 그녀에게 이미 내 마음은 도끼눈을 떴다. 그리고 쏟아지는 다양한 원망 추측 불만.
나는 그런 인간이다. 항상 선하고 배려 넘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만 앞섰지, 내 안의 고통이 최우선이고 다른 이의 아픔은 뒷전인 채로 단지 나의 타임테이블이 망가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덜 여문 애송이다.
용기 없는 나는 이 글을 빌어 그 여성에게 깊이 사과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흩뿌리는 비와 함께 그의 아픔과 수심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