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짙게 깔린 새벽, 아빠를 깨워버렸다. 1,640m 고지의 란드룩 숙소는 화장실이 방 내부에 있다. 자다가 깬 몽롱한 상태로 살금살금 걸어서 문 앞으로 갔다. 나무로 만든 문이 뜻대로 열리지 않아서 힘으로 당기자 우당탕 굉음을 낸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쳐다보는 아빠에게 뻘쭘하게 선 채 웅얼거리며 사과를 한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심한 갈증이 난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데 몸이 조금 이상하다. 깨어난 아빠에게 말썽꾸러기 문에 대해 따끔한 한마디를 날린 후 다시 잠이 든다.
몸이 물에 적신 솜처럼 무겁고 슬슬 배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빠르게 트레킹 준비를 한다. 걷기를 시작하고 몸을 움직이니 점점 나아지는 기분이 든다. 한결 편안해진 몸 상태로 신나게 대화도 나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으면 산 중턱 사이를 연결하는 긴 철제 다리가 나온다. 얼마나 긴지, 반대편 끝에 서 있는 사람이 미니어처 같다. 움직임에 따라서 다리가 위아래로 가느다랗게 출렁이고, 철근 틈새로 바닥을 바라보면 목덜미가 찌릿할 정도로 높다. 다른 철제 다리와 오래된 나무다리를 하나 더 건넌다. 점점 산 밑과 가까워지는지 시내에서 보던 기념품들이 노상에 진열되어 있다.
아무래도 배탈이 난 것 같다. 점심에 튀긴 만두를 먹었고, 그 식당은 산바람이 몹시 거셌다. 걸을수록 뱃속의 상태는 더 심각해서 이젠 부글부글 끓는다. 내리쬐는 햇빛에 흘리는 땀과 합쳐지니 환장할 지경이다. 다들 식사 후 기운이 샘솟나 보다. 마지막 도착지를 향해 움직이는 몸은 가볍고 걸음은 힘차다.
아빠에게만 슬쩍 말해야 할까? 아니다. 평소 이런저런 대화도 자주 하지만, 배탈 난 걸 말하긴 어쩐지 조금 창피하다. 화장실 갈 때마다 아빠 눈치를 보고 서로 어색하진 않을까? 다 큰 딸의 체면이 있는데, 수치스러운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 생각보다 위급한 일이 아닐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리고 내일은 트레킹도 끝나니까 쉴 수 있으니 혼자만 아는 비밀로 간직하면 그만이다. 굳는 표정을 풀고 눈은 흐리멍덩한데 입꼬리만 올라간 슬픈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 목적지인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는 재밌는 사연이 있다. 원래 이름은 ‘툴로 카르카(Tulo karka)’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한 오스트리아 사람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엔 오스트리안 캠프로 불리다가 네팔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워 오스트레일리안 캠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쾌적한 환경과 빼어난 경치를 지녔으며, 포카라에서 1박 2일이면 올 수 있어서 짧게 산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출발 전부터 아빠는 교육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 있다며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를 특히 기대했다.
마을 입구는 잘 다듬어진 캠핑장 같다. 롯지는 지금까지 묵은 곳들보다 크기도 크고 화려하게 꾸며졌다. 고작 5일 걸었다고 이곳이 세련된 관광지 같다는 착각이 든다. 숙소에 짐을 금방 풀고 훌륭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유명한 언덕으로 향한다. 겨울이라 색 바랜 잔디와 회색 먹구름이 얕게 낀 흐린 날씨 탓인지 분위기가 소박하다. 텐트 두 개가 세워진 휑한 벌판에 네팔 주민 몇 명이 바닥에 앉아 수다를 떤다. 아빠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화면에서는 널찍하게 훤하게 보였는데……. 생각보다 뭐… 조그맣네.”
다음 날 아침엔 날씨가 좋아서 훨씬 멋있었어요
저녁이 되자 흐린 하늘은 여지없이 비를 쏟아낸다. 맹렬한 폭우가 내리고 야단스럽게 천둥 번개가 친다. 술을 좋아하는 아빠는 낯선 이름의 도수 높은 네팔 술을 시킨다. 맛이 생각과 다른지 홀짝 들이키는 표정이 어둡다. 지독한 알코올 향이 맞은편까지 풍긴다. 아빠는 더는 마시지 못하고 낭패라며 술을 남긴다. 딸의 배는 누군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중이다. 음식이 들어가는 게 입인지 코인지 모르겠다. 서로 다른 이유로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꾸역꾸역 음식을 삼킨다. 이제 트레킹이 막바지인데 실망스러운 하루가 된 걸까? 비 내리는 무심한 하늘이 야속하다.
밤이 될수록 몸 상태는 더욱 나빠진다. 배를 부여잡은 채 누운 자세만 이리저리 바꿔본다. 야밤에 뱃속이 팡팡 터지는 폭죽놀이가 벌어졌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니 힘이 빠진다. 속까지 울렁거리고 나서야 혼자 감당할 수준이 아님을 직감한다. 게다가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롯지는 방 안에 화장실이 있었으니 아빠에게 들키는 건 사실 시간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에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아빠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선혜야, 괜찮아?”
“아빠… 저 장염인가 봐요.”
대답하는데 눈물이 찔끔 난다. 네팔에서 아프니 평소보다 곱절은 서럽고 속상하다. 아빠는 한국에서 챙겨 온 배탈약을 급하게 찾아 준다. 약을 털어 넣고 엉금엉금 침낭 안으로 기어서 들어간다. 진작 말할 걸,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전부 망쳐버린 건 아닐까? 멍청하게 일만 키운 꼴이다. 한밤중엔 배가 아파 거의 자지 못했는데 이른 새벽부터 옆 방에 머무는 외국인 트레커들이 밤새 우리 방 앞 철제 계단을 이용해 옥상을 오르내린다. 즐겁고 건강하게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싶었을 뿐인데, 맘대로 되지 않는다. 눈물 나게 감사한 단 하나의 사실은 지긋지긋한 고통 속에서도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걱정해주는 아빠가 있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