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자기 전에 나의 루틴은 sns에 올라오는 뉴스를 보는 것이다.(요즘은 낮에도 본다) 알고리즘 덕택으로 내가 관심을 갖고 보는 사회면 뉴스들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뉴스부터 해외에서 벌어지는 뉴스까지 총망라해서 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했을 때 알고리즘을 타고 해외 뉴스에서 신랄하고 디테일하게 그 장면들을 보도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음악 축제, 그 즐겁고 평화롭게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을 총을 겨누며 끌고 가는 장면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막내 이야기를 듣고 안 좋은 뉴스를 보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막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내 예은이: "엄마는 너무 심각한 뉴스를 자주 봐요.. 엄마가 그런 거 안 보셨으면 좋겠어요.."
걱정 어린 눈빛으로 심각하게 내게 말했다.
그날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걸 보고는 그날 <그. 알.> 내용이 조금 더 무서운 내용이었는지 막내 예은이가 내게 한 말이다. 예은이는 가끔 <그. 알.>이 무서워서 잘 못 볼 때도 있다며 꿈에 나올 때도 있어서 무섭다는 말을 했다. 평소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닌 막내가 내게 작정하고 이런 말을 한 걸 보면 막내가 보기에 내가 너무 자주 본다고 심각하게 생각한 것 같다.
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엄마 알잖아. 남한테 엄마 얘기하는 거 싫어하는 거. 엄마 주변 친구들도 모르는 이야기를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하는 게 이상해.. 그리고 너희들 키우는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도 싫고.. 엄마가 밤잠 설치며 고민하고 경험하고 공부한 이야기들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더 마음이 내키지 않는 건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엄마는 요즘 아이들이 인성이 없다고 생각하거든. 요즘 그렇지 않아? 아이들 봐봐. 엄마가 최근 무슨 영상을 봤는데 와 어느 엄마가 피아노 샘한테 하는 행동을 보니 가관이더라. 그 피아노샘한테 소리 지르며 무릎 꿇으래.. 근데 그 샘은 또 꿇어.. 거기다가.. 아휴.. 그런 엄마를 둔 아이가 잘되면 되겠어? 엄마는 아니라고 생각해. 단연코."
위 글을 보니 참 싫은 게 많은 사람 같다. 나는 이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고 점점 염세적으로 본다. 노 답. 점점 답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사회면을 보기 시작한 계기와 이유는 몇 가지가 될 것 같다.
도서관에서 과거 모 신문 기자분이 더 이상은 뉴스를 믿지 않고 기자 생활도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주신 걸 들은 기억이 난다. 아마 그분도 현타가 오신 게 아니었을까. 지금 든 생각이지만..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통사고가 나면 어떤지 아세요? 그 사건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어요" 라며 알 수 없는 말을 하셨다.
말인즉슨 사건은 A와 B, 그리고 C의 입장에서 해석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사건이 진실인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서술하는 사람(기자)의 입장차이가 분명히 난다는 걸로 이해되었다. 왜 신문도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국민일보 등으로 색깔이 나뉘는 것처럼 말이다. 신문마다 색깔이 다르고 같은 이슈들이더라도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사건을 팩트 체크용으로만 본다는 말을 막내에게 해주었다. 그리고 고 하용조목사님께서 신문을 보며 기도를 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내용도 이야기해 주었다.
대학원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대학원에서 모 교수님은 꼭 수업 전에 신문기사 내용을 교육이나 주제에 관련 있는 걸 설명하시고 의견을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그게 참 인상 깊었고 그 후로 나도 루틴처럼 뉴스를 특히 사회면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사회면 뉴스를 보며 사건들을 보며 부글거리기도 하고,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시발점이 된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글쓰기에 동력이 안 생기기 때문이다. 가끔 나까지? 굳이? 이렇게 글을 쓰고 알릴 이유가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여전히 종종 할 때가 있다.
한철 조용히 살다가 가면 되는 이 세상에 무슨..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한 마디로 사회면 뉴스를 보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안 좋은 뉴스를 봐야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 세상에 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예전에 어느 작가분도 그렇다고 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 작가분은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를 쓴 작가인데, 한겨레에 글을 집필하고 <빅이슈> 편집장이기도 하다. (지금 프로필을 보니 그렇다)
처음 뉴스를 보며 속이 부글부글 거렸다. (이 글은 23년 5월에 쓴 글입니다)
이혼을 한 아버지가 대학생이 된 딸을 만나서 용돈을 준다는 목적으로 함께 술을 마셨다. 함께가 아니라 자기 혼자 마신 걸로 보였다. 1차, 2차로 술을 마신 후 차에서 가자고 했다고 한다.
차로 간 목적은 술을 깨우기 위함이었는지 그 흑막은 잘 모르겠지만, 그 아버지는 친딸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했다. 그 후 그 친딸은 그 쇼크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다.
죽은 아이를 위해 이혼한 엄마는 힘겨운 법정 싸움을 하고 있다는 말과 그 성폭행한 아버지는 "나는 잘못이 없다"라고 말한다며 끝까지 딸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겠다고도 했다. (출처: jtbc)
두 번째 본 뉴스는 조폭 아버지가 개화된 후 목사가 되어, 노숙자를 위한 목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꽤 괜찮은 서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조폭 목사 아버지는 친딸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성폭행을 했다. 지금은 분리되어 살고 있지만, 아직 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그 조폭 목사 아버지와 다시 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그 친딸은 아버지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세 번째 본 건 아동학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매스컴에서도 한참 나왔던 친모 살해사건이 그 내용이다. 친모는 아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보내려 많은 노력을 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니까. 아이가 잘되는 걸 어느 부모가 싫어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저녁 7시부터 새벽 내내 그리고 아침까지 고등학교 남자아이를 골프채로 때리고 심지어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렸다고 한다. 팬티가 찢어질 정도로 체벌이 심했다.
아이는 체벌을 받을 때 입는 운동복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엄마 미친.. 사람..'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목구멍 깊이에서부터 올라온다. "이 미친 엄마야.. 여자야.."라고.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바뀌어야 좀 나아질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또 사회면 뉴스를 보며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이 세상이 공의와 사랑으로 바로 설 수 있기를, 죽어가는 아이들이 더 이상 없고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3:34-35]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By this everyone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 [John 13:3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