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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ul 16. 2024

친구야 존경한다

30화. 109인 대학 신입생 납치 사건


친구와 나는 닮았다. 친구는 온전히 아웃사이더, 나는 인사이드 내에서 아웃사이더. 친구는 청춘에 진짜 혁명을, 나는 중년에 쩐의 혁명을 꿈꾸었다. 짝퉁 혁명가인 나는 진짜 혁명가인 그의 삶을 공감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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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30개월 전역 후 복학한다. 사범대, 문과대 중간 본관 앞길에서 지나다 가끔 본다. 친구는 늘 말이 짧고 진중했다. 탁 트이지 않은 목소리는 고뇌 낀 표정을 더욱 엄숙하게 드러내었다. 그렇지만 나를 위한 배려의 웃음을 놓치는 않았다. 뭘까? 뭔가 있는 친구. 나는 사회 나갈 준비 중이라 인연을 키우기는 벅찼다. 깊은 대화가 없어 사정을 몰랐다. 연극반이라고 했고 만날 때마다 거기 가는 길이라고. 40여 년 지나 다시 만난다. 부쩍 궁금하다. 누구일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넷이 만나니 집중 안 된다. 전원 생활 홀로 지낸다고. 혼자 갈 기회. 올커니. 100키로 차 몰아 찾아간다. 오랜만에 드라이브 바람도 쐴 겸.


꾁 꼬르르륵. 꾁 꼬르르륵. 방울 구르는 소리. 꾀꼬리 쌍으로 사는 이웃으로 친구는 자기만의 둥지를 틀었어요. 새는 앞산 배부른 동산 왼아래 실계곡 가 나무에 집을 지었어요. 비 온 이틀 후 좔좔 으스대는 물 건너 그쯤에서 가파른 산 오르면 홍싸리버섯을 딴답니다. 노랑 한 마리가 텃밭 쪽으로 길다랗게 선 그으며 날아듭니다. 다른 하나는  오른 편에서 둥지에 오르려는지 나무 사이로 짧게 사뿐. 멀리 니 수컷, 둥지는 암컷이라 멋대로 지어 봅니다. 사람들은 꾀꼬리 같은 목소리라 칭찬하지만 녀석들은 접근 말라 경계로 왈왈 짖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내 고향 가매기삼거리도 꾀꼬리 한 쌍이 살았더랬어요. 꼬맹이적 앞산을 왼쪽으로 가는 소롯길 가로 커다란 아카시나무. 꾁 꼬르르륵. 꾁 꼬르르륵. 낮으로 어쩌다 아래를 지나면 어김없었죠. 소리뿐만 아니었어요. 나무는 개울 옆으로 홀로 높이 섰어요. 흰구름 푸른 하늘 배경, 나뭇잎 신록 바탕에 주먹만한 샛노랑 깃털. 눈길 확 잡아챘어요. 여기는 화천군 간척3리. 아침 일찍 침대에서 눈 뜨니 멀리서 꾁 꼬르르륵. 반백년만에 들으니 긴가민가. 친구가 꾀꼬리 맞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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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텃밭 고랑을 잘게 나누어 방울토마토, 호박, 가지, 방울 토마토 먹을 거. 고랑을 통으로 땅드룹, 그 옆으로 비닐하우스 둘 안에 고추와 무슨 작은 나무. 1,700평. 이십 여 미터 떨어져 두 필지로 나뉘었다. 경매로 하나씩 사들였다. 일대가 골프장 개발한다고 PF 프로젝트 파이낸싱. 덜커덕 중단. 시공사로 아무도 안 나서. 사업성이 없었던 거. 돈을 댄 하나은행 불똥. 친구 찾아와 사라고 꼬신다. 최초 경매가는 터무니 없었다. 매번 10%씩 빠져 9차나 되어야 살 만하기에 친구는 기다렸다. 마을 사람들도.


8차에 뜬금없이 외지인 구입. 것도 경매가 한참 위로 써내서. 친구가 산 앞쪽 경계에 슬라브 가옥을 끼었다. 순리대로 풀 일을 앞이라고 막무가내 횡포. 친구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 인심을 잃는다. 친구는 주민에게 그 앞 땅을 250평 잘라서 산다. 슬라브 땅은 사방 진입로 없는 맹지가 된다. 노회한 친구를 잘못 건드린 거. 이후 속이 쓰린지 안 나타난다고. 친구는 얕은 V자 땅을 트럭 300대 흙 부어 메꾼다. 평평. 그 위로 마사토 붓고 돼지 똥물을 뿌린다. 죽은 땅을 농지로 둔갑술. 다른 필지 600평. 4단 계단을 대형 포크레인 불러다 2단으로 바꾼다. 위로 집 터 200평, 아래로 밭 400평.


양양 간성 양간지풍에 속초 불난리. 전신주 위 변압기인가 불똥 퍽퍽 튀었다. 봄철 바짝 마른 풀에 옮는다. 후르륵. 이 계절의 산불은 바람의 속도 버금. 온 산으로 번지더니 산중 가옥을 집어삼킨다. 도로까지 불의 파도 넘실. 테레비로 봐도 무섭다. 화재민 임시 주택 경매. 제작 가격 3,500만 원. 거주자 구입시 1,300만 원. 경매 수 십 채. 상태 좋은 거 골라서 두 채. 1,100만 원, 1,020만 원. 현 시세로 치면 5천은 줘야 한다고. 한 채 원가로 마을 주민에게 선의로 넘기고 한 채를 터에 앉힌다. 장방형 일곱 평 가량. 입구 들어서면 주방, 거실, 침대, 칸 막아 수세식 화장실. 2인 거주 넉넉하다. 70미리 폼으로 벽체. 보온 굿, 환기 창 하나, 반대편 천장, 바닥 각 가까이 최대한 폭의 창. 앞산과 밭 풍광이 꽉 들어차 내다보인다. 이거 하나로 야외 같은 실내. 온수, 에어컨. 가장 중요한 물은 지하 100미터 파이프 때려박아 올린다. 백 미터가 얼마나 깊은데 그걸 팠다고? 10미터 파이프 갯수 세어서 안단다.


이 정도면 특급 호텔은 못 돼도 산속 별장으론 손색 없다. 용도에 맞추어 겉이 재난용으로 사각일 뿐 내부는 훌륭하다. 옆으로 엇갈려 붙인 한 채는 손님용인 듯. 집 뒤. 진입로 아래로 뒷마당. 빙 둘러 10인용 사각 목재 탁자, 바베큐 화로. 이걸 다 뚝딱뚝딱 자기 마음에 들게 예산에 맞추어 요량껏. 말이 쉽지. 땅 보는 눈, 경매, 토목, 건축, 전기, 지하수 등등 업자급 수준. 특히 경매, 기계에 밝아 이걸 어찌 익혔나 했더니 기계 영업. 쇠 깎는 밀링 공장 경매에 대개 부지만 본다고. 기계 가치가 더 큰 경우 있단다. 이런 척척박사를 애숭이 초보가 경매 받아 꼬장 부렸으니. 그 밭은 살 사람 없다. 라브 집에 살려고 산 것도 아니어서 벌써 폐가. 땅도 집도 가치가 없다. 나는 안다. 언젠가 제발 사 달라고 애원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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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거든다. 나도 흡사한 억지를 당했다고. 내 땅 옆 집이 내 땅 앞 귀퉁이 땅을 샀다. 둘 다 열댓 평 쪼가리 땅. 산 값의 세 배 값 주겠다. 그 돈이면 32평 새 아파트 산다. 싫다. 그럼 건물 붙여 같이 짓자. 싫다. 금 안 지으면 단독으로 못 짓는다. 나와 경계 1미터 띄우고, 미관지역이라 도시계획선 2미터 잘리고, 골목 1.5미터는 벌써 떨어져나갔다. 남는 거 10평도 안 된다. 같이 짓자. 싫다. 삼고초려. 싫다. 그럼 그 땅 왜 산 거야? 나 괴롭히려고. 난 띄우고 지으면 그만인데? 앞 땅이래야 일부만 가린 거. 아저씨, 제발요. 저 이번에 건물 지으면 아저씨 집 지대가 낮아 한 길 깊이로 푹 가라앉아요. 집도 건물도 너무 작고 모양도 안 나와요. 싫다. 이런 젠장. 땅 판 주인이 내 부랄친구. 우택이에게 사정을 말한다. 같이 가잔다. 아저씨, 시균이 말이 다 맞아요. 그리 하시지요. 자기가 판 16평을 세 배 값에 되팔다니. 우택이는 억울함을 누르고 합리적으로 중재를 선다. 싫다. 나 마지막 시도. 무릎 꿇는다. 아저씨, 제발요. 팔든가 같이 짓든가요. 아니면 평생 후회하세요. 싫다. 원수도 이러지는 않는다. 아저씨와 한 번 다툰 일 없다. 길 건너 쌀집 아저씨가 속닥인 건 안다. 그래서 샀다는 거도. 아니, 코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쌀집과도 부모님이든 나든 말타툼 한 번 안 했구만. 땅 넓어 시기심이 이리 클 줄이야.


우택이가 뒤로 내 허리춤을 슬쩍 잡아 끈다. 나가자고. 밖. 아저씨가 참 너무하네. 시균아, 미안하다. 너한테 팔았어야 했는데. 그러게. 어쩌냐. 니가 사라  땅. 계약금 두 배는 나 대신 물어줄 거지. 난 세 배는 됐고 두 배는 줄 수 있지? 그럼, 당연하지. 바로 법무사 간다. 계약서 쓰고, 땅 값 전액 즉시 이체하고, 등기 이전 서류까지 넘긴다. 일주일 후. 아저씨 집 방문. 그 땅 제가 샀어요. 계약서 썼는데 무슨 소리야. 우택이가 위약금 두 배 줄 거예요. 곧 공사 시작해서 알려 드리려고 왔어요. 간격 띄우고 피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저씨가 계약서만 썼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옆집이라 설득했던 거. 아저씨는 자기 집까지 지어달라고 했다. 2층 건축비는 물론 설계비, 등기비까지 전부 다 내 돈으로. 28년 지났다. 그 사이 아저씨는 풍이 와 절뚝이다가 돌아가셨다. 자식 둘은 분가해 나갔다. 집 철대문은 녹이 나 검붉다. 대문 틀 목재가 썩어 경첩은 철의 무게를 이기지 못 했다. 문이 바닥에 닿은 채 기울어졌다. 원래 구옥이 세월을 버티지 못 하고 쥐마저 살지 않는 폐가가 되어 버렸다. 나는 안다. 자식 둘 중 하나가 찾아올 때가 되었다는 걸. 허나 나는 관심 없다. 세 배는커녕 반에 반 값도 아깝다. 약점 잡아서 아니라 신경 쓰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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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은행나무 휘감고 오르며 붉은 피 터트린. 뻔대 없이 키만 큰 나무에 포인트 주며 서로 어울린다. 밤나무 멋들어지게 자랐네. 몇 백 년 되었을 거야. 느티나무 나이테 센 경험 살려 아는 척. 우리 나이쯤 됐을 거란다. 마을 아저씨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다고. 속으로 거름을 줘서 그런가? 굵기 고목인데 수령은 얼마 안 되는군. 토종 밤이란다. 밤나무 한 그루 더 있는데 그건 못 났고 수령도 짧다. 길가라 지나면서 쥐어뜯어서 그러리라. 까짓 생김새야 어때. 의지의 밤나무다. 이제 일할 시간. 전날 일 시키지 말라 엄살 떨었지만 밥값, 방값은 해야 않나. 더구나 나 온다고 풀 다 깎고  들인 게 미안타. 여섯 시 조금 지나 밭일  제격. 시간 반이면 될 거라고. 챙 넓은 천 모자, 수건, 손바닥에 노란칠한 목장갑 챙겨준다. 장화는 별장 나설 때 신으라는 거 사양. 난 보조야. 돌에 발 치일까, 다칠까 그 마음 모르랴. 사 단을 이 단으로 바꾸어 위 별장, 아래 밭이라 했다. 서 들깨 심기. 둘 호흡을 맞춘다. 궁시렁 궁시렁. 대체 이 놈의 입은 다물 줄 모른다. 농사니 농사 이야기로 화답. 가리파재 기담. 반전에 반전. 귀 쫑긋. 두 시간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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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나도 몰입. 엄마, 아부지 그리니 그리워서 울컥. 너 우는 거야? 내 눈을 살핀다. 목 메어 더듬는다. 심하군. 친구는 나를 조울증으로 안다. 전에 한 번 넌지시 걱정한 적 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다. 증상 심한 친한 친구가 여기서 한 달여 묵은  있단다. 상세히 들려준다. 조증은 맞을 지도. 울증은 아니다. 은퇴 8년 차. 우울한 적 없다. 아부지, 엄마 가실 때 엉엉 울었다. 청춘에 녀 둘 덕분에 이별이 아퍼서 펑펑 울었다. 어릴적 키우던 개가 죽어 몇 달을 눈물 뚝뚝 흘렸다. 그외는 울지 않았다. 주위 눈치를 안 보는 거지 슬프면 우는 게 맞다. 다들 억누르는 거. 친구는 진짜 혁명가라 냉철하다. 난 짝퉁에다가 정이 넘친다. 정서와 반대편 이성은 매우 긍정적, 적극적, 도전적이다. 과제가 생기면 물불 안 가린다. 어떻게든 되게끔 언행. 이게 과도한 도전 달성이나 난관 돌파에 크게 도움된다. 스스로 북돋는 거. 헌데 미쳐 보이기 십상. 근래 출산혁명이 그렇다. 이런 비상식 없다. 듣도 보도 못 한 거. 인류사 초유. 오죽하면 혁명이라 이름했겠나. 이걸 친구 셋에게 수없이 강조. 나라 망 민족 멸이기에. 베이비부머 우리부터 당하기에. 노후 대책 다 날리기에, 자식 손주 생지옥을 살아야 하기에. 무엇보다도 해결책 찾았다. 일단 주위부터 알리는 거. 불 났으니 불이야. 정신질환 탐구한 적 있다. 조울증 아니라고 부인하면 그 자체가 증상이다. 정신질환은 대개 본인은 모르거나 부인하거나. 진단법. 본인이나 남에게 피해주거나 위험에 빠트리면 질환. 아니면 정상. 여기서 해명한다. 친구야, 나 정신질환까지는 아닐세. 걱정 고맙고, 붙들어 매시게. 과한 건 인정. 나 같은 이 어디 있겠나. 은퇴 전엔 나도 냉철했다네. 이제 자유인으로 훨훨 날고 싶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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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슬라브 뒷땅에 텃밭, 비닐하우스 세 동. 85개 벌통은 볕이 드는 별장 아래에 둔 듯. 농사는 돈 안 되나 꿀은 쓸 돈에 보탤 수 있었다. 작년인가 벌이 죽어서 23개로 줄었다. 마침 올해부터 2년 서울에 고교 총동문회 부회장을 맡는다. 6층 건물이 있을 정도로 재정이 여유 있다. 서울서 이틀 일 보고 보수가 제법. 직원도 둘. 서울도 이런 고교 몇 안 된다고. 숭당회인가 숭문 당구 숭구리 당당. 회장이 새로이 올해 보스톤 마라톤 대회 출범. 동문 하나가 그 대회서 뭔가 했단다. 친구가 합창단 추진중. 오, 굿. 역시나 반응 좋고 28명인가 단원 모집 완료. 오래갈 거야. 내 고교 친구가 성대 합창단인데 지금껏 모여서 즐긴다고. 원주 촌과 차이가 크다. 친구가 워낙 발이 넓다. 같은 기수 초기 모임을 친구가 주도. 어려운 친구 있으면 발 벗고 나섰다. 의협심 강하다. 그래서 동창들이 부회장으로 추대한 거. 선배들도 신망이 두텁다. 매사 적극적이고 성과가 뚜렷하다. 회장과 그릇 차이로 스트레스 받지만 너끈히 풀어가리라. 벌통은 이웃에 임시로 넘겨 적절하게 이윤을 분배하기로 한다. 주거 별장, 창고 둘, 6평 저온 냉장. 태세 갖추어 7년. 농사꾼이다. 자연에 어우러져 평화를 찾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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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청춘에 뜻을 세웠어요. 대학 연극반. 군 제대 후에는 고리끼 제정 러시아 대신 현실을 극으로 올렸어요. 사범대학 졸업장 포기했어요. 평생 편히 먹고 살 보증서를 찢은 겁니다. 노동자를 위한 삶을 선택했어요. 구로 공단, 부천 공장서 그들과 함께 3년을 일했어요. 한 이 한 이 이력 적어 준 걸로 대본을 쓰고 극으로 꾸몄어요. 파업 시위 전면에 올렸어요. 3년. 아뿔싸, 1991 소련 붕괴. 사회주의는 몰락했다! 선배들 하나같이 외쳤어요. 뿔뿔이 흩어졌어요. 공부 잇거나 취업하거나 업 스스로 꾸리거나.


연극반에서 구애 받아 결혼했어요. 사내다웠어요. 여대생 후배들이 따랐어요. 그 중 하나 소주 한 병 마셨다고요. 식 치루고나서 얼마후 술 원래 못 먹는다고. 살면서 술 먹는 걸 본 적 없답니다. 카리스마 남이 애주가라 맞추었던 지요. 너는 결혼 언제 했냐. 31살 늦었어. 원주 와서. 데리고 있던 여직원과. 자연스레 나 살아온 이야기.

다는 못 했지만 집어서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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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광고업 수 년, 기계 영업 3년, 논술 학원 10년. 아이 엄마들 팬덤까지 있었답니다. 산전수전 다 겪습니다. 아들 둘 잘 키워 장성했어요. 고향 춘성군. 대대로 집성촌., 할아버지는 소작을 주었어요. 작은 아버지 노름, 술로 가산 탕진. 아부지 소작 농사 지었어요. 국민학교 2학년. 태 나온 마을 떠나 춘천 시내. 6학년 아부지 돈 벌러 서울 공덕동 이사. 서류가 늦어 한 한기 효창공원서 보냈답니다. 양손으로 봉 짚고 배를 봉에 대었습니다. 동무 하나 없이 할아버지들에게 배우고 익힌 겁니다. 봉의 달인. 중고교에서 철봉 하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괴롭힘 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맞짱 뜨는 정의. 숭문고등학교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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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대흥동서 청춘의 둘은 동선이 겹치더군요. 웅지독서실. 친구 고3. 다른 친구들 과외할 때 혼자 독서실. 나 성균관대 2학년. 7월. 전두환 정권은 교육 정책을 뒤집었어요. 졸업 정원제. 입학 인원을 두 배로 늘리고. 본고사 폐지. 객관식 시험만으로 선발. 대입 대실패. 동창 중 야간대학 유일한 1인이 나. 극심한 정신 방황기. 황지 탄광 가보고, 대학은 의욕과 달랐어요. 매일 친구 넷이 포카, 음악다방, 낚시 핑계로 여행. 강촌, 화천댐. 도담삼봉.

한번은 중앙선 양동역 하차. 다방 아가씨와 노닥. 밤에 여인숙서 자는데 경찰 둘 방문 열고 검문 검색. 별거 없으니까 다방 그 아가씨 아냐고. 여기 처음 왔어요. 녀 땜에 처들어온 거.


대입 바뀐 거 보고 바로 서실 행. 웅지독서실. 시험 횟수로는 재수, 햇수로는 삼수. 고교 책 사서 3개월. 객관식이니 깊이는 필요 없다. 두어 번 훑으니 끝. 시간 남아서 독서실 아래 육칠십 미터 대흥극장. 두 편 동시 상영.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 미소로 여심 녹이는 리처드 기어, 걸음이 멋져 남심 두근 앤디 가르시아. 비리 경찰과 사정 경찰. LA 경찰의 뒷거래를 둘러싼 암투와 불륜. 흥미진진 전개와 마지막 반전. 흠 하나 잡을 데 없는 명화다. 전선 위에 참새. 멜 깁슨 주연 코미디. 한 달여 영화로 지루함을 달랬어요. 친구는 집이 독서실서 멀지 않아 일대가 훤했습니다.


한 해 걸러지만 인연은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고대 국어교육학과. 나 영문과. 1학년 겨울방학. 징제 징집을 가장한 납치. 춘천 103보충대에서 친구를 처음 만났습니다. 샘밭이라 불렀죠. 소양강 물이 어디서나 샘 솟아 샘밭. 강 건너 솔밭. 국민학교 때 소풍 곳이랍니다. 저기 보이는 곳이 태어난 데라고. 숲이 보이고 그 앞으로 논과 집이 있었다고. 소울로스터리. 솔밭은 전국 명소 커피 왕국으로 바뀌었습니다. 보물찾기 하던 추억을 외지인들이 점거해 싫었지만 나 구경 시킨다고 거기서 만났습니다. 자연스레 어릴적 이야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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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러 가는 길에 샘밭부터 들른다. 1982년 1월 12일. 생애 두 번째 방황이 시작되었다.  40년을 2년 더한 세월은 아팠던 기억을 추억으로 다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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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세운 곳이 목공예품 전시장 겸 제작소. 샘밭 옛 103보충대 정문 대로 건너편. 가자는 친구 붙들고 구경. 차 탁자가 굴곡진 선이 예쁘다. 앉아 2인용. 얼마예요. 40만 원. 착한 가격. 귀동냥 적극 하여 이틀 품값이란 걸 안다. 착한 거 맞다. 볼 게 많다. 수종, 연령, 운반, 업력...캐묻는다. 손님이 귀해서인지, 내가 잘 생겨서인지 허투루 답하지 않는다. 느티나무 직경 1.5미터, 길이 4미터. 절단한 통나무를 비닐로 싸서 보호. 이게 젤 크다. 켜서 세운 목재 하나. 이건요?느티나무요. 수 십 년 컸겠네요. 몇 백 년이요. 예?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이테  보세요. 눈 가까이 대고 들여다보니 머리카락 선이가로로 빼곡. 세다 포기. 몇 십 개 넘고 몇 천은 아니니 몇 백 맞다. 벼라별 작품들, 소품들. 좌 적재소, 옆 제작소, 뒤까지 양해 구하고 둘러본다. 옛 제재소 정경을 부분이나마 만나니 반가와서. 친구는 마지못한 듯하나 어쩌겠나. 친구가 좋다는데.



백년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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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 집. 엄청 크다. 기업형. 어릴적 이야기는 들었고 가장 궁금했던 거. 사범대학을 졸업 안 한 거로 안다. 왜? 언제까지 다닌 거? 4년 마쳤다. 마지막 교생 실습만 안 갔다고. 학점은? 그런 건 모른다. 졸업은 한 거? 교생 실습이 전공 필수라 졸업 아니라고. 대체 왜? 공장 들어가서 노동자들과 일했다고. 그랬다. 모든 걸 포기했던 거.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런 이가 내 곁에 있다니. 집중한다. 세 시간여. 이제야 알 거 같다. 대학 때 그 표정. 그간 궁금증이 확 풀린다.


중간 중간 내 삶 스토리를 압축해 내어놓는다. 대입 대실패부터 삼성 연수원 이튿날 새벽 탈출, 증권회사 죄다 탈락 후 대기업 다 탈락. 1년 가까이 그러다 엘지 계열사 면접. 하도 떨어져서 또 그럴 거 한마디. 저 안 뽑으면 큰 손해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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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걸. 합격. 간신히 입사해 여의도 쌍둥이 빌딩서 4년. 고향 자원해 5년. 사표. 엘지 그룹 회장 구본무 직속 인사 임원과 담판. 2계급 특진, 연봉 두 배.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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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매장 사업, 인터넷 유통 혁명하다가 파산. 7년 혁명하다가 쫄딱 망했고 빚 갚느라 10년. 합 17년 모든 친구 단절. 은퇴. 먼저 고교 친구들 복원. 이제사 너를 본다고. 오늘에야 친구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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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댐이 멀지 않답니다. 파로호가 화천댐이냐니 그렇답니다. 난 그게 늘 헷갈렸어. 화천댐에 성대 때 추억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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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양아치였구나. 대충 듣더니 한 마디로 압축. 역시 연극 대본 써본 이답다. 헌데 양아치라니. 야, 아니야. 그건 친구 셋이 차비가  없어서 차비 구하려고 한 거야. 내가 강원도라니까 여긴 춘천 강원도고 뭐라도 해야 하니까. 그리고 난 돈 달라 안 했어. 돈 있냐고 물었지. 양아치들은 다 그래. 역시 다르다. 연극 해 본 녀석이라. 녀석이 양아치 역을 많이 해본 거다. 그러지 않고 어찌 그리 잘 알까. 야, 친구들 두 끼 굶고 버스비도 떨어지고. 나 그때 한 번뿐이야. 강도 짓은. 친구가 나쁜 놈이라 볼까봐 괜히 꺼냈나 하다가 아니야 굳이 숨길 건 뭐람. 화천댐 하면 생각나는 게 그건 걸. 니 집 근처라매. 그래도 찝찝. 신병교육대에서 코끼리단팥빵. 야, 그거 나 조교한테 머리 두들겨맞아 호빵맨과 똑같이 될 각오하고 간 거야. 호빵맨은 경호란다. 그래. 네 봉 사다가 넷이  나눠 먹었잖아. 나 혼자 먹으려고 그 짓 하냐.  이게 좀 먹혔나 보다. 더 이상 양아치론을 꺼내지 않는다. 아님 귀찮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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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을 찾은 건 얕은 계산이 서서다. 전원주택서 사는 친구를 부러워 마라. 일이 얼마나 많은데. 벌레는 또 어떻고. 그런 이를 친구로 둔 이가 복이다. 혼자 산다면 로또 맞은 거. 마눌 눈치 볼 일 없다. 천국이 따로 없다. 8년 전 그걸 알았다. 은퇴 직후 단절된 친구 복원 프로젝트. 딱 그런 친구 하나. 부어라 마셔라 취하도록. 떠들고 노래하고. 킬킬 끅끅. 새벽 두 시까지 지치면 각자 방으로 서넛이면 둘이 한 침대. 껴안고 게이인 척 장난. 아침 7시면 다 출근. 혼자 탁자 비우고, 설겆이, 바닥 훔치고, 이불 개고. 개 두 마리 빠이빠이. 귀래 전원주택에 쌓은 추억만 산만 할 거. 횟수는 헤아림 불가. 그런 친구 희귀하다.


헌데 하나 더라니. 더욱이 맞담배질. 더더욱이 방에서, 화장실에서. 이게 얼마만인가. 버스에서 담배 폈어. 맞아. 사무실에 재떨이 놓고 다들 뻑뻑 피웠더랬어. 80년 대로 타임머신. 흥부의 박이 터져 복이 쏟아진 다. 아침에 먼저 침대서 일어나 첫 구경. 주변이 매깔끔하다. 농사 짓는데 이리나? 놀랍다. 엄청 부지런하고 정리를 철저히 하는구나. 잠시 후 나오더니 전날 풀 다 깎았다고. 마당뿐 아니라 밭 둘 사이 길까지 전부 다. 그 넓은 걸? 친구는 나 하나 받으려고 정성을 쏟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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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집중하기에 둘 만남을 좋아합니다. 셋이면 번갈아 화제 안 끊기고, 넷까지는 두루치기 섞여서 재미납니다. 그 이상은 정신 없지요. 약 먹어 술은 못 하지만 전혀 문제 아닙니다. 2차 닭갈비 집서 친구가 역정 살짝. 니가 왜 내 인생을 재단하냐고. 사나이답게 승질머리가 있더라구요. 금방 오해 풀었습니다. 나는 너 살아온 이야기 듣고 싶은 거야. 우리 나이면 금방 잊잖니. 옛 기억은 점점 또렷한데 새 거는 돌아서면 잊잖아. 전화번호 일곱 자리 새겨도 안 외워지잖아. 그렇다고 나중에 또 물으면 기분 나쁠 수 있기에 스토리 정돈한 걸 곡해한 거.


그럴 만하다. 미주알 고주알 캐묻고 순서까지 세우는 거. 나니까 이러지 이런 사람 있을까. 다른 뜻 없어. 니가 궁금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니 삶 니가 산 거 존중해. 내가 왜 너 삶을 평가하겠니. 소주 두 병. 친구 덕에 닭갈비를 숯불 구이는 처음 별미. 농막 왔을 때 깜깜한 밤. 전원 구경은 내일로 미루고 이야기 꽃 만개 3차. 말미 새벽 1시. 불 끄고 널찍한 침대 나란히 누워 칠흑에서 언뜻 삶이 비극이었다고. 무슨 소리야. 난 너를 존경해. 다들 가는 길이 있는데 너는 달라. 너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선택했어. 내 주위에 너 하나뿐이야. 다 돈을 쫒을 때 너는 가치를 추구했어. 비극이라니. 운이 안 닿았을 뿐. 그건 누구나 그렇잖아. 앞일을 어찌 아나.


친구야. 그날 못 다한 말 덧붙일께. 나는 알아. 가치 추구에 실패도 성공도 없어. 성취만 있을 뿐. 너는 너의 삶이라는 동심원을 너 스스로 그렸어. 이후 다른 동심원을 그린 거고. 나는 은퇴하고서야 가치를 처음 생각했고 이제서야 행동하고 있어. 그걸 너는 청춘에 뜻을 품고 실행에 옮겼어. 남들은 꺼리는 길을 택했고 그 길을 걸었어. 그래서 나는 너의 삶을 존중해. 나는 너를 존경해. 너가 내 친구인 게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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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꾀꼬리 우지짖는 두메산골은 친구를 품었다. 그 너른 에서 사나이 오붓하게 24시간을 보냈다는 시덥잖은 전설. 내겐 소중한.


한치 앞을 모르는데 누군들 삶을 어찌 알겠는가. 은퇴인인 나는 소중히 여기는 게 하나 있다. 부, 권력, 명예 이딴 아니다. 가치다. 오롯이 가치 하나 위해, 노동자를 위해 청춘을 바친 친구의 삶을 나는 공감한다. 깨알같이 기록하는  세상에 그런 이 귀하기 때문이다. 나는 청춘 21살 한 친구를 만났다. 63세 되어서야 비로소 그 친구를 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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