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 PROJECT ARCHIVE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서 문서를 짜임새 있게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그와는 달리 어떤 글이든 일과는 무관한 형태의 쓰기가 필요했다. 쓰겠다는 결심과 함께 집 근처 교보문고 한편, 키보드가 진열된 매장으로 달려갔다. 노트북을 따로 사용하고 있지만, 평일 업무용으로 주로 쓰고 있어 회사에 두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업무적 생산성과 전혀 관계없는 활동에서 얻는 성취감을 위해서는 목적에 맞는 도구가 필요했다.
아이패드와 연결해 둘 무선 키보드를 찾기 위해 매장 안에 있는 샘플들을 하나씩 두드려 보았다. 일단 시끄럽지 않은 타이핑이 가능하되 어느 정도 누름감을 티 낼 수 있는 소리는 필요하다. 회사에서 주로 쓰는 툭 튀어나온 키는 보기가 싫으니 그것보다는 키의 높이가 낮고 모양도 네모보다는 둥그런 모양이 더 좋은 느낌이다. 휴대용은 아니고 집에 두고 쓸 것이니 너무 가벼워 장난감 같은 가벼움보다는 묵직하게 책상 위에 한자리 차지해 주었으면 하고, 잘 쓰지는 않아도 숫자 키는 따로 있어서 좌우로 어수선하게 숫자를 찾아 헤매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더하며 고르고 고른 물건이 책상 위에 놓였다.
우측 상단의 숫자가 새겨진 1~3번의 버튼에 각각 기기를 페어링 해 버튼 하나로 연결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아이패드만 연결해서 활용하고 있다 보니 별다른 쓰임은 아직 없다. 제일 좋은 기능은 고무 재질의 슬롯이다. 틈새에 아이패드를 딱 끼면 화면을 읽기에 수월한 각도로 거치가 가능한데,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을 때도 걸쳐 두고 차 마시고 과자 먹는 타이밍에도 거치대로 잘 활용하고 있다.
보통의 메모는 노트와 펜을 주로 쓰고, 생각도 손으로 쓰고 파일로 옮기다 보니 굳이 집에서 여러 시간을 키보드로 작업하는 일은 많이 없었다. 키보드를 보지 않고 타이핑이 가능은 하지만, 손가락은 주로 왼손의 검지와 오른손의 엄지, 검지, 중지 만으로 타이핑을 한다. 느리지는 않다. 다만 다른 손가락을 사용해 타이핑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처음의 버릇이 자리를 잡았는데, 특히 두 검지가 수고가 많다.
업무의 대부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엑셀과 씨름을 하는 일을 하면서도 딱히 컴퓨터가 내 개인의 생산을 위한 도구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쓰기를 하자 하니 먼저 떠오른 게 키보드라는 것이 조금 웃기기도 하다. 타닥타닥 누르는 소리가 지금 내가 무언가 열심히 애쓰고 있는 행동이라는 기분도 들고, 생각과 손이 힘을 합쳐 누르는 대로 페이지에 적혀지는 걸 눈으로 따라가며 보는 즐거움도 한몫하는 것 같다.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 결과물이 눈앞에 쌓이는 기분이다.
무엇이 되었든 써보자는 다짐이 올해 몇 가지의 글을 누적했고, 또 써보고 싶은 이야깃거리 몇 가지를 리스트로 만들어 두었다. 매일 쓰는 사람이 되기는 아직 어렵지만, 쓰기 위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메모하고 다듬는 과정을 즐기는 중이다. 그렇게 모아진 몇 줄의 문장들로 며칠에 걸쳐 하나의 이야기를 내보기도 하고 혹은 끝내 완성이 어려워 다른 파일 목록을 뒤적여 보기도 한다. 그렇게 느리지만 하나씩, 생각과 마음을 담아 가는 시간의 결과물들이 계속 함께하길 바란다.
UNIT 12. 성취감을 주는 물건
NAME. 로지텍(LOGITECH) K780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
FROM. 스위스
SINCE. 2016
PRICE. 8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