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결과를 저렇게 문자로라도 알려주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아무 소식이 없어서 입이 마르도록 인내하며 기다리다 지친 지원자들이 어렵게 연락을 하면 그때서야 불합격 사실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는 구직자들은 왜 연락을 안주냐며 화를 내기도 하고 말도 없이 확 끊어버리거나(휴대폰으로 뭐 확! 해봐야 느낌을 살릴 순 없지만) 그래도 아직 여유가 남아 있는 경우는 '아쉽네요. 다음에 다시 도전하겠습니다'라고 여운을 남기며 오히려 담당자를 미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같다.
채용이 안됐다는 소리다.
정중하고 매너 있게 구구절절한 문자를 보내거나 아무 연락도 안 하거나 어쨌든 탈락은 탈락이다.
탈락의 초기에는 저런 문자를 진심으로 믿으며 '그래도 내가 그리 모자란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군' 하며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지만계속 반복되다 보면 저런 매끈한 문자가 오히려 '내가 무슨 유치원생이냐? 친절하게 구는 게 더 기분 나쁘다, 위선적이다' 라며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도 상대의 친절이 오히려 안좋게 느껴지는 그 기분을 좀 안다.
과한 친절은 나도 알아차리기 전에 내 감정을 미리 아는 것처럼 보인다. 난 기분 안 나쁠 자신 있는데 왜 내가 기분 나쁠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억지스러운 기분 말이다.
(쓰고보니 확실히 억지스럽긴 하다)
우리나라 서비스직들의 그 이상한 존댓말과(커피 나오셨습니다, 전화 오셨습니다 같은) 더불어 필요 이상의 친절은 그래서 좀 불편하다. 속된 말로 너무 마사지하면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자꾸만 정서가 메말라 가는 이유도 있겠지만 오리무중의 감정을 과도하게 예쁜 형용사로 잔뜩 버무린 것 같은 글은 끝까지 읽기가 힘이 든다.
분명 건조하고 쉬운 단어들로 나열돼 있는데 읽다 보면 괜히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거나 울컥해지는 글이 있다.
전에는 맞춤법이 조금만 틀려도 읽기가 싫었는데 요즘은 맞춤법 정도야 문서작성기가 알아서 고쳐주기도 하지만
맞춤법 좀 틀린다 해도 내용이 주는 감동이 있는 글이 좋다.
내용에 담긴 글쓴이의 진심이 바로 감동의 원천 아닐까 싶다.
76세 할머니가 먼저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면 쓴 글
늦게 배운 한글로 삐뚤삐뚤 한자씩 눌러쓴 할머니들의 짧은 글들은 미사여구로 꾸민 흔적이 없다. 느낀 것을 날 것 그대로 쓴 것뿐이고 내용도 흔히 자식, 손주 걱정이나 먼저 간 영감님들 혹은 젊을 적 모진 시집살이에 대한 뒤끝 있는 한 풀이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는 알 수 없는 감동에 눈이 촉촉해진다.
글도 자기표현이다.
그래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긴 글도 쓰고 짧은 글도 많이들 쓴다. 쓰면서 흐트러졌던 자기의 감정을 수습하기도 하고 차분히 자기를 흔들고 있는 실체를 쫓기도 하면서 말로 다하지 못할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오늘 같이 마음이 공허한 날은 도대체 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텅 빈 것 같은데.
텅 빈 속이 시끄러울 건 또 뭔지
글을 봐도 집중이 안되고
음악을 들어도 좋은지도 모르겠다.
이럴 땐 잠이나 자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다지 잠이 잘 들지도 못할 것 같다.
차라리 낮이었으면 막무가내로 방향 없이 내처 걷고도 싶다.
걷다 보면 오장육부가 제 자리를 찾고, 오장육부가 제 자리를 찾으면 마음도 제 자리를 찾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