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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8시 출근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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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수 Feb 01. 2022

직장 은따의 시절인연

그녀 이야기 2.

나로 하여금 측은함과 한숨 사이를 오가게 했던 그녀의 몇 가지 장면


<장면 3>

그녀가 요 며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점심시간마다 혼자서 가방까지 다 챙겨 들고 나갔다가 오곤 했는데 밥은 먹지 않는다 했다.

다이어트를 하나 싶었는데 뭘 먹으면 소화를 못 시키고 자꾸 토하는데 병원에 가봐도 딱히 이상은 없다 한다.

배가 고프니 또 사무실에 비치해둔 과자를 잔뜩 가져다 먹기도 했다.

좀 지켜보다가 일주일이 지나는 날 그녀를 불렀다.


"요즘 무슨 문제 있어?"

"...."


뭔 말을 할 것처럼 입을 움찔거리더니 배시시 웃기만 한다.


"나한테 이야기하기 곤란한 문제야?

꼭 얘기 안 해도 되긴 하는데 몸의 병이 아니라면 마음의 문제일 텐데

너무 오래가는 것 아닌가 싶어서 걱정돼서 그래"

"팀장님...흑.."


갑자기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말 그대로 닭의 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서둘러 휴지를 가져다주고 등을 토닥여줬다.

더 한참을 끅끅거리며 눈물을 쏟더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남친이랑 헤어졌어요..흑흑..  밤에.. 계속 잠을 못 자요..흑흑흑"


그랬구나. 헤어짐은 언제나 아픈 법이지.

뭐라고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따뜻한 녹차를 갖다 줬다.


"헤어진 아픔은 시간을 견디는 수밖에 없어.

그런데 그럴수록 혼자 있는 것보다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이 조금은 나을 텐데.. "


이별의 아픈 기억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덮는 거라던가.

일상이 그래서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바쁜 업무를 내며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다 보면

상처는 어느새 딱지가 앉기 시작한다.


"사무실 샘들이.. 흑흑흑.. 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흑흑.. 왠지 제가 물속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흑흑흑.."


외로움이 배가 되겠구나.

가슴이 아려온다.

흔들리는 그녀 어깨가 오늘따라 작아 보인다.

눈물을 닦고 코를 훔치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사무실 내에서 그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눈에 띄게 따돌리진 않지만 자기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고 어딜 가더라도 함께 가자고 손 내밀지도 않았다.


직원 개별 면담할 때 몇몇 직원이 그녀에 대한 불만들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사적인 영역에서의 친밀감이나 유대감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녀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도움을 청하지도 도움을 주지도 않는, 그래서 굳이 유대감으로 엮일 이유가 없는 사람.

 

일 할 때 모습처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녀는 쌍방소통이 안 되는 한 마리 질주하는 경마였을까?


일에 필요한 정보는 취합 후 다시 전체 공유하면 된다.

상담 사례를 공유하며 상담의 질 높이는 것들은 얼마든지 시스템으로 관리가 된다.

그래서 상담일은 팀원 간 협업이 필수적이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만, 상담사는 백 사람의 백 가지 요구에 대해 상담하고 나면 반드시 그 자신의 충전이 필요하다.

그럴 때 동료 간의 끈끈한 유대감은 충전 에너지가 된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함께 가야 되는 것이다.


"일만 하지 말고 옆 사람에게도 관심을 좀 가져봐.

너무 일만 열심히 하니까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잖아.

힘들 땐 힘들다고 말도 하고, 쉬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묻기도 하면서"


울음이 진정됐는지 이제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충혈된 눈으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런 성숙한 모습을 가진 그녀가 오늘은 참 측은하다.

 

그녀를 위해, 그녀의 이별을 위로하는 의미로, 부디 이 아픈 시간을 잘 견디기를 바라며 글을 하나 보내주었다.



시절 인연(時節因緣)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무진장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

사람이나 물건과의 만남도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는 법이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갖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재물이든 내 품 안에, 내 손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재물 때문에 속상하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섭섭해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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