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억을 말하는 자
죽음을 보았던 자는 죽음의 기억을 짊어진다. 한편 기억은 과거를 표상하는 한 양식이며, 과거의 일을 재현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기억과 망각은 항상 함께 작동한다. 기억은 순수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망각을 동반한 심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일차적으로 기억되는 순간의 우연성을 통과하면서 최초로 굴절되며, 나아가 현재와 과거라는 물리적인 간격을 통과하면서 다시 한 번 왜곡된다. 그러므로 기억은 결코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역사 새로 쓰기나 역사의 새로운 규정 등은 망각하고자 하는 열정에 의해 촉발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적대적인 구성물이 된다. 그 결과 역사/이야기, 기억은 처음에 지녔던 연속성과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의 관심과 이해에 무게의 중심을 둔 당사자가 시도하는 과거의 추방이다.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기억을 말하는 자는,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80년 그날, 도청 앞 광장의 광경을 소년의 기억으로부터 호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년은 도청 옆 상무관에서 주검들을, 그러니까 진압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시체들이 관 속에 누워있는 것을 지키고 있다. 소년은, “코피가 터질 것 같은 시취를 견디며 손에 들고 있는 초의 불꽃을 들여다본다.”(12쪽) 그는 생각한다.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12-13쪽) 소년은, 애초에는, 군인들이 총을 쐈을 때, 친구 ‘정대’가 그 총에 맞는 걸 동네사람들이 보았다고 해서 여기까지 찾으러 온 거였다. 그러다 “총검으로 목이 베여 붉은 목젖이 밖으로 드러난 젊은 남자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내고 있던 고등학생 누나의 “오늘만 우리를 도와줄래?” 라는 말 때문에“(15쪽)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소년은 그러니까 소식이 없는 친구를 찾기 위해 이 광장에 나온 것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내부적 충동’이라고 이름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소년이 광장에 나오고 또 계속해서 광장에 남아 있는 일차적인 이유는 죽은 것으로 믿어지는 친구를 찾기 위한 것이다. 그 행위의 이쪽에는 친구와 함께 했던 경험을 통해 친구에게 느끼고 있는 어떤 ‘감정 ’때문이고, 이처럼 “감정은 행위를 준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행위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어떤 행위자가 단순히 사회문화적 구조에 놓여있다는 것만으로 구조에 ‘대한’ 반응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기왕의 소설과 연구에서 항쟁 참여자들의 행위를 진압군에 의한 시민들의 죽임과 이에 ‘대한’ 자동적인 저항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5월을 풍부하게 해석하는 데 일종의 강박-망상성 장애로 기능한다.
소년과 함께 시신들을 돌보고 있는 어린 두 소녀도 여고 3학년(은숙)과 양장점 미싱사(선주)인 아직 십대의 소녀들이다. 그녀들은 “피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가두방송을 듣고 각자 헌혈을 위해 전남대 부속병원에 갔고, 시민자치가 시작된 도청에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왔다가 얼결에 시신들을 돌보고 있는”(16쪽) 참이다. 소년과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행위에 개입되어 있는 것은 어떤 (저항)‘의식’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어떤 ‘감정’인 것이다.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관련하여, “타자에 대한 책임은 타자의 요청에 의해 내가 타자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휴머니즘의 근원은 타자이며, 이런 휴머니즘 안에서의 책임이 나의 유일성에 대한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 소녀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그런 설명이 가능할까.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에 대한 책임은 소녀(소년을 포함한)들의 행위(휴머니즘에 바탕을 둔)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감정과 연결되어 있을까. 감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관계 현상이며, 그 관계의 맥락 속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social construction)이다. 사회적 구조와 얽혀있는 감정은 단순한 ‘느낌’(feeling)이 아니라 ‘느낌의 규칙들’(feeling rules)이다. 그러니까, 이 소년 소녀들이 광장에 나간 행위를 우리는 타자와의 ‘연대의 감정’이라고 잠정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혹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은 ‘누가 그러한 행동을 했는가?’, ‘누가 그것의 행위 주체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성립된다. ‘누구?’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한 삶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된 역사는 행위의 주체를 말한다. 거듭 말하지만, 이 소설에서 기억을 이야기하는 자는 소년이다. 소년의 진술에 따르면, 간단한 염과 입관을 마친 사람들이 상무관으로 옮겨지는 것을 장부에 기록하는 일이 그가 맡은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소년이 이해할 수 없는 일 한 가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것,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은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17쪽)
광장에서는 마이크를 쥔 젊은 여자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분수대 앞 스피커를 타고 울려온다. 여자의 선창으로 애국가가 시작된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소년은 따라 부르다 말고 멈춘다. 화려강산, 하고 되뇌어보자 한문시간에 외웠던 ‘려’자가 떠오른다. 꽃이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걸까, 꽃같이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걸까? 여름이쪽 마당가에서 자신의 키보다 높게 솟아오르는 접시꽃들이 글자 위로 겹쳐진다. 하얀 헝겊 접시 같은 꽃송이들을 툭툭 펼쳐 올리는 길고 곧은 줄기들을 제대로 떠올리고 싶어서 소년은 눈을 감는다. 그러니까 이 장쪽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진압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들의 가족들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왜 애국가를 부르는가 하는 점이다.
노래는 그 노래를 함께 부르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일체감을 공유하게 한다. 기실 “의례는 감정의 형식화된 표현”인 까닭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가 “서양 선율과 화성으로 만들어진 탓에 우리의 애초부터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그 작곡가의 친일행위를 문제 삼는다거나 하는 논의와는 별개로 현대에 와서 애국가는 분명 억압적인 국가의례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것은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는 국민의례에서 항용 합창되는 국가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국민들의 주검을 국기로 덮고 애국가를 합창하는 일련의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애국주의와 국민동원체제의 상징적 의례인 애국가 합창에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는 것은 우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무의식에 각인된 집단의식의 발현으로 읽을 수 있다. 억압적으로 행해진 국가의례의 자발적 내쪽화 혹은 순응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국 군대에 대한 무장저항은 그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내적 갈등과 혼란을 겪게 했을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기제는 무엇이었을까. 이 글에서는 혹실드의 ‘감정규칙’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혹실드에 따르면 개인은 일상 속에서 ‘감정 규칙(feeling rules)’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규제하고 통제하고자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 감정규칙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정을 느껴야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일례로 장례식장에서 우리에게 기대되는 행동은 단순히 슬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슬픔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사실과 유사한 논리다. 이는 행위자들로 하여금 ‘깊은 행동(deep acting)’을 요구하며, 이를 통해 개인은 다시 사회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바람직한 상태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애국가를 합창함으로써 시민들의 시위가 북한의 지령이라거나 유력한 호남 출신 정치인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정부의 공작에 맞서고자 하는 의식적 행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의미 있는 논의를 제출했던 최정운에 의하면, 대규모 군중이 참여하고 투쟁한 사건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동기로 참여한 예는 거의 없다. 개개인은 각자 다른 동기에서 참여하며 투쟁의 와중에 또는 그 이후에 투쟁의 의미를 공통적인 해석을 통해 만들어낼 뿐이다. 5・18의 경우에도 모든 시민들이 하나의 동기로 시위에 참여했다는 것은 비현실적 발상이며, 따라서 5・18을 하나의 원인에서 찾는 것도 현실과 맞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최정운은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5・18을 분석하고 있는 정해구의 논의를 빌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요인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열망과 그를 대변하는 학생운동권, 둘째, 호남차별에 대한 불만과 원한, 셋째, 민중적 저항 운동에 대한 역사와 전통, 넷째, 경제적 구조, 다섯째, 전통적 공동체문화 등이다.
그러나 최정운은 그 각각의 경우에 대한 반론을 통해 그것들이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야기임을 역설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에 대한 이성적 분노와 그 분노에 따라 반응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도망친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와 분노” 곧 ‘증오의 감정’을 가장 보편적인 요인으로 정리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많은 5・18소설(들)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행위의 동기를 윤리적 분노에서 찾고 있었다. 사회과학에서 해명한 ‘증오의 감정’과 문학에서 찾아낸 ‘윤리적 분노’라는 태도(혹은 감정)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5・18소설(들)은 문학과 사회의 구조상동성을 강조했던 골드만의 문학사회학의 논리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피고 있는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기억을 증언하고 있는 소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명천이든 목판이든 갱지든 태극기든, 필요한 것들을 부탁하면 그(소년)는 수첩에 적었다가 하루 안에 구해주었다. 아침마다 대인시장이나 양동시장에서 장을 보고, 거기서 구하지 못한 것들은 시내의 목공소와 장의사, 포목점들을 찾아다니며 구한다고 그는 선주 누나에게 말했다. 집회에서 걷힌 성금이 아직 많은데다, 도청에서 왔다고 하면 헐하게 주거나 그냥 가져가라는 사람이 많아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19쪽)
그러니까 그 열흘간의 항쟁 기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항쟁에 참여했던 셈이다. 그것은 어떤 대가를 바란 행위는 물론 아니었다. 문순태는 그의 장편소설 그들의 새벽에서, 이들의 심정을 “한 번도 사람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이들이 도청을 사수하며 처음 받았던 박수, 평등한 세상에 대한 그리움, 인간적 자존심 회복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짐작한다. 그것을 그들이 받고자 했던 대가라고 할 것은 없겠다. 오히려 앞의 훅실드의 논의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회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상태에 부응하고자 하는 감정규칙에 충실했던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슬픔과 연민의 감정’이다.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의 감정’이다. 사건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80년 5월 27일 날, 소년은 함께 있는 선주 누나에게 묻는다. “오늘 남는 사람들은 다 죽어요?”(28쪽)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의 감정’이외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앞에서, 기억은 결코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고 했다. 기억은 망각과 함께 작동되기 때문이며, 그것은 과거의 체험에서 말미암은 원상(trauma)과 관련된다. 소년은 왜 말하는가. 그것은 체험된 사실로부터 말미암은 원상의 회복,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해서다. 그러나 적어도 5・18의 상흔에서 완전한 회복이란 없다. 그것은 다음 장에서 살피게 될 소년의 죄의식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그 상흔은 깊고도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