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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음 Apr 02. 2021

사랑은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 이기주

<결혼은 그냥, 버티는 거야>#5.


미국에 사는 나는 한국어로 된 책을 사기 위해, 서점을 휙 둘러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바람 쐬러 한국에 있는 동네 서점에 휘리릭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전히 영어로 된 책들만 있으니, 서점에 가도 그냥 그렇다. 언어가 곧 나의 문화이고, 뿌리인데 말이다. 삼성동에 새로 생긴 별마당 도서관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게다가 나의 음악인 친구들은 그곳에서 연주도 한다니, 부러울 수밖에.

  아무튼, 인터넷으로 온라인 서점을 들여다보고, 의지적으로 찾아보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는 한국 책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날, 한국에서 교환교수로 1년을 계획하고 미국으로 갓 들어온 아는 언니가 우리 부부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서는, 그냥 자기 전에 읽기 좋다며, 한국에서 유행하는 책이라며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권해 주었다. 안 그래도 남편과 대화는커녕,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지내던 나날의 연속이라 우울하기만 한 터에, 그거라도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당장 미국으로 배송시켰다.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기대도 없이 읽었는데 완전 반전이다. 읽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책 구구절절 내 마음 같고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친구랑 “ 우리 한번, 이 책 한 줄 한 줄 외워볼까”라고 서로 제안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제발 남편이 이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관계가 안 좋은 상태에서 내가 추천하는 책은 무조건 무시당하게 되어있음도 알았기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작가인데 이름도 모르겠다.  여자인가?  내 마음을 이리 잘 알아주니 분명 여자 작가일 거야.
그런데, 웬걸 남자란다.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또 한편으론 살짝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작가 부모님이 이름 이쁘게 잘 지어주셨네. 난 이런 이름이 좋더라. 중성적인 이름.

  그의 보라색 책 ‘언어의 온도’는  백만 부 이상 책이 팔렸고,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그 당시 가장 ‘핫’한  작가는  바로 이기주 작가였는데,  그를 몰라본 게 살짝 부끄러웠다.

  그 책 중에 또 다른 장면이 확 와 닿았는데, 한 할아버지가 지하철에서 할머니의 말을 듣는 장면이다. “ 여보, 사람들 많으니까 이어폰 끼고 들으세요.”
“ 아, 맞다. 알았어요. 당신 말 들을게요.”

  정말 별거 아닌 일상적인 장면이다.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당신  제발 이러지 좀 마, 저러지 좀 마”
“네가 감히 나한테 그렇게 얘기했어? 어디 두고 봐라, 내가 그 말을 들어주나.”
“흥! 당신이나 잘해!”

  싸움의 근원이 되던 지적질들에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 부부도 한때는 서로 듣지는 않고 기싸움만 하게 되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글을 읽고는, ‘남편이 싫어하는 내 모습을 어디 한번 고쳐줘 봐?’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렇다.  나는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결혼을 책임지고 싶었다.  내 사랑의 선택이 옳았다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나마 나의 사랑을 증명해 보기로 다짐했다. 글 한귀가, 그렇게 내 결혼 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 번호순으로 글을 읽으시면 흐름을 이해하시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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