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맛있는 치앙마이, 마음을 달래주는 세 개의 식당

- 치앙마이 세 맛집에서 발견한 따뜻한 회복의 순간들 -

by 마르코 루시

낯선 도시에서 가장 먼저 지쳐가는 건 발이 아니라, 위장과 마음이다. 특히 여행 초반에는 모든 것이 낯설다. 향신료 강한 음식, 메뉴판에 익숙지 않은 글자, 그리고 익숙한 것 하나 없는 식당의 풍경까지. 하지만 치앙마이에서는 조금 다르다. 골목 어귀에서 풍겨오는 갈랑갈(태국 생강)과 레몬그라스 향이, 오랜 시간 이 도시가 품어온 따뜻한 환대의 방식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바로 그럴 때, 한 끼 식사가 품어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크다. 치앙마이에는 낯선 여행자의 마음을 음식으로 달래주는 식당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깊은 위로를 건네는 세 곳이 있다.


첫 번째 만난 식당은 아로이디(Aroy Dee). '맛있다'는 뜻의 이 단순한 이름은 간판만으로도 마음을 놓이게 한다. 도로변 야외 테이블에는 밝은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고, 일부 자리에는 전통적인 패턴의 천이 덮여 있으며, 맥주잔을 부딪치는 여행자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온다. 메뉴는 익숙한 팟타이와 볶음밥이지만, 그 뒤에는 여행자를 향한 작지만 분명한 배려가 숨어 있다. 주문은 영어로 가능하고, 매운 정도도 조절된다. 이는 단순한 상업적 친절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치앙마이가 품어온 관용의 풍경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고기 팟타이 한 접시는, 낯선 식문화의 문턱을 부드럽게 낮춰주며 "천천히, 마음 편히 드세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무엇보다 주인이 한국어로 건네는 ‘안녕하세요’ 한마디가, 이 식당을 더욱 다정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조금 더 다정한 식탁을 만나게 된다. 카페 드 탄온 아오안(Cafe de Thaan Aoan)이다. 올드시티 중심에 있는 이 브런치 전문점은 따사로운 햇살과 고요한 실내가 마치 오랜 친구의 거실처럼 느껴진다. 노트북을 펼치고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책장을 넘기며 와플을 나누는 연인들. 이곳의 아침 풍경은 치앙마이 특유의 여유로운 시간 흐름을 보여준다. 급하게 하루를 시작하기보다 차분히 시간을 들이는 문화, 그 속에서 태국식 아침과 서구식 브런치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메뉴의 컬러풀한 열대과일 플레이트, 바삭한 와플, 달걀 오믈렛은 모두 치앙마이가 동서양 문화가 만나는 곳임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들이다. 아침 햇살을 받아 노랗게 빛나는 망고 조각은 그날 하루를 버틸 기분 좋은 약속처럼 보인다.


여정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 골목 안쪽의 녹색 간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캣츠 키친(Kat’s Kitchen)이다. 이름만큼이나 따뜻하고, 수수한 외관 너머엔 조명과 향신료의 향이 어우러진 공간이 있다. 채식 메뉴는 물론, 일부 글루텐 프리 옵션도 제공되는 이곳은 '단순한 맛집'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과 식습관을 포용하는 '돌봄의 식탁'에 가깝다. 이런 다양성은 치앙마이가 오래도록 품어온 공동체적 기질과 맞닿아 있다. 카렌족, 샨족, 중국계 이주민들이 어우러져 살던 이 땅에서 음식 또한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하며 발전해 왔다. 넉넉한 크기의 그릇에 담겨 나오는 ‘마마 똠얌 해산물 국수’에는 왕새우가 듬뿍 올라가고, 통 오징어가 풍덩 잠긴 채 깊은 풍미를 더한다. 국물 맛이 살아 있는 똠얌의 칼칼하고 상큼한 풍미는, 혀끝보다 먼저 마음속 깊은 허기를 어루만진다. 따끈하게 김이 오르는 푸짐한 카오소이를 비추며 화상통화하는 여행자, 현지어를 섞어가며 주문하는 프랑스 여성을 보며, 이곳이 그저 밥을 먹는 공간이 아니라 치앙마이와 조금 더 연결되는 접점임을 실감하게 된다.


치앙마이는 사원과 골목, 카페와 야시장으로 구성된 도시지만, 어쩌면 가장 직접적으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건 이런 식당일지도 모른다. 아로이디는 입문자의 한 끼, 카페 드 탄온 아오안은 브런치로 회복, 캣츠 키친은 마음 깊은 곳을 다독이는 돌봄이다. 여행 중 우리는 수없이 많은 장소를 찍고, 걷고, 소비한다. 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이 도시 사람들이 정성껏 차려낸 한 끼에서 받은 '사소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낯선 이방인을 품어주는 이 도시의 오래된 환대 방식이다.


keyword
이전 12화붉은 성벽의 비밀, 치앙마이 올드시티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