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이란 임신 과정에서 내게 출산의 고통보다 더 두렵고 힘든 시간을 꼽자면 입덧 기간이다. 물론 출산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출산은 그래도 24시간 안에는 끝이 나긴 한다만 이놈의 지독한 입덧은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가도 도대체 그 끝이 보이지 않은 채 화장실 변기만 하염없이 붙잡고 보내야 하는 시간이 내겐 너무나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임신을 겪기 전, 내가 알던 입덧에 대한 이미지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전부였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며느리가 화장실로 달려가 ‘웩웩’ 헛구역질 몇 번 하다 끝나는 장면이라던가, 어떤 음식이 무지막지하게 땡겨(주로 밤 시간, 구하기 힘든 음식으로) 겨울엔 수박이, 여름에 딸기가 먹고 싶다며 남편에게 사다 달라고 하는 장면이 내가 생각한 입덧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내가 현실에서 겪은 입덧은 이런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인의 차이에 따라 입덧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먹덧(공복일 때 울렁거리기에 끊임없이 음식을 먹어줘야 하는 증상), 체덧(음식만 먹으면 체하는 증상), 양치덧(양치를 하려고 칫솔만 입에 넣으면 구토로 이어지는 증상), 토덧(먹어도 토하고, 안 먹어도 토하는 증상), 침덧(침을 삼킬 경우 구역질이 나오는 증상)이 있는데 나는 세 번의 임신과 함께 이 모든 유형의 입덧을 경험했다. 그중 최악은 역시나 토덧이다.
첫째 때 아기집이 생겼다는 초음파 사진을 보고 정확히 일주일 뒤, 그 어떤 입덧에 대한 사전 정보도 예고도 없는 상태에서 입덧은 시작되었다. 그땐 몰랐다. 임신의 놀람과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이 작은 아이의 존재로 인한 입덧이 나의 일상을 와장창 흔들어 놓을 줄은.
입덧은 익숙하던 것들로부터 지독하게 멀어지게 만든다. 모든 냄새가 역하고, 아무리 좋아하던 음식일지라도 이미지가 연상되는 순간 속이 메슥거린다. 길에서 음식점 간판만 눈에 들어와도 음식 이미지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떠오르고 순간적으로 속이 울렁거리는지 모른다. 숙취는 아무리 심해도 하루 종일 집에서 푸욱 쉬면 끝이 나는데, 입덧은 술이 아니라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는데 종일 토하며 90일간 매일 반복적으로 겪는 숙취와 같았다. 석유를 목구멍에 들이붓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통통배를 타며 뱃멀미를 심하게 하는데 배에서 세 달 가량 내릴 수도 없는 상황과 같달까. 겪어 본 자만이 알지니, 어떤 비유로도 그 고통을 이루 다 설명할 수가 없다.
국물만 한 숟가락 떠먹어도 곧장 화장실로 직행해서 토하거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때는 하다 못해 위액이라도 토해낸다. 먹고 올리는 경우엔 소화가 덜 된 음식물이 식도를 자극적으로 건드려서 따갑고 쓰리고 역하고, 공복에 토하는 건 쓰디쓴 위액이 올라와 힘들고,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그나마 당시 먹을 수 있던 복숭아를 도시락 통에 담아 들고 다니며 회사에서 쉬는 시간 짬짬이, 그리고 점심으로 먹곤 했다. 그렇게 해도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화장실 변기와 물아일체 되어 내 안의 모든 것을 게워내는 시간이 하루의 반 이상이었다. 변기를 부여잡고 눈물, 콧물 쏙 빼며 모든 것을 게워내고 나면 혼이 빠져나가는 기분과 함께 얼굴의 눈가 주위엔 실핏줄이 터져 주근깨처럼 울긋불긋 자국이 오래도록 남았다.
이미지 출처: bump boxes
집에서 회사까지 지하철로 네 정거장이면 통근이 가능한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 10분이면 되는 네 정거장을 못 버텨서 중간 역에서 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당시 이것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던 가방 속 나의 필수품은, 파란색 포장지의 홀스 사탕과 검정 비닐봉지였다. 통근 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속이 메슥거릴 땐 홀스를 입에 물고 침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애써 버티고, 내려서 길을 걷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땐 재빠르게 가방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들었다. 혹시나 버스나 지하철에서 실수를 해서 민폐를 끼치진 않을까 주위의 시선을 엄청 신경 썼는데, 다행히 대중교통 안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 들고 시선 집중을 받을 일은 없었다. 홀스 사탕이 날 살렸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냥 쓰러지듯 누워 잠들기 바빴다. 적어도 잠들어 버리면 자는 동안에는 토하진 않았으니까. 하루하루 버티기에 가까웠다.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그저 침대에 쓰러져 누워 무기력하고 처참한 나의 모습이 서러워 참 많이도 울었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속이, 익숙하던 일상생활이 전혀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너무 속상했다. 괜한 뱃속의 아기에게 엄마 좀 살려달라며 애원하다가, 엄마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며 원망하다가, 너만 건강하면 다 괜찮다며 미안해하기를 반복하였다.
먹는 게 없으니 살이 한 달 만에 5kg도 넘게 빠지는 와중에도 태아는 주수에 맞춰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지금 몸이 어디가 아픈 상태가 아니라 임신 과정 중 하나라는 사실, 입덧이 심하다는 건 아기가 잘 크고 있다는 신호라는 사실, 지금 당장은 너무 힘들고 끝이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입덧도 출산 전에 끝이 있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만을 새기며 어서 입덧이 지나가기만을 하루하루 버틴 시간이었다.
6주부터 시작한 입덧은 12주 절정을 찍고 16주 접어들면서 서서히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제야사람다운 삶으로 돌아왔다.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먹고 더 이상 화장실로 달려가지도 않았다. 중기에 접어들며 임산부인 나에게도 태아에게도 안정기가 찾아온 것이다.
지독하도록 혹독한 입덧을 경험하였기에 이후 둘째의 임신 소식을 접했을 때,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출산이 아닌 입덧이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