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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Mar 02. 2024

청소업자입니다만

“청부업자입니다만.”


“…청소업자요? 그럼 뭘 청소해요?”


잠시 너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 피와 살이 튀기는 나의 세계를 너 같은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 담배를 입에 물고 있어 웅얼거리긴 했어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한 끝 차이 나는 단어를 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네가 아는 방식으로 퍼즐 맞춰 받아들였다. 네가 아는 세상에선 청부업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아… 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그저 오다가다 몇 번 마주쳤을 뿐인데 뭐 하는 사람인지 묻는 네 질문에 왜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졌을까. 그건 천진한 너의 대답과는 달리, 나의 세계와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마주칠 때마다 네 얼굴에 시퍼렇고 붉은 꽃들이 피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울긋불긋 한 멍과 상처가 가득한 얼굴을 가릴 생각도 없는 투명하게 솔직한 네게 나도 어쩌면 찰나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솔직해지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하하. 제가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네요. 뭘 청소하냐니. 당연히 더러운 걸 청소할 텐데. 이것저것이라면…. 특수 청소 같은 건가요?”


“특수 청소…?”


“죽은 지 오래 된 집들이나 방치된 집들 청소하는 거요. 고독사 같은 거….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으면 냄새가 장난 아니래요. 사람 죽은 냄새가 그렇게 역하고 잊을 수가 없대요. 시체 냄새 맡아 본 적 있어요?”


“…비슷하겠네요.”


당연히 시체 냄새는 맡아 본 적 있었다. 시체 냄새 뿐만 아니라 제 발밑까지 웅덩이를 만드는 검붉은 핏물의 비릿한 냄새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죽인 이들이 발밑에서 목숨을 구걸하며 하얗게 질려 갈 때는 묘한 쾌감과 희열마저도 느꼈던 것 같다. 제 자신이 조물주라도 되는 양 인간의 목숨을 제 발 아래 두고 가지고 노는 기분은 말로 형용하지 못할 기분을 느끼게 했다.


“네?”


“그런 청소라면 비슷하겠다고요. 제가 하는 일이랑.”


“아….”


너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했겠지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후련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잘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입만 뻐끔거리며 연기를 뿜어내다 발밑에 비벼 끄고 씩 웃어 보였다.


“안 들어가세요?”


“전 좀 이따가.”


“이름 물어봐도 돼요?”


네가 이름을 물었을 때도 솔직하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수 많은 이름 중 뭘 알려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엔 내가 가지고 태어났던 이름은 어차피 없었다. 나에게 사랑과 애정을 담아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 제가 선 넘었죠? 미안…. 근데 진짜 사심 아니고 궁금해서요. 그래도 담배 같이 피우는 친구…잖아요. 제 이름은 이민경이에요.”


“친구 허들이 매우 낮네요. …서동민.”


“흐흐. 그런가. 제가 친구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 봐요. 이름 알고 나면 나이도 묻는 게 한국 사람 국룰인데 이건 혹시 다음에 만나게 되면 물어볼 거니까 미리 준비해 두고 있어요.”


멀어지는 네 뒷모습은 당장에라도 그 자리에서 사라질 것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붙잡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오다가다 잠깐 만나 담배를 같이 피운 사이일 뿐이니까.


서울 근교 월세가 비교적 싼 원룸과 빌라가 많은 동네에 이사 온 건 두 달 전이었다. 붉은 벽돌의 5층 짜리 낡은 빌라였다.


“어디서 다 쓰러져 가는 곳을…. 하아.”


짐은 항상 가방 하나면 끝이다. ‘몸은 가볍게, 머리는 무겁게.’ 이 일을 하면서 생긴 나름의 철칙이었다. 언제 어느 때든 다 버리고 떠날 수 있어야 해서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 했고, 타겟이 정해지면 누가 표적이 됐든 신중하고 무겁게 움직여야 실수가 없었다.


일이 끝나면 내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갔다. 다른 일을 맡기까지 기다림은 때론 짧았고 때론 길었다. 일주일 만에 다른 일을 맡을 때도, 6개월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을 때도 있었다. 무엇이 됐든 나는 그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내겐 익숙했다. 그때까지는 어느 곳에서도 나는 ‘Nobody’가 되어야 했다.


원룸에 시장에서 사온 이불과 베개만 놓고 살았다. 식사는 배달 음식이나 근처 식당에서 해결했다. 운동은 빼놓지 않고 했지만 헬스 클럽을 등록해서 다니기엔 보는 눈이 많아 집에서 틈틈이 몸의 긴장감을 주는 정도로 움직였다.


이곳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밤마다 여자가 울었다. 위층인 4층에서 밤만 되면 여자의 비명 소리에 이어 구슬픈 울음 소리가 들렸다. 빌라 사람들은 이미 초월한 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다들 숨죽이고 잠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아무도 나와보지 않았다.


“아… 씨발.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라더니. 제일 시끄럽잖아.”


나 역시 모른 척 했다. 기다림의 시간에는 절대 누구와도 엮여선 안 된다. 괜한 일에 휘말려 들면 귀찮은 일만 생길 뿐이었다. 하지만 여자의 울음 소리가 내 귀를 후벼 팠다. 저 소리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죽고 싶지 않아 내지르는 처연한 비명 소리다. 살기 위해 울부짖는 연약한 짐승의 소리였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울음 소리라 모른 척 하기 힘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 발목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는 전혀 심장이 떨린 적이 없었는데 이 여자의 비명 소리는 거슬렸다. 아마 일이 아닌 누군가의 비명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기어코 4층으로 올라간 건 이사 온 지 일주일 되던 날 새벽이었다. 새벽 2시가 넘어갈 때까지 그치지 않는 여자의 울음 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누구라도 걸리면 그대로 베어낼 것 같았다.


“…에? 누구쇼?”


쿵쿵, 몇 번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온 작자는 알몸에 팬티 바람이었고, 두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입에서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문틈으로 보이는 방안 꼴은 세간 살림이 엉망으로 어지럽혀져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만 했다. 남자의 뒤에서 머리가 헝클어진 채 커다란 눈을 치켜 뜨고 바라보는 너를 처음 만났다.


매일 밤, 술에 취해 들어와 가장 만만하고 함부로 휘두를 수 있는 존재에게 기껏해야 주먹을 휘두르는 작자 따위야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멱을 딸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이곳을 떠나야 했다. 다음 연락이 올 때까지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죄송합니다만. 조용히 좀 해주시겠습니까.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어이쿠, 죄송합니다. 예, 예….”


남자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문을 닫기에 급급했다.


네 두 눈은 간절하게 날 쫓았지만 남자가 무서웠는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내 앞으로 문이 닫히고 얼마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더 이상 네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날 이후로도 여전히 네 비명과 울음 소리는 들려왔다.


나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지만 네 울음 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빌라 옆 좁다란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네 모습을 발견했다. 얼굴에 시퍼렇고 벌건 멍 꽃들이 가득 피어난 네 얼굴은 유독 천진했다.


나는 단박에 널 알아봤지만 네가 날 알아봤는진 모르겠다. 처음엔 말 없이 같은 공간에서 담배를 피웠고 그 다음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눴다. 또 그 다음엔 몇 마디 날씨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유독 더운 여름 날씨여서 이곳에서 피우면 담배 연기가 올라가 위층에 사는 사람들이 지랄거린다며 쿡쿡 웃어대던 네가 어이가 없어서 나 역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 너는 내 이름을 물었고 나는 네 말대로 다음에 만날 때 나이를 물어볼까 봐 뭐라고 말할까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나이에 비해 노안이란 소리를 종종 들어 먼저 네 나이를 물어보고 대충 둘러댈 생각을 했다. 그런 내가 어이가 없어서 자꾸 피식 거렸다.


이게 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단지 좁고 축축하고 지린내가 나는 어둔 골목길에 숨어 담배나 피울 일 밖에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너를 만날 수 없었다. 밤마다 울음 소리는 그치지 않았는데 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널 딱히 기다리지 않았다.


“어…? 오늘은 먼저와 있었네요. 서동민 씨.”


일주일이 지나갈 무렵, 네가 나타났다. 며칠 째 네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아 어쩌면 네가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의 얼굴은 오랜 멍이 옅게 남아있었지만 새롭게 난 상처는 없어 보였다.


원래는 하릴없이 담배를 한 대 정도 피우고 들어가지만 두 대 째 피우고 있어 드러난 팔뚝과 이마 위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안 보여서 이사 간 줄 알았어요.”


“며칠 조용했죠? 그 인간 꼴에 디제이거든요. 지방에 행사 뛰러 갔어요. 이제 올 때 됐지만.”


쓴 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네 얼굴엔 체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떠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너의 얼굴을 힐긋 보고 나서야 하나 마나 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발목에 채워 진 족쇄에 대해 알고 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어쩌면 그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던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몇 살이에요? 이번엔 지난 번처럼 뜨악한 표정으로 안 볼 거죠? 미리 준비하라고 했으니까.”


네가 배시시 웃었다. 웃을 줄을 모르는 나는 어정쩡하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마 네가 보기엔 험상궂은 얼굴로 보였겠지.


“몇 살인데요?”


“치이. 내가 먼저 물었는데…. 서른 살.”


당연히 나보다 어릴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꽤 많은 나이에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서른 다섯.”


“역시 오빠였네요. 더 어릴 줄 알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노안인데.”


“으응? 어려 보이는데. 나랑 비슷한 또래거나 그럴 줄. 눈 보면 알거든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잖아요. 맑고 깨끗해요. 청소하러 다니는 사람이라 그런지.”


“풉...”


“어? 웃을 줄도 아네요. 거봐요. 얼굴이 훨씬 낫잖아요.”


여전히 날 청소업자로 알고 있는 게 우스워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웃을 때면 입술이 묘하게 삐뚤어져서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고 웃을 때마다 맞았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웃지 않게 되었다.


그런 비웃는 내 표정을 훨씬 낫다고 하는 너도 어딘가 어긋나 비뚤어졌을 것이다.


“요즘엔 청소하러 어디로 다녀요?”


“청소…하러 안 가는데. 쉬고 있어서.”


“아…. 청소할 때 혼자 다녀요?”


“어. 혼자.”


“혼자 하려면 힘들 텐데 나도 따라다니면 안 되나. 저 청소 잘하는데. 집 치우는 데 하도 이골이 나서….”


말꼬리가 작아져서 흩어졌지만 그 말을 하는 너는 끝내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말은 공중에서 부서져 버릴 말이고, 바람에 먼지처럼 흩날려 버릴 말이었지만 네 작은 바램 같은 게 섞여 있었다. 발목에 채워 진 족쇄를 부셔 줄 흑기사 따위를 기다린다면 너는 잘못 안 것이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 너를 지옥 끝까지 끌고 들어갈 케르베로스 같은 문지기일 것이다.


“혼자 하는 게 익숙해서.”


“흐흐. 그냥 해본 말이에요. 덥다. 들어가 볼게요.”


“다음 질문은 뭐지?”


“…….”


하얗고 말간 얼굴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질문하면 답해 줄 거에요?”


“들어봐서.”


“알았어요.”


“질문 말 안 해주나?”


아이처럼 폴짝 뛰어 뒤돌아가 가는 널 향해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그렇게까지 붙잡을 필요는 없었는데 뭐가 아쉬웠던 건지 잘 모르겠다.


“미리 말하면 재미없죠. 곰곰이 잘 생각해 볼게요. 뭘 질문하면 서동민 씨 당황하게 할지.”


너는 싱긋 웃으며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처럼 뛰어 들어갔다.


다음날부터 네 울음 소리가 어둔 밤을 새하얗게 메꿨다. 아, 그 빌어먹을 디제이가 다시 돌아왔구나. 주먹이 절로 쥐어졌는데 반질거리던 그 얼굴을 묵사발로 만들 때까지 쉼 없이 짓이기는 상상을 했다. 피떡이 진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테고 내 주먹엔 붉은 선혈이 낭자해서 뚝뚝 떨어질 것이다.


숨통을 단박에 끊어놓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저 작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죽어가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에 그쳐야 한다는 것을. 일이 아닌 이상 일반 사람에게 손을 뻗는다면 나는 다시는 이 일을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나는 피와 살이 튀기는 세계에서 떠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발목에 족쇄가 채워 진 것은 네가 아니라 나일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대략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였다. 가장 더울 시간이라 사람이 가장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너와 따로 만날 시간은 정해 놓지 않았지만 그 시간대에 너도 담배를 피우러 왔다. 네가 오지 않으면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시간을 채우고서야 자리를 떴다. 늘어난 시간만큼 피우는 담배 역시 늘어났다.


네 얼굴을 다시 본 건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나는 입고 있던 티셔츠까지 흠뻑 젖은 채로 네 얼굴을 보며 입술이 굳었다.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부어 있었고 입술은 터져 그 새로 피가 비쳐 들었다. 한쪽 눈은 아예 뜨지도 못했고 목은 손에 졸렸는지 시뻘건 손자국이 선명했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지도 않는 입술 새로 기어이 담배를 밀어 넣어 연기를 피어 올렸다.


“얼굴이 엉망이죠? 이런 날씨에도 나와 있을 줄 몰랐는데…. 혹시 나 기다린 거에요?”


“그건… 질문인가?”


“으응? 하하…. 서동민 씨 대게 재미있네요. 질문 기다린 거에요?”


너는 웃는 것조차 아파했다. 찢어진 입술에선 피가 맺혔고 손으로 아랫배를 부여잡았다. 고통으로 미간이 일그러졌는데 그 모습은 너무 익숙해 보여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고통이 지나가길 기다리면서도 담배를 빨아대며 연기를 뿜는 네 모습이 어설퍼서 웃음이 났다.


“담배 피울 줄도 모르면서… 왜 피우지.”


“아? 이거요. 이렇게라도 빨아대지 않으면 못 견디겠어서요. 미친놈이 담배 피우러 가는 게 아니라 바람이라도 피러 가냐고 하도 지랄을 하길래 덤볐다가….”


나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평소보다 심하게 두들겨 맞은 게 나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봤기 때문이라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내 머릿속에서 경고 신호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너와 더 이상 엮이면 안된다는 신호.


“내가 여기서 종종 담배 피는 거 알고 있거든요. 이 담배도 그 사람이 피우는 거 한 두 개비 씩 몰래 가지고 나오는 거니까. 낮에 집에 있을 땐 안 나왔는데 우연히 서동민 씨 여기서 담배 피우고 가는 걸 본 모양이에요. 처음엔 굳이 여기서 피우는 이유가 뭐냐고 묻다가 남자 만나러 가는 거냐고 닦달을 해대서…. 원래 의처증 같은 건 없었는데 점점 심해져요. 죽을 듯이 때려도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요즘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무겁고 답답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네 가벼움에 숨이 막혔다. 당장 네 입을 틀어막고 연약한 목을 부러뜨리기라도 하고 자리를 뜨고 싶었다.


“…마지막 질문 해도 돼요?”


“마지막... 질문….”


멍청하게 내 말을 따라하며 이제 와서 네가 무슨 질문을 한다고 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내 오늘 밤에라도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가 같이 사는 남자에게 두들겨 맞아 죽어나가는 꼴을 보고 싶지도, 그렇다고 내가 엮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무엇보다 네가 나한테 일말의 바램이라도 가질까 그게 두려웠다.


나는 네게 어떤 희망도 되어 줄 수가 없다.


“우리 집도 청소해 줄 수 있어요?”


한참 만에 입을 뗀 너의 말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폭염이라 땀에 젖어 맨들 거리는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너는 처음부터 내가 어떤 세계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청부업자를 청소업자 따위로 듣지 않았다는 것을.


“청소… 잘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 혼자 하긴 힘들어서.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가 있거든요. 아무리 박박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아서…. 역한 냄새도 나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요. 전문 청소업자를 써야 할 거 같아서.”


“…언제?”


“오늘 밤 새벽 4시. 그때 와요.”


돌아서던 내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고개 짓에 너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이채를 띤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숙소를 옮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짧게 남기고 가방을 꾸렸다. 꾸릴 것도 없는 짐은 단촐 했고 시간이 갈 때까지 창가 아래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시간은 더디 흐르고 해는 느릿하게 저물었다. 붉게 물드는 태양빛은 방안에 긴 그림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땀내에 질식할 것 같아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새벽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네 질문에 대답을 왜 했는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예외는 항상 변수를 만들어 내고 변수는 상황을 위험하게 만든다. 너는 내게 있어 변수였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끙끙 거리는 학생처럼 안절부절 하다 설핏 잠이 들었다.


가위에 눌린 듯 심란한 꿈을 꾸다가 요란하게 발길질을 하며 깨어났다. 새벽 3시 50분. 가방을 열어 한 손에 들어오는 날카로운 칼자루를 들어 허공에 몇 번이나 그어댔다. 쉭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물체는 차갑고 아름다웠다. 상상 속에선 그 작자를 몇 번이고 맨 주먹으로 죽을 때까지 패거나 목을 졸랐지만 가장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할 것이다.


문을 나설 때 잠깐 고개를 돌려 어둔 방안을 둘러봤다. 처음 이사 올 때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 4층 문에 도달한 것은 새벽 4시 무렵이었고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침대 위로 미끄러지듯 걸어가 들고 있던 칼자루를 휘둘렀다. 디제이는 엎어진 채로 잠들어 있었고 역시 술에 취해 있었다. 나는 능숙한 솜씨로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려 단숨에 목을 그었다.


디제이가 고통 없이 간 것은 아쉬웠다. 어떤 부위를 어떻게 찔러 넣어야 피가 덜 튀고 바로 숨통을 끊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침대 시트는 금세 피로 흥건해졌다. 씻고 나온 몸은 땀으로 번들거려 티셔츠가 몸에 찰싹 달라 붙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 티셔츠와 바지에도 여기저기 핏방울이 튀긴 것이 보였다.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고 바지와 티셔츠를 벗었다. 흠칫 놀라는 호흡 소리가 들렸다. 가방 안에서 반바지와 티셔츠로 꺼내 입고 벗은 옷을 가방 안에 집어 넣었다.


“내가 가면 당장 신고해. 아래층에 사는 웬 미친놈이 칼을 들고 와 난동을 부렸다고 해. CCTV는 없지만 칼에 대충 내 지문이 묻어 있으니 증거품 정도는 되겠지.”


입이 벌어져 덜덜 떨고 서 있는 네 발치에 칼자루를 휙 던져주고 너를 지나쳐 걸어 나왔다.


“저기, 저기….”


너는 온 몸을 떨면서도 내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아주 잠깐 너를 데려갈 생각을 했었다. 족쇄를 풀고 이대로 떠날 수 있다면….


“가해자로 지목될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동안 맞고 산 건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다 알 테니 정상 참작이 될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서동민 씨 잡히면.”


“하하….”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며 웃는 나를, 너는 눈물 맺힌 눈으로 무해하게 올려다 봤다. 그 검은 눈동자가 꾸밈이 없어 하마터면 네 손을 맞잡을 뻔 했다.


“지금 내 걱정을 할 때가 아닌데…. 내가 말했잖아. 난 청소업자라고. 역하고 냄새나는 것을 치우는 일을 하는 것 뿐이야.”


“어디로…? 다시 만날 수 있어요?”


“…….”


나는 이제 어떤 대답도 해 줄 수가 없다.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널 가만히 떼어내고 어깨를 한 번 움켜쥐고 현관 문 앞에 섰다.


“그럼… 이름과 나이는 진짜에요? 서른 다섯 살, 서동민 씨.”


나는 대답 대신 숨을 들이 마신 후 문을 나섰다. 들이 마신 숨에 땀 냄새와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훅 들어왔다. 이제 네 세계에선 이런 피 냄새를 맡을 일이 없기를 바랐다. 네 얼굴에서 시퍼렇고 붉은 꽃들이 지고 나면 하얗고 말간 얼굴 사이로 더 이상 담배 연기를 빨아내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다.


나는 그저 네게 있어 역하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치워 준 청소업자로 남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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