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하이커 Sep 16. 2023

베니스의 음식 상인

이탈리아 - 베니스

우리는 연말에서 연초로 이어지는 기나긴 휴가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짧게라도 여행을 해야 긴 휴가동안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하진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휴가의 반이 지난 연말의 어느 날 머리를 맞대고 여행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항공권 가격을 기준으로 목적지를 고르다보니 베니스가 일순위에 올랐고 큰 고찰없이 덮석 예약을 해 버렸다. 베니스는 항공권을 제외한 모든 게 말도 못 할 정도로 비싼 도시였다. 당장 이틀 후 떠날 여행지를 검색하느라 여행지의 물가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일단 베니스에서 가장 큰 문제는 숙소였다. 호텔 숙박비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알아본 숙소들도 여느 도시의 3성급 호텔 숙박비를 훨씬 웃돌았다. 그래도 그중 가장 저렴한 숙소들 중 평판이 좋은 곳을 골라서 예약했다. 예약을 완료하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갑자기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고 서둘러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완벽한 동반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모든 여행 계획에서 주도권을 놓겠다고 선언한 후 콤팩트한 짐을 꾸리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새해가 갓 시작된 추운 겨울이었기에 짐이 많아질까 걱정을 다. 내가 직접 계획한 여행이 아니라서 여행의 기억이 뒤죽박죽이다. 이번 여행 기록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소별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20년 전 찍지 못한 풍경을 AI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대략 이런 풍경이었다. (제작: Bing Creator)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한 달 전인 1999년에 처음으로 베니스를 여행했었다. Y2K 문제가 인류의 존망을 결정하기 전에 누구나 한다는 유럽 배낭여행을 나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에 무리한 여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탈리아 베니스로 향하던 열차 안에서 심한 몸살을 앓으며 곤돌라를 모는 뱃사공의 옆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보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너무나도 현실적이지 않았던 그 풍경을 나는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풍경은 실제로 존재했었을까. 아니면 몸살 기운과 감기약에 취해 몽롱해진 정신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을까. 카메라를 꺼내 들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던 몸상태 덕분에 그 풍경은 어떤 품질의 사진보다도 더 선명하게 내 기억에 각인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 꼭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베니스는 여러모로 다른 색깔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레스토랑들의 간판들이 한껏 현란해져 있었고 대도시라면 어디라도 하나쯤은 있는 거대한 관람차가 그 현란함에 번잡함을 더하고 있었다. 의미 없는 불빛과 조형물들이 많이 생겨나 있었고 그런 것들 앞에는 수많은 단체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 서 있었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베니스에 들어갔기 때문에 내륙의 마르코폴로 국제공항에서부터 베니스 섬까지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섬의 중앙역에서부터 숙소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찌감치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Vaporetto) 이용권을 구입해서 숙소의 호스트가 알려준 경로를 따라 좁은 골목 어딘가에 있는 숙소를 찾아냈다. 물론 구글맵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숙소는 오래된 빌라였고 천장이 무척 높았다. 전반적으로 옛스런 느낌을 주는 괜찮은 느낌의 숙소였는데 바닥재가 나무라서 밟을 때마다 심하게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집에는 서너 개의 방이 있었는데 방마다 다른 숙박객들이 있었기에 밤늦게 들어갈 때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우리는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청결함 이외에 숙소에 바라는 바는 없었고 우리가 선택한 숙소는 그 점에 있어서는 완벽했다.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바로 베니스의 골목을 나섰다. 우리 숙소는 대운하(Grand Canal)를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첫날이라 동쪽에 있는 산 마르코 광장까지만 걸어갔다 올 생각이었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운하의 도시 베니스의 골목들은 여행자들의 발을 묶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골목의 매력에 빠져 길을 걷다 보면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에서 어긋나기 일쑤였고 제 길을 찾아 걷다 보면 어디선가 또 다른 매력을 가진 골목들이 우리를 유혹했다. 이렇게 우리는 방황과 방황을 거듭하다 베니스의 반 이상을 걸어버렸고 해가 질 무렵엔 이미 녹초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첫날 저녁부터 간과했던 베니스의 미친 외식 물가에 좌절해야 했다. 베니스는 어딜 가도 관광객 프리미엄이 듬뿍 붙은 가게들 뿐이었고 조금이라도 관광객이 밀집한 곳은 퀄리티와 서비스마저 형편이 없었다. 첫날 저녁 식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이었을 것이다. 산마르코 광장까지 걸어갔다가 리알토 다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 고르고 고르다 들어간 레스토랑은 짧은 여행인생에서 경험한 최악의 레스토랑 중에서도 높은 순위에 들만한 곳이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는 전채요리, 1차 메인 요리, 2차 메인 요리, 후식의 과정을 거쳐 식사를 한다. 관광객들의 핫스팟이 아닌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절차는 그냥 말 그대로 전통일 뿐이고 메인 요리 하나를 생략하거나 전채요리를 생략하는 등 원하는 대로 주문을 받아준다. 그런데 베니스의 레스토랑들은, 그중에서도 악랄한 레스토랑들은 이런 식사 과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 듯 엄격하게 두 개의 메인 요리를 주문할 것을 요구했고 이 과정을 생략하는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메뉴판에 적어 놓은 가게들도 있었다. 우리가 찾은 곳도 그런 곳 중에 하나였는데 메인 요리 하나의 가격이 가뿐히 30유로를 웃돌았다. 제일 싼 음식들을 모아서 식사를 마친다고 해도 1인당 100유로(약 14만원)씩은 들여야 할 판이었다. 당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 했겠지만 우리는 이미 녹초 상태였고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을뿐더러 이미 몇 군데의 레스토랑에서 자리를 받지 못하고 물러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가능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저녁을 해결하겠다 생각하고 제일 값싼 요리들로 주문했는데 주문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참다못해 웨이터를 불러 불만을 얘기했더니 음식이라고 나오는 게 소스에 이미 비벼진 스파게티였다. 이건 누가 봐도 누군가 먹다 남긴 듯한 음식의 비주얼이다. 이미 분노가 머리를 열고 폭발하려는 순간이었기에 웨이터를 불러 크게 항의를 했는데 자기들은 음식을 원래 그렇게 만든다며 다른 테이블에서는 아무 불만이 없는데 왜 그러냐며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 하였다. 이대로 말싸움을 계속한다면 결국 내가 불리할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미국인 부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항의에 동참했다. 결국 우리 연합팀은 그 레스토랑의 지배인을 불러 제대로 항의를 할 수 있었고 지배인은 사과와 함께 식사비를 반만 받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럴 필요 없이 1차 메인 요리까지만 먹었으니 2차 메인 요리는 먹지 않겠다고 하고 먹은 것까지만 계산 후 레스토랑을 나왔다. 나가면서 테이블에 10센트의 팁을 남기고 나오는 것으로 마지막까지 불만을 표시했다.


우리는 숙소로 향하면서 레스토랑의 만행에 끊임없이 분노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베니스에서 외식을 한다면 계속해서 이런 꼴을 당하게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끼니마다 100유로 가까운 돈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는 남은 일정 동안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조달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주방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에 식재료를 사서 파스타건 피자건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나는 오랜 자취 경험으로 파스타 요리 정도는 몇 가지 변주로 뚝딱 만들 수 있었다. 아무렴 내 솜씨가 저 파렴치한 레스토랑만 못할까 싶었다.

이전 05화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시간 여행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