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하지 못하는 편집자 9
올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총 3권의 개정판을 담당해서 작업했다. 개정판이라 판권에 이름이 들어가지도 못했고, 목차를 만들거나 본문 구성을 새로 만들지도 못했다. 그래도 처음 만든 개정판은 단독으로 진행했던 첫 작업이라 출간 직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진열된 것을 봤을 때 뿌듯함과 ‘나 드디어 해봤구나’라는 후련함을 느껴볼 수 있었다.
회사마다 편집자가 하는 업무가 다르고, 장르에 따라 개정판을 만드는 법도 다를 텐데, 내가 처음으로 작업했던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저자가 기존 책에서 삭제, 수정, 추가하고 싶은 부분을 수정해서 편집자에게 보내준다.
2. 제목, 부제목, 카피를 다시 쓰고 대지 문구도 다시 만든다.
3. 편집자는 수정된 확인하고 교정자에게 해당 부분만 교정해 달라고 요청한다.
4. 함께 작업하고 싶은 외부 디자이너를 찾고 샘플 원고와 방향성을 전달 후 표지와 본문디자인을 의뢰한다.
5. 외부 디자이너에게 본문디자인 시안을 받아서 내부 디자이너가 본문 작업을 마무리한다.
6. 표지(표1)가 확정되면 대지 작업물과 목차, 도비라 등 부속물 디자인도 확정한다.
저자, 교정자, 표지 디자이너, 본문 디자이너, 본부장님과 동시에 소통하고 조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내가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모두를 잘 이끌어갔어야 했는데 다들 베테랑이고 나만 초보다 보니 이 의견이 맞는 것 같으면 여기로 끌려가고 그런 일이 반복되고, 그래서 작업속도도 느려지고 여러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 때 영화감독과 같은 역할을 편집자가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실수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내 주관을 가지는 것과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책을 만드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자꾸 해봐야 느는 기술인 것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개정판 작업에서는 약간 더 자신감이 붙었다. 두 권 다 한 저자님의 책이라서 소통도 더 잘 되었고, 표지와 본문디자인도 내부 디자이너 한 사람과 작업해서 마음이 편한 것도 한몫했다. 둘 다 표지 디자인도 한 번에 잘 나왔고 그래서 상세이미지도 거기에 어울리게 알록달록 만족스럽게 나왔다. 제작 과정에서 제목에 박을 넣으려다 실수로 에폭시를 넣게 되긴 했지만 표지가 귀여운 이미지였기에 에폭시도 잘 어울렸다.
저자님도 함께 의욕이 넘치셔서 메일로, 카톡으로 끊임없이 소통하며 본문에서 수정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은 빠르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저자님도 독자들에게 받은 피드백을 전달해 주셔서 책의 형태에서도 실험적인 작업도 해보게 되었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책이 나와서 받아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이 저자님의 첫 개정판이 나왔을 땐 추석 직전이라 그런지 퀵이 잡히지 않아서 내가 직접 신간 10권과 주문 제작한 케이크를 들고 저자님 댁으로 찾아갔었다. 퇴근 후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간 것이고 또 저자님을 실제로 만난 게 처음이어서 문 앞에서 전달만 해드리고 바로 돌아가려 했다. 저자님도 퀵 기사님이 아니고 편집자가 직접 찾아온 것이라 꽤 놀란 것 같았는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면서 음료도 주시고 간식도 가방에 넣어주셨다.
두 번째 개정판도 함께 잘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책을 다 만들고 제작을 넘기고 나서 사무실에 책이 들어오기 전에 일을 그만뒀다. 그래서 퇴사 후 디자이너와 M을 밖에서 따로 만났을 때 책을 처음 받아보게 되었다. 큰 사고 없이 잘 나와서 다행이었다.
올해 8월 중순 신입 편집자가 들어왔고 나는 10월 31일까지만 사무실로 출근했다. 내가 계약한 저자도 몇 명 없고 내가 맡고 있던 일도 많지 않아서 일을 그만두고 나올 땐 인수인계할 게 많지도 않았다. 그래도 전화로 자주 오는 문의 사항과 답변, 1교~3교 때 편집자가 할 일, 전자책 제작하는 것, 제작하는 것 등의 내용을 각각 정리해서 넘겼다. 제대로 된 단독 편집 한 번 못 해봤고, 그래서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하나라도 알려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좋았다. 정말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