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MO에서 FOMO로
FOMO(Fear of Missing Out). 발음만큼 폭신하고 귀엽진 않은 조어다. 2004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를 통해 패트릭 맥기니스가 처음 발표한 이 표현은 우리 시대의 그림자를 적확히 꼬집는다. 혹여 남들만큼 내가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항시 조바심을 내는 동시대인들의 심리상태를 포착하며, 오늘날 세대를 불문하고 널리 공감대를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
발표된 지 어느덧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어쩐지 이 단어만큼은 ‘뒤쳐진다’는 느낌이 없다. 그리고 여전히 낡지 않은 이 표현이 우리 사회를 설명한다는데 있어 유효하다는 것이 애석하게 느껴진다. 한두 해의 사회동향을 설명하는 한시적인 수식어가 아니라, 타인과의 경쟁이 디폴트이자 비교우위를 점하는 것이 생존의 미덕인 자본주의에서 FOMO는 하나의 ‘만성질환’ 임을 실감한다.
감기처럼 철마다 이 병을 달고 살면서도 유독 항체를 생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창작이 업인 창의노동자들일 것이다. 어제의 자신을 갱신하고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하는 창의노동자들에게 FOMO는 애증 하는 가족쯤 될까. 맨날 다투고도 또 어김없이 한 식탁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인생의 동반자들처럼 창의노동자들은 FOMO와 공생한다.
하지만 FOMO를 가족에 비유한 것은 조금 무리일지도. 좀처럼 익숙해지진 않는다. 뒤처질 것에 대한 불안을 느끼며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고, 더 잘하고 있는 타인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자신을 이따금 마주할 때면, 낯설고 실망스럽다. ‘이런 감정에 바보같이 또 휘말리지 않기로 했는데…’ 하는 다짐이 무색해지도록 같은 수렁에 반복해 빠진 자신을 볼 때, 우리는 이중고를 겪는다. FOMO를 느끼며 한번, FOMO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무너짐에 또 한 번.
이런 고통과 번뇌의 굴레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던 시도는 역사적으로 많았다. 분란한 마음을 비움과 순응의 미학으로 다스리는 명상이 대표적인데, 거기에는 흥미로운 난관이 우리를 기다린다. 성공적인 명상을 위해 마음의 근육을 기르기까지의 여정은 우리가 벗어나려는 고통의 굴레만큼이나 고통스럽다는 것. (그래서 명상은 좋은 해법이 아니란 뜻은 결코 아니다. 몇 년째 명상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명상은 그 자체로 훌륭하나, 명상만큼 내가 훌륭하지 못할 따름...)
전통적인 명상의 접근법에 근접하지만, 이를 조금 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로 호환한 시도도 있었다. 모순적인 제목부터 끌렸던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책이 정의하는 ‘아무것도’는 요컨대, 스마트폰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스마트폰 세상의 도파민에 절여져 더 이상 그 바깥의 일상과 나를 감각할 수 없게 된 상태로부터 헤어 나올 방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제안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온라인 문화의 수동적인 조류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건져 내고 새로운 시각에서 능동적으로 나와 주변을 관찰하고 감각하는 행동 양식이다. 저자는 이따금 이런 행동을 취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부과한 생산성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역설한다.
단단하고 매력적인 문체와 더불어, 예술가로서 저자가 직접 이런 삶의 신념을 작업으로 승화해 온 진정성 있는 서사는 책을 윤택하고 내실 있게 만든다. 다만, 책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읽는 내내 한 가지 우려되는 지점은 있었다. 실제로 FOMO와 유사한 동시대적 불안증의 골이 깊거나, 현재 목표한 바를 빠르게 성취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한 이들에게도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으란 말이 와닿을까. 아등바등 뭐라도 하나 더 해야만 할 것 같은 이들에게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란 말은 뜬금없는 농담에 지나지 않을지.
그렇다면 일상을 ‘일시정지’하는, 혹자에게 현실성 없는 허황된 방법보다 더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무작정 더 효과 빠른 지름길을 찾자는 의미는 아니다. FOMO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삶을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미 FOMO와 강하게 유착된 수많은 이들에게 하루아침에 이를 삶에서 도려내라는 식의 성급한 접근은 많은 출혈만 야기할지 모른다.
불안에 관한 숱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접근 가운데서 유의미한 대안을 찾아볼 수 없을까. 켈리 맥고니걸은 <스트레스를 친구로 만드는 법(2013)>이란 테드 강연을 통해 불안을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불안의 에너지를 삶의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저자는 프레젠테이션과 같이 긴장된 상황에 놓인 이들의 심박수가 증가할 때 이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인 피험자는 심혈관의 수축으로 혈류가 돌지 않은 한편, 이를 즐기려고 노력한 피험자는 오히려 혈류가 더 활발히 돌았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결과적으로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온 뻔한 말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덧붙여, 아프니까 청춘이고, 역경이 너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란 안일한 위로와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마땅히 반박의 여지는 없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 본질적으로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는 논의를 펼쳤다고 지적한 것이 무색하게, 이 또한 하나의 실체 없는 사고 실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에 관한 이 낙관적인 발상을 더 건강하고 독창적인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믿어 보기로 결심했다면, 누가 이를 순진하다고 깎아내릴 수 있을까. 불안이 삶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된 가운데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F(ear)를 잘라낼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면, 이것이 나를 좀먹게 만들기 전에 이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F(ind)하는 것이 진짜 미덕인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스스로 FOMO(Fear of Missing Out)를 FOMO(Find out My Opportunity)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의 필요성을 말해 본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회문화적 수준이 상향 평준화 되며, 분야를 불문하고 특히 창의적인 노동을 지속하는 이들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포지셔닝에 점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이제는 글로벌 마켓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플레이어와도 무한 경쟁이 열린 시대의 창의노동자들 가운데 스스로는 FOMO와 무관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앞의 FOMO를 문자 그대로 FOMO로 소리 내 읽되, 속으로는 딴마음을 굳게 품어 보는 수밖에. 불안에 내재된 부정의 에너지를 긍정의 에너지로 돌리고, 이를 새로운 기회로 피벗 하는 수밖에.
제목을 보고 기대했던 그럴싸한 방법은커녕, 현실성 없는 희망고문뿐인 글이라는 비난은 달게 받겠다. 하지만 결국 모든 시작은 같은 것도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 출발하기 마련이고, 그게 우리 창의노동자들이 제일 잘하고, 잘해야 하는 일이지 않나. 참신한 아이디어로 위기를 기회로 뒤집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뻔한 말이지만, 불안감이 앞을 가릴 때면 종종 놓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면으로 불안을 마주하고, 막막한 위기의 빈틈을 차근차근 노리며 거기서 새로운 나만의 돌파구를 찾아가 보자. 서두르지 않고, 내 바닥에 남아있던 힘과 용기마저 끌어올려 해나가다보면, 분명 어느새 도태된다는 불안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어 보자. 속는 셈 치고 믿는 편이 나한테 힘을 줄 수 있다면야, 밑지는 장사는 아닐 테니.
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방금 여러분은 내가 나에게 건넨 말을 엿들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