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그리운 이름이여

by 이옥임

녀석이 우리 곁을 훌쩍 떠난 지 그새 두 해가 바뀌고, 다시 꽃 피는 봄이 찾아왔다. 그러나 아무런 예고도 없이 녀석이 그렇게 떠나버린 그 해의 봄은 어떻게 찾아왔고, 그리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에도 없다.


산야에 널브러져 피어 있는 진달래며, 샛노란 개나리, 탐스러운 하얀 목련은 마흔이 다 되도록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했고 마냥 가슴 떨리게 했었는데 이젠 더 이상 가슴 벅찬 설렘 같은 건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대신 살아서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녀석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남아 문득문득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아픔과 나도 모르게 가끔 흐느끼는 습관이 생겼을 뿐이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머언 길을 그렇게 서둘러 떠나버렸는지 무심한 녀석의 부음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느낌이었으니까.


새벽 2시였다. 한참 깊은 잠에 빠져 단 꿈에 젖어 있던 그 시각, 깊은 밤의 정적을 깨고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전화벨 소리에 그이가 거실에 나가 전화를 받았다.


"어!?"


매우 짧고 심히 놀란 어조로 작게 대답하는 소리에 나는 그만 가슴이 조여들기 시작했고,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음을 피부로 느껴야 했다.


"그래. 교통사고.... 경찰서 병희가…"


병희라면 내 동생이었고 그렇다면 설마 큰일이랴 싶었지만 어쨌거나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을 수만은 없어서 거실로 나와 그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불안한 심정으로 머릴 파묻고 있었다.


처음에는 놀라는가 싶던 그이가 매우 침착한 어조로 꽤 오랫동안,

"응…응…그래…알았어."


하고 대답만 하더니 이내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내 어깨를 아무 말 없이 감싸 안고 일어나선 난데없이 와락 껴안더니 한동안 침묵이다. 그 짧은 침묵의 시간은 이상하리만큼 무서웠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

"왜? 죽었대?"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듯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그이가 나는 그저 장난이려니 여겼다. 그러나 말없이 꼬옥 껴안고만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한 겨울 언 땅을 어둠 속에 무작정 내달릴 수 없어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고 숨 막히게 기다리는 동안

"언니, 다시 확인해보니까 병희가 아니었어. 걱정하지 마."라는 연락이 오기를 정말로 두 손 모아 바랬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화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나 먼 길을 서둘렀다. 한 번씩 내려갈 때마다 그리도 멀기만 하던 고향 길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짧기만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동생과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고 포천에서 전주까지 가는 동안 내내 울면서 내려간 탓이었으리라. 아파트를 샀다며 집들이를 해서 처음으로 그 녀석의 집에서 밤새워 놀다 온 지가 불과 일주일 밖에 안되었는데 결국 그게 마지막이 된 셈이다.


부모님을 먼저 찾아뵙지 못하고 곧바로 전북대 병원 영안실로 가는데 마침 시누이의 부추김을 받으며 차에서 내려오는 올케의 모습을 보고 다가가 아무 말 없이 끌어안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얼굴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에서 이미 제 남편의 소식을 듣고 졸도해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왔다는 올케는 영안실에서도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소동이 벌어졌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매우 안타깝게 했다.


영안실에 들어서자마자 거동이 불편하셔서 꼼짝도 못 하시고 집에서 기막힌 심정으로 오열을 토하고 계실 아버지께 감정을 추스르고 먼저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저 왔어요."

"왔냐? 옥임아, 글쎄 병희가 죽었다는구나!"


아들 먼저 보내는 통곡을 행여 누가 들을세라 마음 놓고 큰 소리도 못 내고 소릴 죽여 울고 계셨을 아버지는 내 전화 소리에 그만 꺽꺽대셨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아버지의 울음소리는 삶의 희망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그렇듯 믿고 의지했던 당신의 분신 장남이었으니 오죽하셨으랴. 딸 셋에 이어 낳은 귀한 아들이었고 늘 당신의 자랑거리셨는데 뜻밖의 교통사고로 밤새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자식을 찾아 남은 생을 헤매실 분들이었다.


그 녀석이 비명횡사한 날이 바로 제대하기 이틀 전에 이상하게 형이 무척 보고 싶었다는 막내가 제대해서 돌아온 날이었다. 결국 살아서 만나지 못하고 싸늘하게 식어있는 제 형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간 것이 제대 후 첫 대면이었다. 제 형임을 확인한 순간 주먹으로 벽을 쳐서 막내의 손가락이 모두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상주 노릇을 하면서 몹시 낙심해 하던 막내의 모습은 우리를 더 아프게 했다.


목을 매고 운다고 가버린 녀석이 변심해서 되돌아올 일도 아니건만 다들 그렇게 목을 매고 울었다. 다른 팀의 손님으로 오신 분들이 우리의 우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슬피 우는지 마음이 아팠다고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정작 녀석은 가버리고 아무 소식이 없는데…


이후 아들 잃은 슬픔을 이겨 내지 못하고 유난히 아파해 하시던 어머니는 기억력이 눈에 띄게 감퇴하셨고 삶의 의욕마저 잃고 꿈속을 헤매셨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오래 못 사시겠다."라며 주변에서 염려하실 만큼 이상하게 하루 종일 깊은 잠만 주무셨다. 근 2년을. 그러나 지금은 다행히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계시니 그저 감사할 일이다.


녀석은 갔으되 녀석의 분신들이 남아 있음에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유난히 제 아빠를 좋아했던 올해 7살 난 큰아들과 5살인 둘째 아들이다.

제 자식 귀하지 않은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마는 유난히도 끔찍이 여겼던 제 자식들을 두고 눈 감기가 힘들었던지, 일 치르고 올라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둘째 녀석을 안고 온몸에 피투성이가 되어 꿈속에 나타났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녀석의 모습을 통 볼 수가 없다. 꿈속에서라도 볼 수 있기를 그리도 희망했지만 어머니께서 그리도 믿고 의지해오던 하나님 앞에 간 일이니 더 이상은 그리워하지 말아야 할까 보다.

다만 올케와 조카들에게 제 아비의 몫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울러 자식 앞세워 보낸 죄인이라며 마음 아파해 하시는 부모님께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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