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하루 in 호텔 카푸치노
빛이 사라졌다.
매일 방긋 웃던 해가 사라지고, 하늘에서 눈물이 사정없이 흘러내린다.
54년 만의 가장 긴 장마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위에서 무슨 싸움이 났던 걸까.
이렇게 울컥한 하늘은 답답해도 좀 기다려줘야 한다.
부딪히거나 애써 관철시키려고 해 봐야 이미 감정의 끝에 다다른 상대는 일단 듣지를 않는다는 걸 우리는 일상 속에서의 수많은 경험들로 체득해오지 않았는가. 잠시 풍파를 피하면서 조용히 기다려주면, 싱그러운 미소가 돌아온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기다릴 필요는 없다. 매일 출퇴근마다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볼 필요도 없다.
연차는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금요일 연차, 이제 사흘 동안은 나만의 동굴 속에서 평온하게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리면 된다.
나만의 혼캉스 성지, 오늘은 언주역의 카푸치노 호텔이다.
복잡한 기물들이 많지 않은 방, 최대한 단순하게 꾸며진 실내 인테리어.
둘이 지내기에는 약간 좁은 듯하고, 혼자 지내기에는 쾌적하게 넓은 애매함이 마음에 쏙 드는 곳이다.
노곤한 몸을 던지기 최적의 침대 위에서 유튜브와 틱톡을 순회하다, 책도 모처럼 펼쳐보고, 배고프면 자연스럽게 치킨집 전화번호로 손이 가는 곳.
밖이 어둡고 우울할 때, 카푸치노 한 잔처럼 따스한 온기를 되찾기 좋은 곳이자, 날씨가 좋을 때에는 최고층의 바 '핫이슈'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도 가능한 만능키와도 같은 곳.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을 위한 바크룸이 따로 있기 때문에 두고 올 수 없는 친구와도 함께 지낼 수 있는 센스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계속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던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분명 차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내게 푸념하고 있었는데, 매미들이 합창을 재개하기 전 특유의 정적만 흐른다.
'이제 끝난 걸까?'
냉전의 종식을 기대하며 굳건히 쳐져 있던 커튼을 걷어본다. 아직 토라진 듯 군데군데 회색빛 물감이 하늘을 덮고 있지만 웃음을 조금이나마 되찾은 듯하다.
몇번을 머물러도 몰랐던 예쁜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희미한 미소를 띠는 하늘은 아직 어색하지만 슬슬 예뻐지려고 한다. 토라진 것이 덜 풀렸는지 조금이라도 다시 건드리면 더 슬프게 울지도 모르지만, 조금 더 즐겁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충분히 울었다. 이제는 아침에 나를 늘 맞이하던 익숙한 미소가 보고 싶다.
울음을 그치고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으면.
이 생각을 하던 사이에 다시 빗살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밀당에 능한 친구 같으니, 그래도 이제는 곧 위에서의 기나긴 싸움을 끝내고 밝게 웃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