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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Aug 17. 2020

친구랑 피맥 한 잔

블랙베리 in 더테이블 마포탭룸, 웃음 되찾기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웃음이 줄어들고 있다. 

웃긴 농담을 들어도 미소만 번질 뿐, 박장대소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매너리즘에 빠졌던 회사 생활? 담당 업무가 바뀌었더니 반강제로 활기차다. 

웃음을 안겨주는 그녀는 여전히 옆에서 잘 지내고 있고, 크게 나쁜 일도 주변에 없다. 

날씨? 여전히 엉망이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이제 슬슬 지나가기를 기대할 수도 있게 되었다. 

특별히 우울할 일도 없는데, 왜 웃음이 사라졌을까?


아, 친구들을 본 지 꽤 되었구나.

만날 때마다 영양가는 일도 없는 잡담만 하고, 서로 디스하기 정신없는데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아저씨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20대 초반 이야기를 하는 바보들. 

얼마 되지도 않는 저녁값 안 내려고 아등바등하면서도, 술 한 잔 들어가면 축의금은 꼭 일곱 자리 이상 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허세꾼들. 

텐션을 끝까지 끌어올렸다가, 깊숙한 바닥까지 보여줘도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내 친구들.


요즘, 친구들 만나기 참 힘들다. 

평일 저녁? 다음 날 출근길이 무섭다. 주말? 평일에 시달린 대가가 주체할 수 없는 피로로 돌아와 일단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다. 간신히 일으켜도 집안일, 넷플릭스, 컴퓨터 게임 한 판, 피할 수 없는 자기 관리 등의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문을 나선다. 언제부터 이렇게 핑계가 많아지고, 두려움에 나 자신을 갉아먹어 용기를 상실하였는가. 이렇게 친구들은 하나둘씩 메신저에서, 번호 리스트에서 그리고 눈앞에서 사라져 간다. 우리는 웃음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들을 잃어가고 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필요하다.

취향에 따라 보리의 구수함이 가득한 에일, 탄산의 톡 쏘는 상큼함을 강조한 라거, 그리고 그 속의 수많은 선택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늘은 내가 쏜다'는 멘트까지. 자기 방에서 은둔 생활을 즐기던 까다로운 친구 녀석을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이제 실컷 웃을 일만 남았다! 


서울의 한복판 즈음되는 공덕역에서 조금 걸으면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마포경찰서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테라스가 널찍하게 깔려 있는 오늘의 접선 장소, '더테이블 마포탭룸'이 자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할 거 같은 이 곳에서는 이른 저녁부터 가족, 연인 그리고 직장인들이 한데 모여 동네 사랑방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적당히 조용하고, 테이블 간 간격도 널찍하고 수제 맥주를 직접 내려주는 동네 주민들의 숨겨진 성지다.



조금 늦는다고 하니, 테이블 하나를 독차지하고 있는 민망함을 떨쳐내려면 식전주 한 잔이 제격이다. 

오늘의 픽은 유자향이 물씬 풍기는 S.H 유자 에일. 상큼한 유자향 속에 숨겨진 쌉싸름한 에일 맥주의 맛, 단짠단짠이 아닌 상쓰상쓰의 매력이 돋보이는 친구다. 웃음도 울음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친구처럼.

안주로는 짭짜름한 페퍼로니 피자 (사실 가장 이 가게에서 제일 좋아해서 골랐다) 한판이면, 멀리서 오는 친구가 서운해하지 않겠지.

오늘 있었던 시시콜콜한 얘기, 모처럼 맥주잔 부딪히면서 들어야 될 얘기 실컷 들을 준비 끝. 잃어버렸던 웃음이 아쉽지 않을 만큼 기분 좋게, 얼굴 살짝 붉어진 채로 집에 가야겠다. 그리고 오늘의 흔적도 내 블랙베리 속에 소중하게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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