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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Jul 13. 2018

<햄스테드>

세상이 나와 다를 때 기꺼이 움직이라고 용기를 주는 영화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며
사는 건 불행한 거야.
출처: 영화 <햄스테드>

어렸을 적에 우리 집 모든 물건들에 나이를 붙여주곤 했다. 세탁기는 동생이 태어났을 때쯤 이 집에 들어왔으니까 나에겐 동생 같았고, 우리 집 TV는 친구와 같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 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을 버려야 할 때쯤엔 괜스레 맘이 허전했다. 또한 우리 아버지는 집에 있는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하셨다. 작은 공책 하나에도 추억이 서려있기 때문이었다. 버리지 못해 곁에 두고 있는 모든 것들 때문에 나의 공간이 비좁아지더라도,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그런대로 정겨움은 넘친다. 연륜, 낡고 빛바랜 흔적들, 그리고 추억은 모두 같은 선상에 있는 숭고함이 아닐까.


하지만 현대인들의 삶에는 점점 느림과 불편의 미학은 사라지고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를 강조하며 희생에는 마땅한 대가를 기대하고, 호화로운 일상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에밀리와 도널드는 이들과 대립하는 입장을 취하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깨닫게 된다. <햄스테드>는 고급 주택지 개발을 위해 도널드의 오두막에 내려진 강제 퇴거 명령에 저항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우리 삶의 목적과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하는 가슴 따뜻한 영화다. <노팅힐>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햄스테드'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 또한 그 자체로 힐링일 것이다.


강을 거슬러가는 연어도 힘들겠구나.
출처: 영화 <햄스테드>


그녀, 그의 공간에 들어서다.


세상을 떠난 남편 때문에 모든 빚을 떠안고 살아가게 된 에밀리는 우연히 다락방에서 발견한 망원경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한 남자의 신기한 광경을 본 에밀리는 이후 도널드와의 우연적인 만남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사실 이전에 에밀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명운동을 하러 다니며 자기들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반면, 연어 양식 반대 운동과 같이 자기 삶과 크게 연관이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테이크 아웃 커피마저도 받침 위에 놓을지 말지를 신경 쓰고, 내 아이를 남들이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세상 무너질 듯이 고함을 지르기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피오나는 낡은 병원 부지가 얼마나 주변 경관을 흐리는지에 대해 강조하며 집값이 떨어졌다고 툴툴거린다. 사실 그녀의 남편이 이 재개발의 실행 여부에 크게 좌우되리란 사실을 숨긴 채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호의를 베풀면서도 뒤로는 수 없이 그에 상응하는 조건들을 내민다. 나의 것을 포기하는 희생이라곤 쉽게 하지 않는다. 피오나 때문에 엉겁결에 만나게 된 한 회계사는 에밀리의 재산 문제를 아무 조건 없이 해결해주겠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손에 자신의 손을 슬며시 올린다. 말로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면서 실은 그녀의 일을 처리해주겠다는 담보를 잡고 그녀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 피오나 역시 에밀리의 밀린 요금을 대신 내주면서 서명에 참여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도널드와 그의 오두막은 그녀에게 조건 없는 행복이란 과연 무엇 일지에 대해 깨닫게 한다. 도널드는 사람들이 버린 자재들과 물건들로 이 집을 지었다고 했다. 아직 쓸만한 데도 버린 물건들이 많았다면서. 그렇다. 에밀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그 회계사처럼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자면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화려하고 새로운 것들에 목말라하며 쉽게 낡은 것들을 버리곤 한다. 그런 점에서 도널드의 오두막은 사람들의 허영으로 인한 잔해들로 만들어진 상징체이자 길 건너 그들의 삶과는 대비되는 존재일 것이다.


그리하여 에밀리는 한순간 깨닫는다.

그녀는 이제껏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겉으론 좋은 척하면서 살았던 삶, 자신의 의지와 그들의 의지 사이에서 갈등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삶을 살아왔단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흘러가는 삶 속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며 진정한 삶의 방향성을 찾는다.

출처: 영화 <햄스테드>

그, 그녀의 공간에 들어서다.


에밀리는 더 이상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오두막을 지키자는 문구가 쓰인 전단지를 동네 방방곡곡에 붙이고 다닌다. 그녀가 열심히 행동하고 움직이기로 결심한 이 모든 순간들은 보는 내내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준다.


반면, 에밀리에게 이렇게 삶의 이치를 깨우쳐준 도널드는 사실 사랑하는 연인이 가장 힘들 때 그녀의 곁을 떠났던 기억 때문에 죄책감을 안고 오두막에 숨어 산다. 그리고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낚시를 하며 식사를 하는 등 철저히 자급자족적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철거명령으로 17년 동안 머물렀던 자신의 집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하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실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것일 테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은 채 홀로 살아온 세월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어린애처럼 고집만 부리고 앉아 있는 도널드. 그런 그가 에밀리의 도움을 통해 일어서서 적극적으로 세상에 대항해 싸우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누구보다도 확실한 삶의 가치가 있다면 당당하게 지켜나갈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도널드는 드디어 숲을 나와 거리로 발을 내딛는다. 변호사를 만나 도움을 청하고,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법정 공방을 펼치기도 한다. 세금을 내지도 않고 무단으로 땅을 점유하고 있다며 그의 무책임을 나무라는 상대 변호사에게 시원한 사이다 발언까지 날리면서 말이다.


법정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도널드가 오두막에서 17년 동안 살아왔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영국법 상으로는 12년 이상 동안 점유를 한 자에 대해 그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처음 오두막을 지을 때 그를 도왔다던 한 남자를 증인으로 세우게 된다. 피고 측 변호사는 말한다. 그 새벽에 저런 홈리스를 누가 도우려 하는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증인, 더 나아가 사람의 선의에 대한 의구심을 내세운다. 간혹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상하다고 여기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그런 경계가 통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증인이 '나도 홈리스였소!'라고 말하듯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연민과 사람에 대한 공감에 이른 전혀 이해되지 않는 희생들이 분명 존재하고, 에밀리와 시민운동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처럼 작은 목소리들의 합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거는 기대들이 있다.


주객전도다. 그들이 말하는 더 나은 삶, 살기 좋은 공간. 그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우선되지 않으면 실은 아무 의미도 없다. 사람을 위한 행복을 말하면서 사람에게 조건을 먼저 들이미는 인간의 위선에 사람이 자리를 잃어나간다. 때론 불편하더라도, 때론 느리더라도 사람에게 베푸는 작은 배려가 우리의 삶을 더 기분 좋게 만든다. 전화 하나 없이 지붕 위에 크게 써 놓은 메시지로 저녁 약속을 잡고, 오지 않는 사람을 그 사람만을 생각하며 오랫동안 기다려보고, 위치추적되는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는 게 아니라 꼬깃꼬깃한 종이에 보물찾기 하듯 적어놓은 지도로 나의 길을 찾아가는 그 조금은 불편하지만 아날로그적인 그 자체에서 우리는 더 여유로운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출처: 영화 <햄스테드>

문제가 있다면 끊임없이 타협하라.


에밀리와 도널드가 계속 오두막 집에서 함께 살았다면, 그렇게 영화가 끝났더라면 그저 낭만에 불과했으리라. 하지만 에밀리는 자신이 아닌 그 집에 계속 집착하는 도널드를 떠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도널드도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고 배에 집을 지어 그녀에게 찾아온다. 그녀와 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던 도널드만의 귀여운 타개책이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여전히 그의 배에서는, 아니 그의 집에서는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 헤어졌던 그들이 다시 타협점을 찾아 만난 것처럼 그들은 또 끊임없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 싸우고 부딪히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힘으로 장애물을 제거해버린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지만 사람을 잃는다. 도널드와 에밀리가 보여준 것처럼 느리지만 지속적인 타협은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평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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