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사전에서 살펴보면 국어사전에는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 영어사전에는 ‘wilderness’라고 되어 있다. (출처:네이버 사전) 성경에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던 땅을 잃고 40년을 방황한 곳을 ‘광야’라고 한다. 이 단어의 정의와 쓰임에서 알 수 있듯이 광야는 쉽지 않은 곳이다. 광야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거친 시간과 공간’이라고 설명해도 크게 이의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광야의 시기는 찾아온다.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탄한 길을 걷을 수는 없다. 나 또한 육아휴직 복귀와 동시에 직무 변경을 했을 때 오랜 시간 동안 광야를 헤맸다. 해외 마케팅으로 입사를 했지만, 잠시 HR로 차출되어 몇 년간 영어를 쓰지 않았다. 복직과 동시에 변경된 업무는 혼자서 협업할 해외기업 발굴, 계약, 리서치 설계까지 하는 업무였다. 복직을 하면서 마음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업체 탐색을 위해 미국, 영국 업체와 콘퍼런스 콜을 시작했다. 영어 실력은 녹슬어 있었고 주로 사용되는 용어들이 익숙지 않아 “Pardon me?”를 연신 외쳤다. 식은땀이 나는 미팅이 끝나고 나면 새삼 나의 부족한 능력을 통탄하며 눈물을 참곤 했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 외국인 선생님을 고용하여 개인 과외를 시작했다. 수면아래로 가라앉은 영어 실력을 단시간에 끌어올려야 했다. 누구에게도 “영어미팅이 무서워 일을 못하겠어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시간들이 무사히 지나가길 혼자 견뎌야 했다. 오히려 혼자가 편했다. 흔들리는 나의 모습이 그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선정된 영국 업체와의 6개월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그간 미뤄온 휴가를 떠날 거라고 말했다. 영국 업체 대표는 나에게 “You deserve it”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그간의 시간들이 보상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광야의 한복판을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쌓이자, 이제 두려움에도 익숙해졌다. 이제는 무엇 일이든 나에게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내는 인력이 되었다. 진급도 문제없었다. 그때의 경험이 맷집, 담력, 실력을 키웠다. 어느 지점에서 내가 성장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성장한 내가 보였다.
최근에 젊은 세대에게 ‘광야’라는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보컬이 출중한 가수들을 부르는 팬들의 은어를 정식 세계관으로 마케팅하고 있다. 광야로 묶인 가수들은 듣는 사람마저 속이 뻥 뚫리게 고음을 뽑아낸다. 그들이 득음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아 냈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실력자 가수들이 광야에서 득음을 하듯이 실력 있는 직장인들도 광야 어디에선가 진화를 했을 것이다. 만약 지금 광야를 헤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득음 혹은 득도의 시기를 자기도 모르게 만나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 싸우는 당신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