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대리 Oct 22. 2023

내일도 출근하는 회사원에게

누구나 뭘 해도 안 될 때가 있다

삶이 한 번 크게 변했으면 좋겠다.


매일같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던 어느 날 들었던 생각이다. 변화를 바랄 때 가장 하기 쉬운 일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도 없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집에 와서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끊임없는 알고리즘에 손가락이 졌다. 이 작은 기계 하나를 자제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자책이 쌓이면 쌓일수록 삶의 변곡점에 대한 열망이 더 타오르더라.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출퇴근을 반복하는 이 인생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변화를 바랄 때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끊임없이 변주를 주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한 번 변주를 주는 건 쉽다. 미라클 모닝 열풍이 불어 새벽 5시에 일어난다거나, 자기 전 감사 일기를 쓰기 위해 아이패드 굿노트에 다이어리 양식을 다운로드하거나, 유튜브로 싱잉볼을 틀고 하루 3분 명상을 한다거나. 변주는 한 번 뿐이더라도 무료한 하루에 생기를 준다. 하지만 의외로 계속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변주도 계속 주면 일상이 되고 곧 무료해진다. 회사를 다니면서 새로운 일들에 도전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하는 이유다. 


끊임없이 변주를 주는 게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축적되는 실패 경험 때문이다.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변주는 계속 주는데 삶이 안 변해서 너무 힘들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엔 시나리오 강의를 들으러 갔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스터디를 꾸려 공모전에도 나갔다.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우연한 기회로 책 출간 계약을 맺었다. 드디어 삶이 바뀌려나 했지만 막판에 출간이 엎어졌다. 회사 동기 혹은 친구들이 유튜브 채널과 팟캐스트를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기획회의도 하고 기획안까지 써서 보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중에 할래?"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사이버대학교라는 기관에 들어갔다. 레포트뿐만 아니라 웹툰 시놉시스, 3화 분량의 웹소설을 썼다. 야금야금 에세이를 쓰는 일도 잊지 않았지만 역시 변화는 없었다. 그렇게 이직을 준비했다.


글 쓰는 것보다 이직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직이 1년 6개월이 걸릴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어찌 되었든 변화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콘텐츠 운영자에서 기획자로 직군을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변주의 또 다른 실패버전이었다. 사내 정치 때문에 직원이 몇 십 명씩 바뀌는 일이 흔했던 회사였다. 대표는 타깃을 바꿔가며 직원들을 괴롭혔고, 임원들은 이런 대표를 적극적으로 도와 팀원들을 이간질시켰다. 1년을 다녔는데 팀장만 6명이 바뀌더라. 눈앞에서 잘려나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연봉 인상률도 최악이었고 포괄임근제로 야근 수당도 받지 못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스타트업으로 간 나의 결말은 이랬다. 더 나아지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변주를 준 변화라는 대가는 이랬다.


변주를 멈추기로 했다. 실패 경험으로 인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여유를 몽땅 앗아갔기 때문이다. 글을 쓰겠다고 주말에 놀러 온 7살짜리 조카를 피해 카페로 도망쳤다. 누워서 스마트폰을 좀 하겠다고 베란다 청소를 도와달라는 엄마의 말도 거절했다. 기운 내라고 맛있는 밥을 사주는 친구에게 내 삶이 얼마나 거지 같은지에 대해서만 늘어놨다. 어차피 회사는 다 똑같고, 난 뭘 해도 안 될 놈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조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라. "안녕하세요 이모. 잘 지내셨어요?" 존댓말을 하다니.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좋겠다.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을 백수로 살던 어느 날 들었던 생각이다. 진짜 변화는 마음이 변하고 신념이 깨질 때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나오는 그 벽이 신념처럼 느껴졌다. 신념이 너무 강하면 그 벽에 내가 갇히게 될 수 있고, 신념이 깨지기를 간절히 바라면 스스로 얼마든지 깨고 나올 수 있다. <데미안>에서도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고 하지 않던가. 언제까지고 회사는 무조건 나쁜 곳이고, 나는 안될 놈이라고 생각하고 살 수는 없었다. 좋아했던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면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들고 헤어지면 잿빛으로 물든다. 세상은 그냥 있던 대로 있었는데, 내 마음 때문에 세상을 그렇게 본 것이다. 세상이 나에게 못됐던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못되게 보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뭘 해도 안될 때가 있다.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런 시즌이 있다. 아이유도 유퀴즈에서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노력한다고 누구나 다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라고 말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공정함과 공평함은 별로 없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다. 올대리 역시 아직도 그런 시즌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 시즌을 잘 살아가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 중 하나가 회사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회사를 잘 다니는 것이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꿈이 있어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먹고사니즘을 포기할 순 없다. 일단 살아야 꿈도 꿀 수 있다.


회사를 잘 다니기 위해 아침밥도 먹고 청소도 하고 조카랑도 논다. 동료와 감정싸움을 해보기도 하고, 팀장님 기분도 달래주려고 개그를 친 적도 있다. 출퇴근길이 멀고 복잡하지만 웹소설과 웹툰으로 그 마음도 달래보고, 성과도 내고 싶은 마음에 공연, 전시를 보며 아이디어 곳간을 채우기도 한다. 이력서도 업데이트하고 회사의 OKR을 잊지 않으려고 상기한다. 회사에 대한 관점과 마음가짐을 바꾸니 자연스럽게 이런 행동들이 나왔다. 그리고 "삶이 한 번 크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깨졌다. 그 마음이 깨지니 지금에 충실하게 됐다. 삶의 변곡점을 기다리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원치 않아도 굳이 오는 게 변곡점이다. 어떻게 늘 인생이 한결같이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스스로 똑같아서 지루하다고, 이 무료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이다. 




???


언젠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좋겠다."는 마음도 깨질 수 있다. 다시 한번 지독한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뭐, 어떡하겠는가. 잘 시달리다 보면 또 다른 방법과 마음을 찾아 또 살아가겠지. 일단 오늘은 일요일이고, 내일 출근을 한다. 내일이 두렵지 않은 걸 보면 일단 선방했다!

이전 16화 오! 최적의 이직 타이밍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