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위의 잠>을 자는 아버지들에게
퇴근길. 잘 그러질 않는데, 핸드폰 보다가 한정거장 먼저 내려버렸다. 그냥 한정거장은 버스타거나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올라와보니, 반짝이는 악세사리 가게가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들어가서 열심히 구경했다. 엄청 밝은 조명아래서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집어 들었다가, 요즘 시계도 못차고 나오는데, 결국 그냥 귀걸이함에 전시(?)만 되어있을 거 같아서, 이 반짝이는 곳에 그냥 두기로 했다.
그렇게 녀석들을 등지고 나오려는 찰나, 어떤 아저씨랑 입구에서 마주쳤다. 작업복같이 보이는 여러 짐을 검은 봉투에 양손 가득 들고, 면도하신지 오래되보이는 허름한 차림새에, 언제든 무너질 것 같은 어깨를 하고는 터덜터덜 악세서리 가게로 들어오시는 분이었다. 나랑 마주치고 짐짓 놀라신듯 가게입구에 봉지를 내려놓으시고는, 본격적으로(?) 악세사리 구경을 하러 들어오시는 길이었다. 왠지 모르게 눈이 따라가서 구경하시는 걸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순간 왜 자꾸 눈이 가는지 알게되었다. 분명히 예쁜 딸의 아버지시거나, 귀여운 손녀의 할아버지이실 것이다. 딸이 이 악세사리를 할 걸 생각하시는 듯한 흐뭇한 미소가 얼굴 가득 번져있었으니까. 오늘 하루의 힘든 일과 따위는 그 기쁨 앞에 눈 녹듯 사라지셨나보다. 아까까지 주저앉을 듯 하던 어깨에 날개라도 달린양, 설렘이 몸짓 하나하나에서 전해졌다. 하나에 5000원짜리, 누구에겐 비싸지도 않은 귀걸이겠지만, 그 따님이 하시면 세상 누구보다 예쁠 거 같아서- 허락해주시지도 않은 상상을 하면서, 왠지 같이 기분이 좋아져버렸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밖에 걸린 파자마를 들춰대면서 그 기쁨에 참여하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는 윤동주의 <서시>지만, 가장 많이 울렸던 시는 나희덕의 <못위의 잠>이다. 지금 보고있는 미드의 변호사들처럼 화려하고 번지르르하지 않아도, 아버지라는 자리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그 없는 것도 내놓으려는 아빠의 사랑이, 마음이 저리도록 훌륭하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오늘 만난 아저씨의 따님도, 그 사랑을 담뿍 느끼고 행복하시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