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 Oct 05. 2022

다정한 사람

Kind Husband

/kindhusband


브런치에 가입한 것은 2019년도 즈음인데 정작 작가 신청을 한 것은 최근에 와서다. 습작처럼 혼자 끄적임만 3년째인걸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남편의 적극적인 응원에 힘입어 작가 신청을 하게 되었고, 두 번째 도전만에 작가 승인을 받았다.


'집사 남편 이야기'를 매거진으로 만들 때였다.


매거진을 생성할 때 URL 주소를 먼저 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나중에 변경할 수 없다는 주의 문구를 보고, '아, 이거 너무 유명해져서 다음 메인뷰에 뜨면 어떡해...'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앞세우며 자못 진지하게 작명 작업에 들어갔다. (그 쓸데없는 걱정이 현실이 되긴 했다. 무려 두 개의 글이 다음 메인 홈&쿠킹에 뜨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으니. 여기에 자랑을 합니다.)

'집사가 영어로.. Butler? 그러니까, ButlerHusband로 할까?' 이런, 그런데 글자 수 제한에 걸렸다. 수줍게 영문 사전 사이트에서 Husband를 넣어본다. 용례를 순서대로 보는데, Kind Husband(다정한 남편)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다정한 남편? 바로, 이거다!


집사 남편을 소재로 삼아 글을 써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다른 선배 브런치 작가 분들 조언에 따라 목차부터 잡았고 대략적인 목차 순서대로 무작정 한 편 한 편 써 보기로 했다. 집사 남편과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에 따른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풀어갔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회차에서 '그는 다정하다.'로 귀결되고 있었다. 마치, 의도한 것처럼 말이다.


맞다. 그는 정말 다정한 사람이다.  


어느 해, 그와 함께 떠난 제주 여행길.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라는 한적한 동네 길을 걷는 도중, 어느 집 나지막한 담벼락 위로 봄 꽃이 가득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우와, 정말 예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담벼락 바깥쪽에 서서 꽃을 우러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안 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서 봐요~"라고 하셨던 것 같다. 너무 작게 들려서 확실치 않았지만 분명히 들었다고 전제하고 당장 안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는 열려있는 대문 쪽으로 후다닥 달려가서 꾸벅 인사부터 했다.


"들어와서 보라고~"


단층으로 된 연식이 조금 있어 보이는 양옥집 앞마당에 온갖 봄 꽃이 만발하였다. 봄이라는 계절을 화폭에 옮긴다면 이 집 화단에 보이는 종류별 꽃의 색을 그대로 따다가 써야 할 것이다. 그냥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였고, 두 어르신 내외께서 정성 들여 가꾼 화단이라며 종류별 꽃과 식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두 어르신과 화단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 곁에서 지켜본 남편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는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때면 더 많이 웃고 눈가에 새어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또 웃는 사람인데, 거기서도 그랬다. 활짝 웃었고, 눈물을 닦으며 크게 웃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지나가는 여행객을 무턱대고 들어오라고 하신 것도, 얘기 중에 슬그머니 창고로 가시더니 천혜향을 한 무더기 가져오셔서 먹어보라고 건네주시는 온정도, 여분의 천혜향을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서 여행길에 먹으라고 챙겨주시는 마음까지 한결같이 고마웠단다.


그는 늘 얘기했다. 선하고 착한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퍼주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해도 눈물이 날만큼 기쁘고 즐겁단다.


그의 다정함은 진심이다.


가족과 지인에게 베푸는 따뜻한 마음에 더해서 주변까지 따뜻하게 비추는 햇살 같은 마음.


쓰다 보니 이 글도 역시 애초 의도에서 한참을 벗어나고 있다. 원래는 와이프에게 다정한 사람으로 주제를 잡았던 것 같은데...


아무렴 어떤가. 나의 집사 남편은 이토록 다정한 사람이라고 마무리 짓게 되었으니 말이다.

올해 봄에도 이렇게 예쁘게 가꾸셨겠지요.^^


이전 09화 바로 당신이 주인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