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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May 21. 2024

부모님 사랑

그립고 그리운…

어린 시절

부모님은 큰 산이며 바다였습니다.

살면서 후회만 쌓여 이제는 제가 큰 산을 짊어지고 있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리운 부모님!

이젠 저도 아들 둘과 손자, 손녀가 3명이나 있답니다. 어디에 담아 두어도 아픈 자욱이 없을 만큼 부모님은 살면 살수록 잊지 못하는 제 가슴의 심장입니다. 가난했던 그 시절 부모님은 못 입고, 못 먹으시더라도 자식들은 꼭 챙기셨죠. 그것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조금만 섭섭하면 울고, 떼쓰고, 불평만 했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북에서 피난 오시어 그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시절 모두 이겨내시고, 힘들게 사시다 35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 집에 먹을 것이 없어 가족들의 양식을 구하신다고 수원에 사시는 먼 친척집을 걸어서 다녀오시다 길에 쓰러져 돌아가실 때까지 중풍으로 누워서 계셨죠. 음식을 많이 드리면 배설을 많이 하신다고•••. 제대로 잡수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님·••.

주안 주공 5층에 살면서 친척이 없어 돌아가신 아버님 육신을 상주인 저까지 운구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왜 이렇게 살았나? 운구할 사람조차 주변에 없다는 제 자신이 너무 슬펐습니다. 장의사분이 이렇게 문상 오는 사람이 없는 댁은 처음 본다고 장례비용도 깎아주었죠.

학창 시절부터 성묘 가는 것이 부러워 돈도 없이 부평 공동묘지에 아버님을 묻고, 산역비용이 없어 그 당시 그 동네 통장 하시던 분께 울면서 제 사정을 간곡히 부탁드려 분할로 갚았죠. 산역비용을 분할로 갚는 분은 태어나서 처음 보신다고... 고마웠던 그분도 돌아가시고... 아버님 돌아가신 후 힘든 생활로 고생만 하시던 어머님도 관절염으로 거동을 못하고 누워 계시는 실정이 되었죠.

어머님 돌아 가신지도 어연 20여 년·••.

병수발 15년 넘게 하면서 당시에는 짜증만 나고, 내 운명에 대하여 원망도 많이 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저희랑 같이 생활하며 누워만 이라도 계신 것이 저에겐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병수발하며 드시고 난 후는 배설할 힘이 없으시어, 관장약으로 강제로 배설시키고••·. 그래도 잡수고 싶은 것은 많으신지, 계속 잡수실 것을 찾던 어머님.

"저놈들이 나를 굶긴다고••.." 누가 병문안 오면 그렇게 얘기하셨죠.

어머님! 그나마 돌아가시는 순간을 저만 보는 축복을 받았답니다. 돌아가시고 얼마동안 어머님 누워 계시던 방이 무서워 가질 못했죠. 아는 선배 형이 그 말을 듣고 하룻밤 같이 자면서 무서움을 잊었답니다. 그다음 해 아내가 효부상을 받았죠. 천상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의 큰 선물이었죠. 아내는 그 당시 고생보다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하며, 그래도 아버님, 어머님께 더 못 해드려 죄송하다고 했죠.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좀 더 따뜻하게 화내지 말고, 더욱 정성껏 모셨어야 했는데 천상낙원에서 저희들 내려다보시고 웃어주세요. 그 마음 뭐라고 꾸중하셔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모님의 깊은 사랑 다시금 새기며 오늘도 그리워한답니다.

주님! 저희 부모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저도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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