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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허물다

by 부소유
시인 공광규 쓰고, 그림 작가 김슬기씨가 그린 바우솔 출판사의 시그림책.


초록 초록한 연못 혹은 저수지 앞에서 나무와 풀과 꽃 사이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이 아름다운 표지다. 뒤표지에서는 그 어린이를 뒷짐지고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이 참 푸근하다. 그림체의 선이 굵고 색은 단조로워서 안정감을 준다. 앞면지에는 아빠와 아들이 어느 낡은 한옥집 앞에 걸어와 서있다. 아래는 ‘나를 허물어 더 큰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라는 헌사가 있다. 뒷면지에는 들판과 집이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에 올라가서 평화롭게 누워있는 아빠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무에 앉아 있는 새들과 새집, 알, 땅에 있는 다람쥐, 땅속에서 나온 두더지가 귀엽게 함께 있다. 이 시그림책의 제목은 <담장을 허물다>. 표지에는 담장이 없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해하며 시그림책의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며 시를 필사했다.



이 시의 내용은 이렇다. 아빠는 아들의 손을 잡고 고향의 오래된 집으로 왔다. 그 집의 담장을 허물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내용이다. 아빠와 아들은 집 앞의 넓은 들판, 나무, 나무 위의 새, 나비, 곤충, 동물을 바라본다. 언덕 너머 과수원과 연못도 둘러보고, 냇물과 도로를 넘어 산까지 올라가 본다. 아빠는 능청스럽게 노을을 바라보며 산봉우리를 정원으로 갖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들에게는 해와 구름, 밤하늘 별과 달도 정원의 일부다. 담장을 허물고 담장 밖을 갖는 것이다.




이 시그림책은 공동의 것들인 땅, 물, 하늘을 하나로 연결해서 큰 마을을 정원으로 갖는 인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을 넘어 물질들의 연결까지 보여주는 신유물론적인 세계관을 서정적인 시와 안정적인 색감의 그림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부자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를 도시를 벗어난 공간에서 느끼며 아빠와 아들은 그 공간에서 스스로 넉넉한 마음의 부자가 되는 모습이다.


현대 사회의 많은 인간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평생을 애쓴다. 담장을 넘어 시멘트 덩어리를 더 높게 쌓아 올리고 더 많은 구획을 나누어서 집 안에서도 계속 담장을 만든다. 그 담장의 의미는 편견과 소유욕이다. 담장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욕심은 점점 커진다. 우리는 그 담장을 허물어야 한다. 허물고 비워서 무소유에 가까운 삶으로 가자. 더불어 물질적인 담장도 허물어야 하지만 마음의 담장도 허물자. 그렇게 나를 허물어 더 큰 나를 만나자. 아빠는 아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고향에 돌아와 담장을 허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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