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 한성옥 그림, 작가정신 출판사의 시그림책.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가지의 나무가 인상적인 표지의 시그림책이다. 세로 모양의 직사각형의 판형과 세로 방향으로 한 귀퉁이에 적혀 있는 제목이 이 책을 열기 전부터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나무를 불안하게 만든 거센 바람은 뒤표지에서부터 시작된 바람이다. 이 시그림책은 불안에 관한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표지를 펼쳤다. 앞면지에는 곧바로 세차게 비가 내리며 번개가 치는 모습이다. 그에 비해 뒷면지는 고요한 산과 나무가 있는 넓은 들판이 연상되는 가을 풍경의 그림이다.
시그림책의 내용은 이렇다. 큰 나무가 어떤 집을 가리고 있어서 집 주인이 가지치기를 한다. 그럼에도 앙상해진 가지의 나무는 어떤 바람도 견디며 굳건한 뿌리로 중심을 잡으며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린다. 농담 같지만 그렇게 흔들려서 덜 흔들렸다는 말이다. 이 시그림책을 필사하며 마음이 힘들었다. 특히 시의 3연에 해당되며, 책의 중후반부에 해당되는 한 줄이 읽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구나.’ 한마디로 나무는 거센 비바람을 상대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린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지치기를 당하거나 폭풍우를 맞는다. 인간의 경우 뜻밖의 우여곡절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어떤 인간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어떤 인간은 일어난다. 또 어떤 인간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참고 견디고, 어떤 인간은 넘어지는 척, 흔들리는 척한다. 시그림책은 후자를 말하고 있다. 너무 참고 견디지 말고, 그러다가 넘어지지 말고, 혹은 자꾸 넘어지고 일어나지 말고, 그저 흔들리라는 말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가지치기를 하면 내어주며, 비가 오면 맑은 날을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다. 대신 뿌리를 단단하게 땅에 내려서 어떤 흔들림에도 넘어지지는 않도록, 권투로 치면 더킹과 위빙을 자유자재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휘날리는 나뭇잎은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 마음은 여기저기 휘날리며 앙상한 나무가 되더라도 우리 마음은 사실 작은 개미 혹은 어떤 다른 생물에게 영향을 전달할 수 있다.
동양의 오래된 고전인 <장자>에도 비슷한 우화가 있다. 장자의 어부 편을 보면 공자가 어떤 폭포를 지나던 중 한 사나이가 물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그를 구하려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그 사나이는 곧 한가롭게 노래를 부르며 물 밖으로 걸어 나왔고 공자는 놀라서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다. 그러자 사나이가 말하길 물살이 소용돌이치면 빨려 들어가고, 그러다 물이 밀어내면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물의 흐름에 따라서 나아가며 힘을 쓰지 않으면 물의 흐름을 받으며 물과 하나가 되었다고 대답한 내용이다. 이처럼 저항하지 않고, 거스르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삶. 그것이 바로 무위자연의 삶이며, 어쩌면 이 시그림책의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 중의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나무는 그렇게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엄청나게 흔들렸다. 유년기부터 시작해서 10대, 20대, 30대, 40대를 돌아보면 흔들리지 않은 적이 없다. 앞으로 남은 50대, 60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그 상황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더 깊게, 더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하자. 그러면 그 뿌리는 흔들리는 나를 잡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며,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우자. 점점 그것이 나의 뿌리라는 확신이 든다. 바람 불면 잠시 흔들리는 나의 마음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단락이 되어서 한 편의 마음 챙김의 글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한 편의 시를 써본다. 김수영 시인의 ‘풀’을 떠올리며 나의 흔들린 삶에 대한 시와 김수영 시인의 시를 함께 써본다. 감히 함께 하기 어려운 졸필과 악필의 시지만 흔들리지 않고 과감하게 써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