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의 시를 기반으로 한 시그림책. 시도 마음을 흔드는데 이성표 그림작가의 그림이 마음을 더 울린다.
톤이 내려간 초록빛의 표지와 시집을 읽으며 음미하는 듯한 사람이 눈을 감고 책을 들고 있다. 수직으로 휘날리는 초록빛 머리카락과 고개 숙인 모습이 대조적이다. 뒷 표지는 거대한 낙엽을 뒤로하고 유유히 걷는 작은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앞 뒤 배경으로는 눈송이가 조금 휘날린다. 면지에는 은은한 톤의 무늬 혹은 패턴이 여백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남은 여백에서 어딘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시 그림책의 전체적인 그림은 시와 잘 어울린다. 한 줄 한 줄 시가 진행되며 어떤 여성은 걷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한숨을 쉬다가, 또 갑자기 어딘가 붕 떠오르기도 하고, 결국 거대한 책장과 수많은 책이 있는 서가에서 책을 고른다. 아마도 시집인 것 같다. 그리고 또 하염없이 걷는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복잡한 곳에서 한적한 곳으로,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이 있는 곳으로, 혹은 그 반대로, 구름 위로, 강물 위로 어디로든 걸으며, 혹은 멈춰서 책을 읽는다.
이 시그림책을 보며 눈물이 흐를 뻔했다. 시를 책으로 바꾸면 그대로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왜 사는지 고민을 했다. 10대, 20대, 30대, 40대를 넘어 언제나 힘든 고비를 넘으며 이렇게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등 따습고 배부른 적도 많았다. 그러다가 문득 힘든 시기가 찾아와서 언제나 내 뒤통수를 때렸다. 그런 시기는 늘 불현듯 갑자기 찾아온다. 그렇게 계속 맞으면 무뎌질 법한데도 계속 아프고 쓰라렸다. 너무 강하게 맞아서 아직 아픈 곳이 있기도 하다. 그런 시기에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었다. 시의 가시에 찔리듯 책의 가시에 찔려서 정신 차리고 싶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읽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났던 전쟁과 폭력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소외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전 지구적인 환경, 생물, 기후 변화를 보며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느꼈다. 인체와 우주의 경이로움을 보며 놀라웠다.
죽을 듯이 힘들거나, 그러다가 죽고 싶거나, 혹은 죽이고 싶거나, 죽이고 싶어서 힘들면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책을 읽으면 괜찮다. 책을 읽으면 그런 내가 측은하다. 이제 나는 개똥밭에 구르더라도 책 한 페이지는 읽어야 잠이 든다. 앞으로도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보겠지만 그런 와중에도 책 한 페이지는 읽는다. 언제 죽어도 여한은 없다. 죽는 날까지 책 한 페이지는 읽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냥 한 페이지라도 읽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냥 관성으로 책을 읽는다. 왜 사는지 궁금할 때면 그냥 책을 읽는다. 그러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입은 무거워지며, 생각은 우주의 빛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