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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친절한 도쿄 언니들

- 도쿄여행 2023 (4)

by 선홍


도쿄 언니들이 참 친절하구나, 느꼈던 두 번의 순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이 얘기를 할까 말까, 지적인 한국의 중년여성(?)으로서 개망신의 순간을 도쿄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리고 말았는데.

이쁘게 꾸민 모습만 보이고 싶다면 브런치에 글을 쓰지 말지어다, 하여 언급하자면.


어디를 가든 화장실이 그 사람의 민낯이고 진짜 모습이라 생각하기에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일단 도쿄 화장실의 휴지는 한국보다 얇았다. 그 점은 별로였지만 공항, 음식점, 카페 등 변기가 대부분 버튼을 안 눌러도 자동으로 처리되는 점은 좋았다는 점을 알려드리면서.


문제는 화장실 휴지가 너무 얇다는 것에서 기인했다.

여성들이 쓰는 양변기는 아시다시피 타인이 깔고 앉은자리에 앉아야 하기에 나처럼 깔끔 떠는 사람은 휴지를 좌석 좌우로 길게 깔고 앉게 된다. 1회용 청결시트까지 구비된 곳들이 많지 않기에.


그러니 엉덩이 앉는 부분이 좁거나 기울어져 있으면 깔아 둔 휴지가 고정이 안 돼서 애를 먹곤 했다.

각설하고, 휴지가 얇다는 건 피부에 착 밀착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이다.

낯선 나라의 공항에 도착한 순간이 가장 긴장될 때라고 언급한 바 있었고, 혼잡한 화장실을 나가 얼른 딸과 합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허둥지둥 화장실을 나오는데, 한 일본여성이 황급히 다가와 뭐라 뭐라 하는 것이었다. 뭐지? 하고 돌아보니 허리춤에 흰 휴지가 꽂혀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오 마이 갓, 하이얀 휴지 고이 꽂혀 나빌레라...


국제망신 개망신,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딸을 만나기도 전에, 친절하게 쫓아오신 일본여성분 덕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개그우먼이 어떤 콩트에서 잘생긴 소개팅남 앞에서 나 같은 실수를 하는 걸보고 낄낄거렸는데, 앞으론 웃지 못할 것 같다.


두 번째는 도쿄의 '아사쿠사'에 있는 '센소지'라는 절에 갔을 때였다. 후끈후끈 열대야의 밤인데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터질듯한 조명까지 합세해 열기가 터질 듯 뜨거웠다.


정신없는 와중에 딸과 셀카로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한 일본여성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는데, 순간 미안하지만 의심이 들었다. 이렇게 더운데 굳이 와서? 스마트폰 들고 튀는 거 아냐? 우리끼리 속삭이면서 거절하는 건 그 와중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떨리는 손으로 건네주었다.


그런데 왜 자꾸 뒤로 가라는 건지, 또다시 의심하게 됐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뭔가 어색한 미소.

그 여성분은 우리와 달리 환히 미소 지으며 사진을 다 찍은 후 스마트폰을 돌려주고 총총히 사라지셨다.

어라? 우린 민망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며 웃고 말았는데.


도쿄의 기억은 생각지도 못한 적극적인 친절함으로 기억되었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겐 그런 짧은 순간이 그 나라의 이미지로 각인된다.


30년 전 · 엄마와 배낭여행할 때 스위스의 심야, 낯선 길 헤매는 와중에 도와줬었던 스위스언니가 잊히지 않는 것처럼 도쿄 언니들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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