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 벨트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손가락을 다쳤다. 조그만 점 모양으로 피가 고이더니 점차 부풀어 올랐다. 피부 안쪽에서 작은 출혈이 싱긴듯했다. 나는 손톱으로 피부를 짓이겨 상처를 냈다. 뭔가를 알고 그런 건 아니고, 피가 안에 고여 있으면 통증이 오래가거나 점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상처 난 피부 안에서 검붉은 피가 빠져나왔다. 겉으로 볼 때는 너무 검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화장지로 닦아내 보니 그곳에 스며든 피는 선명한 붉은 빛깔이었다. 나는 손가락을 살며시 입에 물고 피를 쪽 빨아들였다. 독사에 물린 것도 아니면서 괜히 그러고 싶어졌던 것 같다. 그러고 나면 좀 더 빨리 상처가 아물지 않을까 싶었다.
아주 작은 상처였다. 달력을 넘기다 종이에 손이 베이는 것보다도 작은 보잘것없는 상처였다. 만약 의식하지 못한 채 생겼다면 상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을 만큼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한 번 인식하고 나니 하루 종일 불편함이 이어졌다. 펜을 들 때도, 가위질을 할 때도, 수저를 들 때도, 스마트폰을 조작할 때도. 하루 종일 모든 순간에 통증은 나를 괴롭히며 걸리적댔다.
'큰 수술을 해도 이 정도로 불편하지는 않을 텐데'
이런 생각이 영 근거 없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 큰 수술을 하거나, 크게 상처가 나면, 그 부분에 통증이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에 늘 신경 쓰고 조심하게 된다. 이미 아픈 부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조금 불편한 일이 생겨도 그리 놀라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이건 꼭 찬물 샤워의 차가움은 잘 버티면서 아내의 얼음 같은 발이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과 비슷하다. 알고 대비하면 이겨내기 쉬운데,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은 작은 문제에도 크게 반응하게 된다.
그런데 정말 미리 인식만 하면 통증은 덜어질 수 있는 걸까? 그것이 모든 곳에 통용되는 진리인지는 모르겠다.
나에게는 비키 아주머니라는 동료가 있는데, 그분은 24시간 짜증과 불만을 달고 산다. 나는 이미 그가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오는 불만을 들으면 그때마다 새롭게 나빠지곤 한다.
이런 걸 보면 모든 일은 다 상황과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사람 마음처럼 종잡기 힘든 것도 없을 테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아 다른 사람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들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타인의 마음은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 심지어 그들조차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어찌 바꾸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이 꼭 아침에 손가락에 난 상처처럼 느껴진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은근히 나를 괴롭히며 걸리적 거리는 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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