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호수_순천만 보호 의미를 / WWT습지_어미새와 아이 새의 둥지
순천만 국가정원에는 두 개의 호수가 있다. 둘 다 같은 호수 같지만 이용과 의미가 다르다. 의미를 알고 보면 더 흥미롭다. 동문 쪽 호수는 순천만을 보호하기 위한 에코벨트 정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제습지센터의 호수는 엄마새와 아이 새들이 유유자적하면서 놀 수 있는 호수라기보다 습지이다. 그래서 동문 쪽 큰 호수는 <순천호수>라는 이름을 갖고, 습지센터 앞 호수는 <WWT습지>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습지는 30센티 이내의 깊이로 새들이 놀기 좋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인공습지를 잘 만드는 영국의 WWT런던습지센터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하여 설계하고, 시공 검수한 것이다.
오늘은 순천 호수에 대한 의미를 알아보자.
순천호수는 당초의 설계를 모두 변경한 것이다. 당초 설계된 것(아래 사진)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호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공사가 진행 중에 세계적인 정원디자이너 영국의 찰스 젱스를 만났다.
순천시청의 사서직 나옥현 팀장(현재는 동장으로 근무 중)의 끈질긴 설득으로 이루어졌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자기 정원을 찾아 우리의 사정을 얘기했다. 처음에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순천만을 보호하기 위한 에코벨트 정원을 조성한다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다만 공사기간이 촉박해서 참여는 어렵다 했다. 당시 시장과 언론인 등이 함께하여 협력을 요구하였더니 한번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한국은 처음이라 했다. 현장을 보고 놀랐다.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2박 3일 동안 정원 조성 현장과 숙소만 오가면서 고민한 후 출국했다. 3개월 후 설계모형도를 보내왔다. 순천 도심을 의미 있게 콘셉트화 했다. 도심 중앙에 있는 봉화산,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3개의 산봉우리, 도심 중앙을 흐르는 동천과 순천만을 형상화했다. 정원박람회장 주변은 빨간 라인을 그었다. 순천만 국가정원 아래로 도시팽창을 막아 달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한국의 설계와 유럽 설계의 큰 차이점도 발견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국 설계는 못하나 밖을 것까지 설계도에 담고, 결정된 후에 시공한다. 유럽 설계는 디자인 컨셉을 확정하면 조성하면서 변경해 나가는 것이었다. 처음 조성할 때는 기술인력이 와서 시공을 지도했다. 그리고 매주 영상회의를 통해 진행과정을 지도했다. 공사 과정 중간에 수차 방문했다. 이런 과정 속에 완성했다.
박람회 개막식에 초청되었다. 만나자마자 ‘My son!’하면서 안아주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출국하면서 꼭 껴안고 귓속말로 당부했다. ‘박람회장 데크다리 끝부분에 그어놓은 레드라인(led line)만은 꼭 지켜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아직도 그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순천만 국가정원의 '순천호수'의 설계자이며 재능기부(설계비는 받지 않고 왕복항공료 등만 지원) 하셨던 'Charles Jencks'씨가 지난해 10월 13일 80세를 일기로 영국에서 타계하셨다. 건축역사학자이었으며 정원디자이너로서 후기 모더니즘의 대부로도 불리셨던 분의 명복을 빌며 '순천호수'는 그분의 희망대로 영원히 순천에 남아 순천만을 보호하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
참고로 문경철 선생님의 밴드 글에 따르면 <'순천호수정원'의 영어 명칭을 그분은 'Holding the Eco-line'으로 명명하고 있으니 굳이 번역을 하자면 '생태선을 지키기' 또는 '자연을 품고 있는 도시'정도로 알고 있으면 되겠다.>라고 했다.
이 일을 하면서 느낀 점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세계적인 정원디자이너를 섭외한 사람이 특이하다. 이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아닌 사서직 나옥현 씨이다. 이분은 평소에 영어회화를 했다. 세계적인 정원디자이너를 찾고, 그분들에게 영문으로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찰스 젱스도 이분의 영어 메일을 받고 의아했다고 한다. 한국의 한 부인이 왜 이런 메일을 보낼까 궁금해 답장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곳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작품을 정원에 남기게 했다. 공직사회는 남의일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불문율이 있다. 그러나 나옥현 팀장은 그 한계를 극복한 선구자이다.
두 번째로는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전문가들은 철학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윤이나 사적 이익보다는 그 일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가 판단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찰스 젱스와 딸 릴리 젱스는 바로 그런 분들이었다. 순천만을 보호한다는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한 것이고, 그 대가를 계산하지 않았다. 아버지 못지않게 딸 릴리 젱스도 열정이 대단했다. 찰스 젱스의 걱정거리는 딸이 ‘너무 일만 한다’는 것이라 했다. 인간적인 면도 돋보였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동행하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어려운 과정과 여러 분야의 사람들의 협력으로 이역만리 유럽의 명장 찰스 젱스의 유작이 바로 순천만 국가정원에 탄생된 것이다. 그래서 상상해 봤다. 순천호수는 순천만을 보호하기 위해 묵묵히 버티고 있는 ‘아빠 호수’이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WWT습지는 1년 365일 어미새와 아이 새가 어우러지는 둥지 ‘엄마 호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