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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Aug 27. 2023

시골세상

보미오면



한국 나이로 5살.


할머니와 큰고모, 아빠 같이 사진으로만 보던 남동생을 만나러 갔다. 보미는 동생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지만 항상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항상 동생의 이름을 넣어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텔레비전에 우진이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우진이 보고 싶다며 매일 노래하는 보미를 보고 동네 어르신들은 ‘본 적도 없는데 저렇게보고 플까~’ 하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챙겨야 할 동생이 있다는 사실이 어린 나이에도 좋았나 보다.





° 시골 세상


아침이 되면 다남 1리 마을회관에서는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담요 밑에 지폐와 동전들을 쑤셔 넣 채 고스톱을 쳤다.


그 사이에 보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화툿장 치는 흉내를 내곤 했다. 화툿장이 '짝짝' 달라붙는 소리가 재미있어 따라 하니 할머니들도 기가 차서 말씀하신다.


"보미야~ 니 화투 칠 줄 아나?"


씨익 웃는 어린 보미를 보며 할머니들은 주머니에 잔돈을 넣어 주셨다.



1992년에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난  할머니와 살았던 시골은 하루에 버스가 두세 번만 오던 깊은 산골이었다. 같은 성씨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이었는데 아이스크림을 팔 만한 슈퍼는 없어서 시간 맞춰 '아이스케키~' 아저씨가 오실 때나 먹을 수 있었다. 슈퍼가 있긴 했지만 고무장갑과 같오래 두고 팔 것만 들여와서 간식거리들은 보기 힘들었다.



90년대에도 푸세식 화장실을 썼는데 할머니는 어린 보미가 똥 통에 빠질까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셨다. 사실 들어가라고 했어도 못 들어갔을 것이다.

밑으로 넓게 고여 있는 배설물 속에 빠질까 봐 섭기도 했고 불도 켜지 못해서 귀신이 나올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린 보미는 흙바닥인 마당에서 해결했고 대변은 삽으로 퍼서 모아 놓았다.


"보미야~ 우리 똥깡쉐이~ 다 누모 할매가 퍼 날라주꾸마~"


다 누고 나면 할머니는 모래에서 잘 떨어지도록 똥을 모래에 살살 굴려가며 코팅을 해준다. 후에 들어 올리면 모래바닥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평 해진다. 묽은 똥만 아니라면...


널리고 널린 것이 논과 밭이라 퇴비로 쓰인다고 들었지만 쓰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밥상에 올라오는 모든 것을 못 먹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푸세에서 똥을 퍼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가방처럼 생긴 철가방에 똥 퍼간다고 외쳐가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모기약 오토바이는 그렇게도 쫓아다녔으면서 똥 퍼가는 아저씨에게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할머니 집에는 부엌과 방이 통하는 쪽문이 있었다. 음식을 하면 쪽문을 통해 안방으로 상을 넘겨그 후에 할머니가 방으로 오시면 밥을 먹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이 없어도 투정 없이 먹는 보미를 예뻐하셨다. 아마 어려서부터 시골생활을 했기에 입맛이 들여졌지도 모르겠다. '고추 장물'이라 불렀던 고추다대기를 찐 호박잎에 싸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물론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서 할머니 몰래 주방으로 들어가 설탕을 퍼먹던 일이 다반사였다.

할머니 집을 비우면 언제 오실까 열린 문 틈 사이로 힐끔거리며 설탕 봉지에 숟가락을 넣었다. 뜯어 놓은 설탕 봉지 구멍으로 숟가락이 잘 들어갔는지, 얼마큼 퍼졌는지 심장은 쉴 새 없이 쿵쾅거렸다. 조금 뜯어진 설탕봉지 사이에서 어렵사리 꺼낸 숟가락에는 정말 적은 양의 설탕밖에는 없었다.

하얗고 반짝이는 예쁜 입자는 입으로 넣으면 폭죽이 터지듯 번쩍 단맛이 나고 사라져 버렸다. 너무 짧은 달달함에 많이 넣고 싶었지만 설탕 봉지는 작게 뚫려 있었고 숟가락은 너무 커서 설탕을 많이 꺼낼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할머니가 올까 봐 심장은 터져버리기 직전이었다.



기껏 해봐야 다섯 살도 안된 보미가 하루는 일을 벌였다. 다행히 불 피우는 아궁이를 대신할 가스레인지가 있어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매일 나물들로 밥을 먹는 어린 보미에게 라면이라는 식품은 신세계였나 보다.

  할머니가 안 계신 틈 라면이 먹고 싶어서 라면을 끓였다.

할머니를 따라 한다고 물도 넣고 스프대신 다시다도 넣고 면도 넣었다.


'다 똑같이 했는데 이상하다~?'

라면의 생김새도 이상했고 맛도 없었다.




"보미야 어딨노 할매 왔대이~~"


보미는 작은 주방 안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굳어버렸다. 시골의 주방 아궁이가 있던 곳이어서 도망갈 곳은 없었고 심장 너무 뛰어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고는 쳤는데 먹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냅다 버리지도 못하니 좌불안석이 따로 없다.



할머니께서 부엌으로 오시는 발자국소리는 너무 크게 들려왔고 보미의 심장소리 역시 너무 커서 지구를 폭파시킬 것 같았다.

넓지도 않은 시골집에서 할머니 보미를 찾는 건 너무 쉬웠다.

"아이고~ 이눔시키 니 혼자 라면을 우끓일라꼬 이래 놓으마 우짤라카나~ 할매 오마 해달라 캐야지~ 아이고~"



가장 중요한 물 조절 생각은 못 했으니 당연히 한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연히 할머니가 끓여준 맛있는 라면 맛이 안 수밖에?

할머니는 엄청난 잔소리를 하면서도 라면을 다시 끓여 주셨다.





시골에서는 지하수 고 지나다니며 보이는 각종 과일들도 먹었다. 동네에서 '훔쳐먹' 보다 나눠 먹는 개념으로 통했기에 조금씩은 따 먹었다.

포도, 옥수수, 밤, 고추, 깻잎, 가지 등등 까고 다듬고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아주 좋은 자연산들을 무료로 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없는 게 없던 시골마을 길.


그중에 보미는 마당에서 캔 쑥으로 들어먹던 쑥떡이 가장 맛있었다. 리 마을에는 떡을 만드는 방앗간은 없어서 마을 밖으로 한참을 걸어서 나가야 했다.

멀었지만 할머니 손을 잡고 콧노래 흥얼거리던 외출길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고작 옆동네 시장이었지만 보미는 동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정말 좋았다.


 들도 시냇물도 지나야 나오는 방앗간에 쑥을 주고 보미는 할머니와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일상적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어린 보미는 얼마나 신기했을까?


시장한 바퀴를 돌고 나면 따끈따끈쑥떡이 나왔다. 바로 나온 쑥떡은 부드럽지만 쫄깃했고 쌉싸름한 달달함에 빠져나올 수가 없다. 허기짐을 채워주는 것과 동시에 따끈따끈 한 것이 콩고물 고소함은 말해 뭐 하나요. 하하.





일요일에는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 교회에 갔다. 목적은 다름 아닌 간식이었다. 동네에달달한 간식들을 찾을 수 없었지만 교회로 가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자부터 빵, 짜장면, 탕수육 등 여러 음식들 맛볼  있었다.


특히 출석, 헌금, 율동 등 여러 활동들로 달란트를 모아서 프리마켓 형식으로 열리는 달란트시장도 재미있었다. 동네에서  수 없는 물건들을 내가 스스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여느 때와 같이 동네 오빠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교회로 가던 어느 날.


다섯 살인 보미는 자전거 뒷자리에 탔지만 다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세게 달리는 자전거 바퀴에 발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가 철철 났고 펑펑 울면서도 홀로 집에 갈 수 없던 보미는 옷가지로 발가락을 둘러맨 채 교회에 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논길 사이사이를 지나 걸어서 왔다. 겁도 없던 작고 어린 꼬마 보미였다.


새끼발가락 쪽 발등이 길게 찢어져서 상처가 났음에도 병원에 간 기억은 없다. 지금도 흉터가 있지만 꿰맨 흔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 자연치유를 한 것 같다.



하나하나 직접 겪어보고 아픔을 배우기 시작한 사건이었다.  보미는 이렇게 스스로 겪으며 배워야 했던 삶을 살았다.





다섯 살까지 살았던 시골기억 중 최악은 피가 나도록 종아리를 맞던 날이었다.

중학생 오빠들이 보미와 또래 친구를 시냇가 데려가서 종아리를 피가 나도록 때렸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린 꼬마 둘을 세워두고 나뭇가지가 몇 차례나 부러지도록 맞았다.


보미는 서럽고 아파서 바지춤을 잡은 채 펑펑 울었다. 하지만 냇가 쪽이라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중학생의 무지막지한 폭력은 한참을 계속되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붓고 피가 나는 다리를 끌고 울면서 집에 온 보미를 보고 할머니 노발대발하셨다. 화를 내며 누가 그랬는지 물어서 서럽게 울며 사실대로 말했다. 누구였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사실대로 이야기했으니 녀석을 혼쭐 내줄 거라고 믿었다. 보미의 보호니까...


할머니 바로 찾아가서 화를 냈더니 발뺌을 하던 그 집 아들... 그리고 그 발뺌을 순순히 들어주던 할머니...


'내가 이유 없이 이렇게나 맞았는데 왜 혼내주지 않냐고요!!!'


이렇게나 피가 나고 아픈데 보미를 대신해 화내지 않는 할머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그게 한이 되어 마음에 콕 박혀서 버렸다. 아무리 가족인들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그럼에도 보미는 불평 한마디 못했다.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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